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2의 고향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지적 호기심이 많고 사람들과 소통하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 오히려 새로운 것에 도전할 때 느끼는 긴장감이 자신이 살아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한답니다. 대구에 사는 탈북여성 이순희(가명) 인데요. 50살이 지났지만 만학도로서 대학을 졸업하고 어려운 이웃을 찾아 봉사활동을 하는 이 씨를 기자가 만났습니다.
(아파트 앞 도로)
기자: 북한에서는 어떤 일을 하십겁니까?
이순희: 신문사와 출판사에서 일했는데요. 북한의 출판사는 중앙당 기관지인 노동신문 외에는 정치적은 논설의 논평을 실을 수가 없어요. 지방 신문은 철저하게 경제신문으로 하는 당중앙위원회에 방침이있어요. 그러다보니까 지방지라고 해서 자기 지방의 정치적 사건이나 특이한 사건은 절대 실을 수 없는 거죠.
기자: 지시한 내용만 담아서 배포하는 일을 하는 것이군요.
이순희: 결국은 노동신문사에서 발간한 논평이나 논설을 지방신문의 앞면에 하지 자체 논평은 실을 수가 없어요.
기자: 그런 세상에 있다가 여기와서 인터넷을 사용하고 하니 어떤 기분이세요?
이순희: 너무 딴 세계에 온 것 같아요. 검색을 하면 다 나오는 거예요. 밤세워 보고 있어요.
기자: 어떤 것을 주로 보세요?
이순희: 제일 재밌는 것은 세계 사건사고, 동물의 세계를 보면 시간 가는 줄을 몰라요. 너무 재밌어요.
이 씨가 최근 구입했다는 승용차를 구경한 다음 주차장에서 다시 아파트로 돌아가면서 한 이야기는 자신의 직업과 관련한 주제였습니다. 북한에서와 달리 남한에서는 인터넷을 통해 뉴스를 보고 세계 소식을 알수 있어 좋다는 겁니다. 그리고 아파트에 도착해서는 뭔가 보여줄 것이 있다며 물건을 펼쳐 놓습니다.
( 이순희 씨 거실)
이순희: 이건 사회복지사 자격증과 학위증이예요. 제가 전문대학을 다니다 더 공부하고 싶어서 4년과정을 공부하고 복지사 자격증과 학위증입니다.
북한에서 남한 영화와 드라마를 보다가 보위부에 발각됐고 처벌을 피해 탈북했다는 이순희 씨. 그가 펼쳐 보이는 것은 여러장의 자격증과 대학졸업장 입니다.
기자: 이 수료증은 뭔가요?
이순희: 이거는 사회단체에서 조직하는 건데 남과북 여성의 삶의 이야기 나누기인데 그 모임의 강의에 참가해서 받은 거고요.
기자: 여기 보이는 것은 뭔가요?
이순희: 제가 대학 다니면서 받은 자격증들입니다. 웃음치료사 자격증, 간호조무사 자격증, 레크레이션 자격증, 보육교사 자격증, 사회복지사 자격증 2급, 요양보호사 자격증, 심리상담사 자격증까지 공부했어요.
기자: 이렇게 많은 자격증을 따는 이유는 뭔가요?
이순희: 나도 이젠 남한사람으로 당당하게 살아가고 싶은 거예요. 여기는 자격증이 많아야 취직을 해요. 그리고 뭔가 알면 알수록 그에 맞게 행동할 수있지 않겠는가?
기자: 여기 와서 몇 살때부터 공부를 시작하신거죠?
이순희: 제가 51살부터 했어요. 2010년부터 했으니까요. 7년을 계속 일하면서 공부를 했어요. 물론 기초수급자로 있으면 일 안하면서 공부할 수 있지만 저는 일과 학습을 병행하고 싶었어요. 일하면서 야간에 공부하는 산업체협력반에 가서 공부했어요.
짧은 만남을 통해 이 씨가 열심히 살고 있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는데요.
(아파트를 나서며)
기자: 음식도 많이 주셨는데 먹지도 못하고 갑니다.
이순희: 하나도 안드시고 가시네요.
이 씨는 기자에게 차를 타는 곳까지 배웅을 하면서 지나치는 건물에 대해 친절히 설명을 해줍니다.
(아파트 앞 자신이 봉사활동을 하는 복지관)
기자: 이 건물이 복지관입니까?
이순희: 네, 범물종합사회복지관이예요. 여기서 어르신들하고 주변 사회적 약자에 대한 교육도 하고 무료급식도 하고 못사는 사람들은 생활도 도와주고요.
기자: 저기 노란옷을 입고 봉사활동을 하시는 겁니까?
