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2의 고향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북한에서 먹는 두부밥이 남한에서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남쪽 강원도 고성 바닷가 마을에 사는 탈북청년이 두부밥을 남한 사람 입맛에 맞춰 부담없이 먹을 수 있도록 만들어 팔고 있습니다. 번뜩이는 사업구상과 놀라운 추진력으로 소유자 듀밥집 사장 강민 씨의 이야기 전해드립니다.

강민: 안녕하세요. 함경남도 북청에서 온 강민입니다. 2007년에 탈북해 중국에서 3년 살다가 한국 온지 올해 7년차입니다.
강민 씨는 남쪽 표현을 빌리자면 '맨땅에 해딩한다'. 무모하게 보일 정도로 아무것도 없는 빈손으로 사업을 시작한 경우입니다. 20대의 젋음을 온통 자신의 꿈에 투자한 겁니다. 그는 시간이 아까와서 최소한의 기초 지힉만 습득한 후 대부분의 젊은이가 선택한다는 대학진학은 포기합니다.
강민: 북한에서 초등학교도 졸업을 못했습니다. 검정고시를 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입학을 준비하면서 청강도 다녔는데 아무래도 공부보다는 사업을 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에 사업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폴란드에서 아로니아를 수입했습니다. 그러다가 장미관련 제품을 봤는데 한국의 해당화더라고요. 그래서 해당화를 키우려고 강원도 고성으로 갔습니다.
기자: 대학을 다니다가 중도 포기했나요?
강민: 준비를 하다가 가지 않았습니다.
기자: 한국은 학벌사회가 대학졸업장이 필요한데 대학을 포기하고 사업을 한 계기가 있었을텐데요.
강민: 일단 한국사회가 학벌을 중요시 하고 저도 배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지만 공부는 평생 하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회 빨리 나가서 직접 사회를 체험하는 것이 대학공부보다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7년이 지났는데 절대 후회 안하고 정말 잘한 선택같습니다.
올해 31살의 강민 씨. 매일 일에만 메달리느라 아직 결혼은 생각을 못하고 있습니다. 그의 친구들은 대부분 대학생이 돼서 학교를 다니거나 졸업을 했지만 그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더 급한 것이 있었던 거죠.
강민: 저는 원래 사업을 하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탈북의 이유도 그렇고요. 현장에서 배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압니다. 그래서 대학을 안가고 무작정 뭔가 해보자 해서 뛰어 들었는데 잘한 선택인 것 같습니다.
청년 사업가를 꿈꾸는 강민 씨. 지금은 두부밥 식당을 운영하지만 이것이 첫번째 사업은 아니고요. 그동안 어떤 사업들을 했었는지 7년 남한생활 잠시 들어봅니다.
강민: 아로니아를 수입했습니다. 블루베리와 비슷한데요. 폴란드에서 제일 많이 나옵니다. 먹는 것이고 건강과일입니다. 양강도 쪽에 가면 들쭉이 있는데 비슷합니다. 그 사업 수입을 하다가 돈 많은 업주들이 시작을 해서 제가 수입을 못하고 국내 유통만 하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유럽쪽에서 장미관련 제품을 봤는데 어렸을 때 따먹던 해당화 열매인데 그쪽에선 장미라고 하더라고요. 알아봤더니 한국에선 해당화이고 이게 와일드 로즈더라고요. 이것을 재배라려고 고성에 왔고 4천평 땅에 8천주 정도를 심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돈이 안돼서 고민하다가 근처 사장님들 웹 사이트를 개발을 해드렸습니다. 그렇게 용돈벌이를 하다가 관련 시장에 눈을 뜨고 홈페이징이라고 웹개발 플랫폼을 만들어서 운영하고 있습니다.
기자: 컴퓨터 공부는 어디서 하셨어요?
강민: 공부를 따로 한적은 없고 아로니아 수입했을 때 쇼핑몰을 하나 만들려고 책보고 인터넷 보면서 그렇게 배웠습니다. 그리고 또 주변에 그 기술을 필요로 하는 분들을 만나서 용돈 받으면서 본격적으로 일하게 됐는데 일 하면서 보니까 유통의 흐름이 보이더라고요.
