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2의 고향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많은 수의 탈북청년이 남한에 가서 대학 졸업을 하고 취업을 합니다. 그 중에는 사원의 수가 1천명이 넘는 규모의 큰 기업에 다니는 사람도 있는데요. 오늘은 남한생활 9년차가 되는 회사원 이희애(가명)씨의 이야기입니다.
이희애: 저는 솔직히 승진에는 욕심이 없어요. 제가 잘할 수 있는 일을 하고 회사에 이익을 주고 저도 만족하고.
이희애 씨는 대기업에 입사한지 6개월이 됩니다. 이제야 좀 자신이 뭘 하고 있는지 뭘 해야 되는지 아는 정도가 됐습니다. 지금 떠올려도 마지막 관문인 면접이 제일 떨렸습니다.
이희애: 제가 면접을 볼 때가 7월이었는데 1 시간 정도 빨리 갔는데 기도도 하고 먼저 가서 예상 문제도 같이 갔던 언니와 얘기 나누고 면접 전에 신입사원 입장에서 모의면접 연습도 하고 그랬어요. 1년 정도는 준비를 했어요.
최종 10명중 두 명을 선발하는 신입사원 채용. 단번에 합격하는 사람이 많지 않고 워낙 취업이 어려운 때라 떨어져도 어쩔 수 없지만 안 된다는 생각보다는 꼭 입사를 해서 멋진 회사원이 되겠다는 생각뿐입니다. 그래서인지 당시 면접 때 이야기는 말을 중단시킬 수 없을 정도로 이어지는데요.
이희애: 인솔자를 따라 가서 먼저 한자시험부터 봤어요. 그것 보고 논술보고요. 시험이 쉬울 거라고 했는데 제가 한자 2급 자격증이 있는데 어려웠어요. 중간정도는 했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제가 제일 잘 했다고 하더라고요. 점심은 회사에서 직원 식당을 이용했는데 따로 돈을 내는 것이 아니고 회사에서 먹여주는 거예요. 직원들이 굉장히 많았는데 여기서 일하면 여기서 먹겠구나. 먹는 중에도 음식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르겠고.
이젠 누가 봐도 이 씨의 고향이 북한이라고 하면 놀랄 수밖에는 없을 정도로 일반 남한주민과 같게 되었는데요. 13살 때까진 북에서 가족과 살았습니다. 어릴 때 탈북해서 나쁜 기억이 많지는 않지만 마지막 북한의 모습은 더 이상 살 수 있는 그런 곳은 아니었던 거죠.
이희애: 고향마을은 항상 가고 싶은 곳입니다. 시골이어서 정다운 곳이에요. 제가 구호소에 한 달 정도 있었는데 거기서 죽기 직전까지 갔었어요. 어린이는 나라의 왕이라고 했는데 정말 거기엔 죽기 직진까지 간 아이들밖에는 없었어요. 그래서 중국으로 갔죠. 북한에서도 안하던 꽃제비 생활을 중국에서 했죠.
중국에서 8년을 살다가 남한에 가서 대학졸업을 하고 직장인이 됩니다. 대학생활도 재밌게 했고 이 씨의 말만 들어보면 모든 탈북자가 남한에 가면 쉽게 취업이 된다고 잘못 생각할 수도 있겠는데 그건 아닙니다. 주변을 봐도 취업이 안 돼 일자리를 찾고 있는 사람이 아직도 많습니다.
이희애: 솔직히 제가 대견스럽다고 하기 보다는 안도의 한숨을 쉴 때가 많아요. 라디오나 텔레비전 보면 아직 직장을 찾는 친구들 이야기도 있고 그런 것을 볼 때는 다행스러운 생각이 들고요. 그리고 엄마가 좋아 하시니까 기분이 좋죠.
대학생활 때와 달리 직장인이 되고 부터는 일단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이 빨라졌습니다. 대학에 다릴 때는 취업만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슬슬 그때가 좋았어 라고 말하게 됐습니다.
이희애: 대학생활이 자유롭죠. 방학도 있고요. 아침에 꼭 6시에 일어나야 하는 것은 아니고 어떤 때는 수업을 안가도 되고요. 회사는 1분도 늦으면 안 되고 갑자기 출근을 못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죠. 대기업은 아주 조그만 예외도 인정을 안 해요. 한 달은 눈이 굉장히 빨간 거예요. 앉아서 계속 컴퓨터를 보니까요. 화장실을 가도 눈치가 보이고요. 정말 힘들었어요. 선배가 왜 항상 눈이 토끼같이 빨갛냐고 물어서 창피했어요. 두 달째가 되니까 눈은 괜찮은데 어깨가 뭉치는 거예요. 세 달까지는 정말 아침에 회사 가는 것이 싫었어요. 열심히 일한다고 한 것이 사고만 쳐서 다음 날 가서 고치고
8시까지 출근하자면 6시에는 일어나야 하고 퇴근시간이 정해져 있지만 일이 끝나지 않으면 집에 간다는 생각은 꿈도 못 꿉니다.
이희애: 저는 총무부에서 일하는 데 자료입력하고 고용업체 관리하고 비용처리하고 관련 보고서 정리하고 하는 일입니다. 6시에는 일어나고 지금 겨울이니까 새벽 달 보고 나갔다가 달을 이고 들어오고 그러죠.
퇴근을 한다 해도 바로 내시간이 되는 것은 아닌데요. 직장동료들과 친목을 도모하는 퇴근후 술자리 바로 회식이 있기 때문이죠.
이희애: 2차 3차 가는 것은 알고 있었고 술 마시는 방법도 다양하고요. 예상을 했지만 직접 참여를 하니까 쉽지는 않더라고요. 처음에는 힘들었는데 몇 번 하고 나니까 요령도 생기도 적응이 되더라고요.
기자: 보통 하면 몇 시까지 합니까?
이희애: 정말 빨리 끝나면 9시 반이지만 늦게 끝나면 새벽 1시정도요. 남자 직원들은 더 늦게까지 마시거든요. 남자가 아닌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이제 좀 회사생활에 적응이 된다는 이희애 씨. 큰 욕심 부리지 않고 사내에서 사랑받으며 잘 지낼 수 있도록 항상 노력하는 자세로 일하고 있다고 하는데요. 그런 이 씨의 일상이 어쩜 너무 평범하게 보이기까지 합니다.
이희애: 주말에 학생 때는 등산을 하거나 친구 만나고 자전거 타면서 운동하고 했는데 이젠 퇴근하면 공부도 해야 하니까 시간이 없어요. 주말에는 영어 공부하고 그래요. 또 잠도 자고 빨래하고요.
제2의 고향 오늘은 탈북여성 이희애(가명) 씨의 이야기를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입니다. 고맙습니다.
0:00 / 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