이순희: 네, 저 사람들이 자원봉사자들인데 다른분들에게 지금 반찬 봉사를 하는 겁니다. 저희 더불향봉사단도 무료급식을 하는데 설거지 봉사를 하고 있어요.
기자: 얼마나 자주 하시는데요?
이순희: 직장다니는 분들이 많아서 자주는 못하는데 한달에 한 번 계속 하고 있어요.
아침에 노인요양원에서 간호조무사로 일하고 이번 가을 졸업하기 전까지는 밤에 야간대학을 다녔습니다. 그리고 한달에 한번은 봉사기관을 찾아 무료급식이나 청소일 등 사회약자를 찾아 지역주민과 행동으로 나눔을 실천하는 이순희 씨
(아파트 앞 도로)
기자: 공부하는 것이 재미있으세요? 지금은 좀 쉴 때가 아닌가요?
이순희: 아니요. 저는 공부가 너무 좋아요. 왜냐하면 공부를 하면서 새로운 지식을 얻는 것도 있지만 새로운 남한사회에 대한 다방면적인 지식, 상식 사람들과의 관계를 배우는 겁니다. 단순희 지식만 배우는 것이 아니예요. 그러니까 자꾸만 공부에 호기심을 느끼고 배우는 것이 재미난 겁니다.
기자: 자기가 알고 싶은 것을 혼자 공부할 수도 있는데 학교를 다니면 시험도 보고 부담도 있잖아요.
이순희: 물론 부담도 있죠. 시험 스트레스도 있잖아요. 그런데 사람이 긴장을 하고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사는 것이 오히려 건강에 좋은 것 같아요. 맥을 놓고 가만히 있으면 오히려 아파요. 긴장하면서 일하면서 공부 하면 보람도 있고 오히려 건강에도 좋더라고요.
학교 다닐 때는 힘들었는데 대학을 졸업하고 나니 다시 대학원 즉 준박사 과정을 공부할까도 생각하게 된다는 이 씨.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며 5분 정도를 걷자 3층 짜리 낮은 건물 앞에 진열된 농산품이 눈에 띄입니다.
(장터)
이순희: 장터에요. 우리가 과실을 사는 작은 장터예요. 여기서 부식물을 많이 사요. 마트 보다는 여기가 좀 싸요.
집에 돌아가기전 계란을 사야 한다면서 들른 가게
(슈퍼마켓 실내)
이순희: 밖에서는 일반 과일 채소를 팔고 지하에 있는 것은 마트인데 모든 것이 다 있어요. 북한식으로 말하면 상점이죠.
기자: 얼마나 자주 오세요.
이순희: 일주일에 한 두번 와요. 여기는 미용실도 있고요. 북한으로 말하면 종합편의시설이예요.
기자: 자주 사는 물건은 어떤건가요?
이순희: 저는 콩나물, 두부, 양파 그리고 이북에서 귀한 오징어 사요. 그리고 두유, 우유…여기는 다 있어요. 설탕, 밀가루 어떤 때는 밀가루 사다가 전도 붙여먹고 해요. 여기는 아이스크림도 있고 다 있어요.
평범해 보이는 삶 그러나 북한에서와는 전혀 다른 생활을 하는 이순희. 남한생활 7년이 그의 인생을 어떻게 변화 시켰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기자의 눈에는 자신이 가고 싶어 하는 곳을 직접 차를 몰고 다니고 하고 싶은 공부를 하면서 직장생활을 하는 모습이 당당해 보입니다. 이 씨가 대구에 전입했을 때부터 도움을 줬던 대구 하나센터의 조재희 센터장입니다.
(대구하나센터)
조재희 센터장: 이순희 씨를 처음 뵈었을 때는 그냥 일반 50대 여성들처럼 직장을 뭘 구해 드리지 그런 고민이 있었는데 이순희 씨가 공부를 시작했을 때 놀랐어요. 그 공부를 정말 맹렬히 하시고 그것을 직업으로 이어가고 사회생활도 정말 적극적으로 하는 모습이 저한테 배움이 많이 됐어요. 그리고 나이 들어 공부한다는 것에 대한 부정적인 선입견을 가진 분들에게 이순희 씨 얘기를 해요. 그렇지 않다. 자기 욕구를 가지고 맹렬히 했을 때 훗날 차려지는 것과 우리가 안내해주는 데로만 갔을 때와는 모습이 너무 달라진다. 나이가 얼마나 되시던 간에 본인이 가지고 있는 욕구를 돕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다 이렇게 생각하게 됐고… 지금은 정말 마음으로 대단한 언니예요.
(기차 현장음)
제2의 고향 오늘은 기자가 대구에 사는 이순희(가명)씨를 만나 그의 남한생활을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입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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