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노동당 간부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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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2의 고향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많은 수의 탈북자는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탈북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남한에 정착한 2만 7천여 명의 탈북자 중에는 노동당 간부나 고위직에 있던 상류층 인사도 있습니다. 오늘은 노동당 행정간부 출신의 조천국(가명) 씨의 얘기입니다.

조천국: 네, 안녕하세요? 저는 조천국이라고 하고요 남한에 온지 4년 됐습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밝은 목소리로 자신을 소개하는 조 씨는 북한에선 경제적 어려움 없이 살던 사람입니다.

조천국: 저는 북한에서 잘나가는 측에 속했습니다. 군대 나갔다 와서 전문대를 다녔어요. 저희 아버지가 남한 사람이었습니다. 제가 이북에 있을 때는 남한출신이라고 해도 차별이 없는 줄 알았어요. 남조선에서 올라온 사람들은 조국통일의 밑천이요 금싸라기라고 해서 그대로 믿었죠. 열심히 군대 복무를 해서 한 개 사단에 한사람 추천 받을 수 있는 김일성 대학에 추천 받았는데 부결되는 사건이 있었어요. 그것이 부결된 이유가 아버지가 남한 출신이어서 그런다고 해서 김정일에게 편지를 썼어요. 그때 23살이었는데 좀 다른 사람보다 특이하게 보여야 하겠기에 혈서를 썼어요. 그런데 그 사건으로 해서 오히려 전 탄광으로 무리제대 돼서 갔어요.

출신성분이 그리 좋지 않았지만 연구소를 거쳐 탄광 기사장, 건설사업소 지배인으로 승승장구 하던 조 씨는 노동당 간부출신입니다. 출신성분을 극복하기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고 능력을 인정받았던 것이죠. 하지만 북한에서의 간부직이란 것이 외부세계에서 보는 것처럼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조천국: 그게 결코 제왕 자리가 아니에요. 자본주의와 달라서 일단 임명직인데 당비서는 책임한계가 없어서 괜찮아요. 그 외는 아니죠. 노동당 간부들이 해당 말단 기업소에 검열을 많이 지시합니다. 노동당 조직부 검열, 심지어 위생방역소 검열까지 내립니다. 현장에 남자여자 화장실이 왜 따로 없냐는 것까지 트집 잡으면서 담배 달라고 하고 불고기 해내라고 하는데 이것을 전부 행정일군이 다 맞춰줘야해요. 이것을 안해주면 모가지 날아가는 겁니다. 밑에서도 왜 배급을 안주나 월급을 안주나 하면서 말이 많죠. 지배인 하려면 상하좌우를 맞춰야 합니다.

뜻하지 않은 일로 당간부직이 날아가고 감옥까지 다녀온 후엔 북한에서 더 이상 살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탈북해 남한으로 갔는데요.

조천국: 오자마자 한국에 확실하게 정착하기 위해선 몸으로 하는 것도 있겠지만 학문을 배우자 했죠. 나오는 해에 6개월 만에 대학원에 들어갔어요. 북한식으로 말하면 직업을 두 개 이상 가지고 있었던 거예요. 낮에는 민간 방송사에 나가서 일하고 저녁에는 공부하고 주말에도 대학원에 공부하러 가고 해서 석사 학위를 땄죠.

남한생활이란 것이 막연하게 생각하는 것처럼 열심히 최선을 다해 땀흘려 일만하면 다 이뤄지는 그런 곳이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성공하기 위해 다시 말해서 잘살기 위해 모두 열심히 일하는 것은 물론이고 경쟁을 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갖춰야 하는 것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조천국: 남북한에 같은 언어를 쓴다고 해서 같은 것이 아니더라고요. 제가 직접 부딪쳐 보니까 아니더라고요. 식당에서 한 번 일하자고 해서 갔는데 북한하고 다른 것이 식당 메뉴가 엄청 종류가 많더라고요. 김치 지지게 하고 하면 알아듣겠는데 요리 이름에 외래어가 많아서 봐도 모르겠더라고요. 식당 주인이 나하고 일을 못하겠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주위 사람하고 소통이 안 되니까요. 돈을 쥐어주면서 내보내더라고요. 좀 더 연습을 하고 오라고요. 그래서 제가 외래어를 하루에 10개씩 외워서 한 3-4천개 단어를 외우니까 낫더라고요.

같은 조선말인데 서로 통하지 않는 언어 즉 북한과 달리 외래어가 절반인 남한말을 알아듣기 위해 노력 했고 남한체제를 이해하기 위해 대학원에서 공부 합니다. 조 씨는 어딜 가나 무엇을 보던 유심히 살피는 버릇이 생겼는데요. 북한에서 부러워만 하던 일을 남한에서 원 없이 하기도 합니다.

조천국: 제가 처음 오자마자 상점에 가니까 먹을 것이 넘쳐나는데 제일 눈에 와 닿는 것이 각종 맥주와 명태더라고요. 북한에서 제일 잘사는 사람이 기차에서나 중요한 장소에서 기린 맥주나 아사이 맥주에 명태를 안주삼아 찢어 먹는 것이 최고거든요. 그때 노동당 간부할 때도 맘 놓고 못 먹던 것이었는데 놀랐죠. 저만 그런 것이 아니고 친구들도 그렇다고 하더라고요.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생각하고 우선 경제적 문제 해결을 위해 일한다는 조 씨는 공부만큼이나 실생활에서도 많은 것을 배우려고 하고 있습니다. 남북한의 문화 차이에서 오는 이해할 수 없었던 문제들은 많은 부분 시간이 해결해 줬는데요.

조천국: 한 3년 지나니까 이 사회의 밝고 어두운 것이 보여요. 북한에 비하면 백배도 나아요. 먹을 걱정이 없잖아요. 그것만 보면 천국인데 성경에 나오는 천국이나 불교에 나오는 극락세계하고는 달라요.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라서 안 좋은 것도 있어요. 처음에는 안보이던 것이 3년이 지나니까 보여요. 예를 들면 내가 어떤 직종에서 일하면 되겠구나 하고 보이더라고요. 자본주의 사회에 왔으니까 장사를 해야겠다. 경제를 배우면서 창업을 하려고 하고 있고 요즘은 부동산 공부를 하면서 직업을 잡았어요. 부자가 돼야겠고 이왕이면 고향 갈 때 돈 벌어 가야지 빈손을 가면 뭐라고 하겠어요.

현재 집이나 사업체 건물 또는 땅을 사고파는 부동산 매매 일을 하고 있는 조천국 씨는 앞으로 자신의 모습이 많이 변화할 것이란 사실을 굳게 믿고 있습니다.

조천국: 우선 10년 뒤에는 박사 학위를 받았을 것이고 돈을 벌어서 창업을 할 것이고 그때쯤이면 완전한 남북한 통일은 안 되도 경제합작사업은 하고 있을 겁니다. 그때 남한기술을 북에 알리는 학원도 차리고 싶고 상담하는 컨설팅 회사도 차리고 싶고 그런 쪽으로 미래모습을 그려보고 있어요.

제2의 고향 오늘은 조천국(가명) 씨의 이야기를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