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2의 고향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주변을 돌아보면 의외로 어렵게 사는 사람이 참 많습니다. 그런 어려운 사람을 보면 상대적으로 내가 좀 나은 형편에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하고요. 또 어려웠던 때를 생각하면서 내일은 좋아질 거야라면서 스스로를 위로하기도 합니다. 오늘은 한 부모 가정으로 아들과 함께 남한에 정착한 서향(가명)씨의 얘기 전합니다.
서향: 제가 이루고자 하는 꿈이 있으니까 대학도 다니고 제가 현재 잘하고 있는 것이 그것밖에 없는 것 같아요. 잘 해서 훗날 내가 원하는 곳에서 일하자
함경북도 무산 출신의 서향 씨는 광주대학에서 중국어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이제 1년만 더 하면 졸업인데요. 고향을 떠나 남한에 가서 대학생이 될 줄은 탈북 할 때만 해도 상상을 못했죠.
서향: 1998년에 우리가 탈출했습니다. 온 가족이 탈출했는데 아버지만 안 잡히고 남동생, 엄마, 언니 다 잡혔습니다. 1월 달이었어요. 먹을 것이 하나도 없었어요. 눈도 많이 오고요. 엄마랑 저랑 중국 가서 식량을 구해 와 온 가족이 먹자고 갔는데 거기서 바로 인신매매 꾼에 잡혀 팔려갔어요.
당시는 하도 탈북하는 사람이 많아 북한으로 잡혀 나가도 간단한 조사만 받고 풀려났을 때인데 나와서는 바로 다시 식량을 구하기 위해 중국으로 갑니다. 그리고는 중국 공안에 또 잡혀 북송당하고요.
서향: 북한사람들은 잘 먹지 못해 그런지 모르겠는데 척보면 알 수 있어요. 중국 사람들은 얼굴에 생기가 있는데 북한 사람들은 먹지 못해서 얼굴이 상해 그런지 중국 경비초소를 지날 때 검열한다고 차가 초소에 서는데 공안이 차에 올라서자마자 우리보고 내리라고 하더라고요. 우리 가족만 내렸어요. 2003년 10월까지 팔려간 곳에서 살다가 공안한테 잡혀 북송 당했어요. 북한에 가서 교화 생활을 1년 정도 하다 다시 중국 가서 살다가 2011년에 한국에 오게 됐어요.
중국에서 신분문제가 해결이 됐다면 그곳에 계속 살았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언제 다시 공안에게 잡혀 북송될지 모르는 상황에서는 안전이 담보되는 곳으로 갈 수밖에 없었던 거죠.
서향: 남한에 올 때 그냥 잘 살 수 있다는 생각만 했어요. 중국에서는 신분증도 없어서 공안에 쫓겨 다녀야 하니까 한국에 오면 국적도 받고 떳떳하게 살 수 있다는 생각으로 왔어요. 한국 사람들은 다 잘사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보니까 열심히 안하면 못사는 거예요. 여긴 자기가 하는 만큼 벌 수 있잖아요. 북한 사람들은 아무것도 없는 상태로 시작하니까 어려움이 있죠. 정부에서 지원을 해준다고 하지만 그것만 가지고는 엄청나게 모자라죠.
임대아파트를 받아서 광주에 가자마자 대학공부를 하고 싶었지만 처음에는 어떻게 학교 진학하는지 몰랐고 당장 먹고 사는 문제부터 해결해야했습니다. 그때 서향 씨는 31살 그리고 아들이 3살이었습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시간제 일입니다. 남한사람들이 아르바이트 또는 줄여서 알바라고 말하죠.
서향: 일은 식당, 마트 계산원, 주유소, 백화점 일을 해봤어요. 기본은 말투가 틀리니까 힘들었어요. 북한 말투는 쎈편이예요. 북한사람들끼리 얘길 하면 한국 사람들이 옆에서 들으면 싸우는 줄 아는 겁니다. 저는 친근감을 가지라고 한말인데 고객은 억양이 쎄네? 말투가 세네 하면서 안 좋게 생각하더라고요. 그런 말을 들으면 안타깝고 맘이 안 좋았어요.
남한생활 1년이 되고 서 씨는 대학진학을 합니다. 북한에서 고등중학교를 졸업해서 그냥 열심히 하면 될 줄 알았는데 만만치가 않습니다. 교수님이 수업 중에 외래어를 너무 많이 사용하니까 받아 적기가 힘들 정도였습니다.
서향: 따라갈 수가 없었어요. 처음에는 교수님이 하는 말씀 하나하나가 생소하고 그래서 수업시간에 자주 물어봤어요. 이해가 안 되는 경우는 질문을 하는데 자꾸 하니까 눈치가 보이더라고요. 나이가 제일 많았는데 자꾸 물어보니까 학생들이 날 우습게보지 않을까 신경이 쓰이더라고요.
아침에 아이를 유치원에 맡기고 학교에 가서 수업이 듣고 수업이 끝나면 일터로 갑니다. 그리고 중국에 있는 탈북자가 북송 됐다는 소식이 들리면 중국당국을 향해 탈북자 강제북송을 중단하라는 구호가 적힌 푯말을 들고 시위에도 참여합니다. 남들이 보면 사는 게 힘들어 보일지 몰라도 서향 씨는 한 번도 힘들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답니다.
서향: 그 이유는 북한에서 고생을 많이 해서 남한에서 힘든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이런 생각을 해요. 북한에서는 한 끼도 잘 못 먹는 생활을 했거든요. 먹을 것이 없으면 눈이 펑펑 온 날에도 들에 나가 옥수수 알이나 콩알을 주어서 죽을 해먹고 했거든요. 18살까지 그런 생활을 했기 때문에 지금 집이 있고 이렇게 생활하는 것이 행복입니다
혼자 있을 때는 노래를 듣기도 하는데요. 제일 좋아하는 노래는 ?
서향: "내가 말했잖아" 그냥 노래가 좋아요. 가사가 슬픈 때는 같이 울고 기쁠 때는 서로 웃어주면서 용기와 힘을 잃지 말고 살자는 그런 가사예요.
이제는 좋은 일만 있어 항상 웃으며 살고 싶다는 서 씨. 그는 아들과 함께라면 부러울 것이 없다고 하네요.
서향: 행복을 느낄 때는 아들이 좋아할 때요. 솔직히 바라는 것이 있다면 아들이 건강하게 잘 커주고 원하는 일을 할 수 있으면 좋겠고 기회가 된다면 아들하고 세계여행도 하고 싶어요.
제2의 고향 오늘은 탈북여성 서향(가명) 씨의 이야기를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입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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