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2의 고향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남한정부는 제 3국에서 10년 이상 체류한 북한주민에 대해서도 탈북자가 받는 혜택을 주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이들이 자신이 원해서 제 3국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며 북한으로 돌아가면 처벌을 받는 다는 점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보호대상자에 포함시킨 겁니다. 오늘은 중국생활 13년 끝에 지난해 남한으로 간 탈북여성 남은미(가명) 씨의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남은미: 초보적인 생활이 안 됐습니다. 옆에서 사람 죽어나가는 것 보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으로 결심한 것이 탈북이었습니다.
1998년 북한의 심각한 경제난으로 수십만 명의 아사자가 발생했을 당시 남씨 가족도 불행을 피해갈 수 없었습니다. 당시 스물여섯의 남 씨에게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겁니다. 중국에서의 긴 세월을 돌아서 지금은 남한의 병원에서 탈북자 상담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남은미: 북한에서 정말 염라대왕에게 갔다 왔을 정도로 힘들었습니다. 저희 부모님이 당 간부였기 때문에 유년 시절에는 남보다 호의호식 하며 잘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아버님도 돌아가시고 김일성 사망 이후 완전히 배급 체계가 다 붕괴 되면서 첫 번째로 타격을 받았습니다. 당만 바라보고 살다가 개인노력으로 살아야 했기에 엄청 고생했습니다. 그 후과로 몸에도 상처도 많이 남기고 했으니까 환자분들 대하면 흘려듣지 않고 해결해 주려고 하다 보니 지금은 다 내 부모형제처럼 하나라도 잘해드리려고 생각하다보니까 이젠 환자와도 공감대가 생겼습니다.
탈북해서 중국에서는 농촌 일을 했고 처음 중국생활 6년은 하루에 17시간씩 일하는 힘든 노동의 연속이었습니다. 그사이 딸을 낳았는데 다행히 아이는 건강하게 잘 커줬고 2005년 부터는 중국에 사업체를 둔 한국 기업에 들어가 사무직 관리로 6년 동안 근무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제 3국에서 10년동안 체류한 탈북자는 남한에 올 의사가 없는 것으로 간주해 비보호 대상자로 같은 북한 출신이라도 탈북자가 받는 임대주택이나 정착금 등의 혜택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2007년 법 개정으로 남은미 씨도 남한행을 결심하는데 한결 마음이 가벼진 겁니다. 이번에는 딸을 위해 남 씨는 자신의 결심을 행동으로 옮깁니다. 2011년 중국생활을 접고 남한으로 간 겁니다.
남은미: 제가 사는 곳은 공장이 없고 식당이 많아서 처음 한 달은 식당에서 일했습니다. 저희는 하나원 나오면 저희는 6개월간 기초생활 수급자로 국가에서 생계비가 나옵니다. 6개월 동안 이 사회 적응 기간을 주는 거죠. 그리고 6개월 지나서부터는 취직도 하라고 그런데 아이가 있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마음이 불안한 겁니다. 한 달에 70만원을 받고 아이 공부시키기에는 너무 부족한 생각도 들었고요. 그래서 한 달간 식당일을 했는데 엄청 잘 되는 고깃집 일이었는데 못하겠더라고요. 식당일 하면서 몸을 너무 무리해 경추 쪽으로 척추가 눌려서 병원에 가 상담을 받았죠. 작년 7월에 하나원에서 나와 10월에 병원을 갔죠.
어느덧 40대가 된 남은미 씨는 사무직 일을 하다가 갑자기 식당 접대원으로 고기와 무거운 접시를 나르다 보니 허리에 무리가 왔고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게다가 앞으로 계속 노동일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남 씨는 자신이 찾은 병원에 탈북자가 자신을 상대로 상담을 해주는 것을 보고 바로 이거다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어떻게 탈북자 상담사가 될 수 있는지 방법을 물었고 현재의 직업을 갖게 된 겁니다. 또 좀 더 공부가 필요하겠다고 생각해 대학에서 사회복지 공부를 직업과 병행하고 있습니다.
남은미: 지금 사회가 고령화 시대잖아요. 제가 상담사 일을 해보니까 여러 부분에서 복지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도 있고 또 복지는 알면 알수록 이 사회에 유익한 공부란 생각입니다. 공부를 해서 알고 자신의 수양을 쌓고 내가 노력을 안 해 배우지 않아서 모르는 것은 나의 무식이잖아요. 그런 측면에서 저는 공부를 해서 무엇이 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내가 편하고 즐겁고 공부를 해서 내가 아는 것을 환자분들에게 돌려주고픈 마음에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참 다행스럽고 고맙게 생각되는 것은 함께 간 딸이 남한생활에 잘 적응해 가는 겁니다. 공부도 열심히 하고 이제 1년밖에는 안됐는데 벌써 남한 아이들과 별 차이 없이 어울리는 것을 보면 빨리 자신도 남한 사회에 적응하고 싶다는 욕심만 앞서게 됩니다.
남은미: 올해 14살 인데 딸과 같이 이 사회에 발을 들여놨지만 애는 확실히 어리다 보니까 적응이 빠릅니다. 친구들과 어울리고 남한 표준말 쓰고 저보다 다 빠른데 저는 항상 애보다 뒤처지거든요. 어투에서 말 억양이 아직 내가 고향 말씨가 많다는 생각을 하고요. 제가 생각하는 옷차림이 남한사람처럼 안되고 회사 생활을 하니까 꾸며야 하는데 세련되게 안 된다는 생각이 듭니다.
북한에서의 26년, 중국에서의 13년 그리고 남한생활 1년. 어디나 사람 사는 곳은 별반 차이가 없다고 말할지 몰라도 남은미 씨는 분명 그 차이가 있다고 했습니다.
남은미: 제 생각에는 내 집이 있다는 것. 두 다리 쭉 뻗고 잘 수 있고 누가 날 잡아갈 사람도 없고 편안한 나만의 공간인 집이 있다는 것에 항상 감사합니다. 남한은 자기가 하고 싶은 것만큼 배우고 싶으면 배울 수도 있고 일하고 싶으면 일하고 정말 자기가 노력만 하면 능력껏 할 수 있잖아요. 뭔가 이룰 수 있는 자유가 있어 좋습니다.
긴 세월 하도 고생을 해서 이제 웬만큼 힘든 일도 어렵거나 두렵게 느껴지지 않는 다는 남씨는 아픈 사람들을 위로하고 그들의 병을 치위하는데 도움을 주는 마음씨 좋은 상담사로 새로운 삶은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남은미: 크게 바라는 것 없습니다. 가족이 건강하고 화목한 것이고 지금 하는 일 열심히 하고 공부도 열심히 하는 겁니다. 매일 매일 충실하면서 가족의 행복을 지키고 싶습니다.
제2의 고향, 오늘은 병원에서 탈북자 상담사로 일하는 탈북여성 남은미(가명) 씨의 이야기를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사이방송 이진서입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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