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2의 고향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남한에 간 탈북자들은 너무 다양한 직업을 놓고 고민을 하게 됩니다.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또 얼마나 많이 돈을 벌 수 있을까? 직장은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곳이면서 동시에 경제적 자립을 가능하게 해주는 역할도 합니다. 오늘은 남한생활 8년차인 김은화(가명)씨의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청진이 고향으로 탈북해서 7년 동안 중국에서 힘든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다 옛이야기처럼 할 수 있습니다.
김은화: 제가 북한에 있을 때만 해도 고난의 행군이라고 배급도 없었고 굶어 죽는 사람이 엄청 많고 버려진 아이들도 많았습니다. 지금도 자다가 그때 일이 떠오르면 끔찍합니다. 지금은 새로운 인생을 사는 것과 같으니까 진짜 인생역전이죠.
올해 52살이 된 김 씨는 남한에 가서 처음에는 공장에서 자동차 용품을 포장하는 단순 노동 일을 했습니다. 그리고 음식 만드는 것에 흥미를 느낀 김은화 씨는 한식 요리사 학원에 다니면서 자격증도 땄지만 그때는 경기가 안 좋아 자기 식당을 내는 것은 엄두를 낼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손 놓고 정부 지원으로만 살 수는 없는 일. 다시 일자리를 찾기 위해 지역에 무료로 배포하는 구인광고를 보고 찾아간 곳이 환경미화원 일입니다.
김은화: 야간 일이 힘들었습니다. 야간 일을 시작하면 교대가 아니고 전문으로 하기 때문에 체력적으로 힘들었고 청소라고 해서 빗자루가지고 쓸고 닦고 하는 줄 알았는데 기계도 있고 약품도 있고 하는 방법이 다 있어서 그런 것을 배우는데 힘들었습니다. 3개월 정도 하고 그만 두려고 했는데 나만 건강하면 나이제한 없이 할 수 있는 일이라서 계속 하게 됐어요.
환경미화원이란 쉽게 말해 청소를 하는 직업입니다. 그곳이 건물 내부가 될 수도 있고 거리가 될 수도 있습니다. 청취자 분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남한의 어느 지방도시에서 환경미화원 1명을 채용한다는 공고를 잠깐 소개합니다.
김효선: 한명의 미화원을 군에서 뽑는데 서류심사를 하고 실기 시험과 면접을 봐서 점수가 높은 사람을 뽑는다. 서류전형에서는 운전면허가 있고 부양가족이 많으면 많을수록 점수가 높습니다. 그리고 폐기물처리시설 주변지역에 사는 사람에게 더 많은 점수를 줍니다. 그리고 실기 시험에서는 총 45점을 주는데 팔굽혀 펴기와 윗몸일으키기를 각각 40회 이상 하고 40kg마대를 팔을 펴서 머리위에 들고 서 있기를 70초 이상하면 만점을 받을 수 있습니다. 면접은 일반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용모 바르고 품행 단정한 사람이 최고점을 받습니다. 이렇게 모든 과정을 거친 후 동점자가 나올 경우는 나이가 많은 사람이 우선인데 나이가 같을 때는 생년월일이 빠른 사람이 합격됩니다.
김은화 씨에게 직접 어떤 일을 하는 지 들어봅니다.
김은화: 주간과 야간이 있습니다. 주간에는 아침 8시에 출근해서 낮에 고객이 들어오니까 화장실, 매장, 에스컬레이터, 비상계단, 엘리베이터 청소 그런 것을 관리하는 겁니다. 백화점에 찾아오는 고객을 위해 환경을 깨끗하게 하는 거죠. 야간에는 바닥 세정 박리 이런 일을 주로 합니다.
김 씨는 현재 지방 도시에 있는 16층짜리 건물 백화점에서 환경미화원 소장으로 있습니다.
기자: 몇 년 하셨는데 소장이 되신 거죠?
김은화: 경력은 얼마 안됐습니다. 한 3년 됐는데 소장으로 일한지는 1년 6개월입니다. 대한민국은 사람의 능력에 따라서 열심히 배우고 해서 올라간 거죠. 처음에 밑에서부터 배워서 반장으로 해서 야간에 감독도 하고 배울 것 다 배우고 해서 된 거죠. 청소도 빗자루로 쓸고 닦고 하는 것이 아니고 다 기계로 하니까 일 배우서 된 거죠.
16명의 환경미화원이 주야간으로 건물 지하 2층부터 10층 까지 청결을 맡고 있습니다. 김 씨는 매일 이들이 하는 일을 관리하는 일을 합니다.
김은화: 기계는 탑승식이라고 차를 운전하는 것처럼 운전하면서 바닥을 세정하는 것이고 보행식은 끌면서 청소 하는 것이고 미화부분에서 일하는 분들은 기계를 6개 정도 다룰 줄 알아야 합니다. 편한 것 보다 신경 쓰는 것이 더 많고 책임감이 있죠. 기계와 약품을 쓰니까 모든 안전사고를 신경 써야 하고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은 전부 카메라로 찍어서 보고 해야 해요. 직원들 휴가 일정도 짜야하고요. 옛날처럼 손으로 적어서 일지 보고하고 하진 안잖아요. 전부 컴퓨터로 하니까요. 컴퓨터 배우는 것이 좀 힘들었습니다.
지역마다 또 회사마다 사정이 달라 환경미화원의 월급이 딱 얼마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100만 원에서 200만원 사이로 미화로 하자면 월 1천 달러 정도는 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다른 직업과 달리 특별히 나이 제한을 두지 않고 있기 때문에 김은화 씨는 건강이 허락될 때까지 지금 하는 일을 계속 할 계획이라고 했습니다.
김은화: 저는 60살 초반까지 일하자 생각합니다. 그리고 시골에 가서 살고 싶습니다. 집사고 땅이 있는 곳에서 텃밭 가꾸고 하려고요. 자꾸 생각이 나는 것이 북한에서 밖에다 땅가마 걸어 놓고 밥해먹던 것이 밥맛이 좋았는데 그게 많이 생각납니다. 그래서 앞으로 좀 돈을 더 벌어서 땅도 사고 시골 가서 살고 싶어요.
제2의 고향 오늘은 울산에 사는 탈북여성 김은화(가명) 씨의 이야기를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이진서입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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