현재 남쪽 강원고 고성 바닷가에는 듀밥이란 식당이 있습니다. 바로 강민 씨가 운영하는 곳입니다. 듀밥은 두부밥을 좀 멋지게 들리도록 그가 붙인 가게 이름입니다. 올여름에 문을 열었습니다.
강민: 요리에 대한 경험이 있어서 듀밥을 생각해 낸 것은 아니고요. 중국에 있을 때 6개월 요리사를 했습니다. 그런 경험이 듀밥을 생각하는데 도움이 됐을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2년전 서울에서 사업이 되는 것도 없고 정말 힘든 때였습니다. 서울역 앞을 지나다가 햄버거 가게를 봤습니다. 그때 든 생각이 우리가 언제부터 빵을 먹고 탄산음료를 먹었는가 하는 반감이 들었습니다. 건강이 안 좋을 것을 너무 많이 당연하게 먹고 있는거예요. 그래서 간편하게 건강한 음식을 먹고 국을 먹는데 빨대로 빨아 먹는 음료를 생각을 하다가 북한 두부밥이 생각났습니다.
어떤 식의 음식인지 궁금하시죠? 강민 씨가 설명하는 것처럼 간편하게 만들 수 있지만 건강을 최우선 고려한 영양식입니다.
강민: 북한 두부밥을 그대로 팔면 한국사람 입맛에 안맞아요. 곤드레 나물을 넣고 표고버섯을 넣고 제철 나물을 넣어 만들었고 음료는 국을 빨아먹으니까 건더기가 있고 해서 고민하다가 처음 김칫국물을 생각했는데 냄새도 나고 해서 생각한 것이 백김치 국물이었습니다. 많이 팔리지는 않지만 먹어본 사람들의 반응이 좋습니다. 특히 아이들을 데리고 바닷가에 많이 오는 데 아이들이 잘 먹으니까 부모님이 좋아하시더라고요.
실패를 두려워 하지 않는 젊음이 있었기에 할 수 있었고 더는 물러설 수 없는 절박함이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들었습니다.

강민: 가게를 열어야 하는데 돈이 없었습니다. 이틀 후면 오픈해야하는데 간판이 없었습니다. 간판 만들려고 여기저기 다니다가 돈이 없어서 못 만들었습니다. 너무 힘들었어요. 집에 돌아오는데 버려진 냉장고가 있었습니다. 그것을 보는 순간 저것으로 간판을 만들자고 생각했습니다. 냉장고를 주워다가 닦아서 냉장고 한쪽 면에 철판을 붙이고 용접기를 빌려서 용접해 쇠기둥을 박아서 세웠습니다. 냉장고 한면에 종이를 붙여서 스프레이를 뿌려 듀밥이라고 썼습니다. 하고 보니까 정말 뿌듯했습니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간판이었어요.
장사가 잘돼서 손님이 많으면 신이나서 피곤한줄도 모르겠지만 준비한 두부밥을 하나도 팔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그래도 강민 씨는 긍정의 힘으로 이것을 극복하고 있습니다.
강민: 아침 10시에 열어서 저녁 6시에 닫고 하루 판매 수량은 여기가 바닷가라 비오는 날이면 손님이 아예 없습니다. 그럴때면 만들어 놨다가 다 못팔죠. 처음에는 주변분들에게 나눠 드렸는데 재료값이 만만치 않더라고요. 그 다음부터는 준비해 놓을 수 있는 재료는 준비를 해서 냉장고에 보관을 합니다. 하지만 하루를 넘기지는 않습니다. 남은 음식은 냉동을 해서 저희가 먹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먹어도 질리질 않더라고요. 덕분에 밥은 굶지 않고 있습니다.
북한에서는 어렸을 때 꽃제비 생활을 하다가 15살부터 탈북전까지 장사를 했다는 강민 씨. 고생을 해봤기에 무서울 것이 없고 또 자신의 생각을 알아주는 사람이 많아 힘이 난다고 말합니다.
강민: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것에 너무 감사합니다. 특히 저는 한국 와서 이것 저것 돈도 많이 벌려고 노력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제 마음이 많이 큰 것 같아요. 이것은 돈 많이 벌고 저금을 잘해서가 아니라 수 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모여서 제 마음이 큰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런 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눈물나게 감사합니다.
제2의 고향 오늘은 강원도 고성에 있는 듀밥집 강민 씨의 이야기를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