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2의 고향’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남한에 정착해 새로운 출발을 시작하는 북한출신 주민의 이야기를 탈북자의 지역사회 정착을 돕는 기관인 하나센터 관계자를 통해 들어보는 ‘제2의 고향’ 시간입니다. 오늘은 먹을 것이 풍부하고 전통민요인 판소리가 유명한 인심 좋은 고장 전라북도 편입니다.

남한에 사는 2만여 명의 탈북자 중 전라남북도와 광주에 사는 탈북자는 1천여 명에 이릅니다. 특히 전라북도 지역은 남한에서 ‘가장 한국적인 도시 힘 솟는 도시’라는 구호를 내세우고 있는데요. 전주에 탈북자의 초기 정착을 돕는 하나센터가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전라북도의 시군인 군산, 익산, 남원, 정읍 , 전주에 사는 탈북자는 전주에 있는 YWCA 즉 기독교 여자 청년회에의 도움을 받아 남한생활의 첫걸음을 내딛고 있습니다. 먼저 이명자 센터장의 말부터 들어봅니다.
이명자: 이분들에게는 희망을 주는 것이 우선입니다. 예를 들어 탈북자와 얘기할 때 전북 하나센터를 이용해라 혼자 힘으로 정착하려고 하면 3년 걸릴 것이 이곳을 이용하면 그만큼 시간을 앞당길 수 있다. 단순히 언어가 아닌 마음과 영혼을 담아 얘기를 하면 그분들이 다 받아들여 주더라고요.
2005년부터 이미 탈북자에 대한 쌀 나누기, 의료지원 등의 행사를 해오고 있는 전라북도 YWCA는 지난해 4월 본격적으로 탈북자 지역적응 센터인 하나센터를 운영하면서 전문 상담사 2명을 포함해 8명이 탈북자의 지역사회 정착을 돕고 있습니다. 센터 실무자 조미영 실장은 이 단체가 북한 주민과 인연을 맺게 된 배경을 이렇게 말합니다.
조미영: 저희 YWCA 기관이 통일에 대한 운동을 해왔습니다. 예를 들어 북한에 있는 YWCA 재건을 위해 100원 후원, 북한에 분유 보내기, 국수 보내기, 쌀 보내기 운동을 지난 70년대부터 쭉 저희 단체에서 통일에 대한 활동을 꾸준히 해오던 차에 2,000년도에 서울에서 북한 바로 알기 운동과 탈북자를 대상으로 한 상담원 교육을 한 적이 있고 …
전주에 살면 살수록 이 지역 사람들은 전주가 아닌 완주로 생각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쉽게 말해서 한자인 ‘전’이 ‘완’으로 바뀐다는 말인데 그만큼 자연재해도 없고 넓은 평야에서 생산되는 풍부한 곡물로 먹을 것이 풍부해 살기 좋은 고장이 바로 전주라는 겁니다. 전주는 판소리의 고장으로 유명합니다. 매년 전주대사습놀이라고 판소리 경연 대회를 하고 있는데요
(흥부가 판소리)
전주에서 전라북도의 각 지역은 자동차로 1시간 반이면 갈 수 있습니다. 하나센터는 남의 일이 아닌 친척이나 친구, 동료로 가족같이 생각하면서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마음으로 탈북자의 초기 정착을 돕고 있습니다. 하지만 공산사회 배급주의에 익숙해진 탈북자들은 가끔 지역 주민의 온정어린 성금이나 상품도 모두 똑같이 분배받기를 원해 실무를 진행하는데 어려움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조미영: 균등하게 줘야 한다는 점에서 북한 사람들이 이 지역에 왔어도 개념이 달라 적응이 어렵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죠. 그래서 2006년에 연중 경제교육, 주민자체센터 가기, 시장 체험하기, 기업탐방, 비빔밥 만들기 등 행사를 통해 매월 탈북자들을 한 번씩 만나는 시간을 갖고 또 고용지원센터에서 취업 박람회가 있으면 사전에 적성 검사를 하고 함께 가서 면접도 연습해 보고 이력서도 써보고.
전라북도 하나센터에선 탈북자가 경제적 자립을 할 수 있도록 직업을 찾아 주는데도 애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전라북도에 사는 탈북자는 하나센터 사람들과 모두 가족이 되고 있습니다. 이영란 생활상담사는 탈북자가 지역사회에 서서히 변화하는 과정을 직접 체험하면서 일하고 있습니다.
이영란: 37세 됐는데 지금 빨리 중국에 있는 아이를 데려와야 한다는 겁니다. 하나센터에 오자마자 아이를 데려오겠다면서 교육 중에 큰아이 하나 데려왔는데 그 아이를 공부 중에 끌고 나가서 택시 타고 가버리고 머리 아프다고 책상에 머리 박고 있고 같이 공부하는 친구들을 방해할 정도였는데 교육이 끝날 때쯤 우리와 함께 하면서 좋아졌고 지금은 한국 사람과 결혼해 잘살고 있습니다. 또 다른 탈북자는 총각 혼자 전주에 왔는데 북한에선 잘나가는 대학에 다녔지만 여기서 할 줄 아는 것이 없어 밥하는 것부터 도와주면서 대학진학까지 도움을 줘서 이번에 전주에 있는 대학에 갑니다.
(부릿지 음악)
남한에 간 탈북자는 먼저 입국한 탈북자 또는 가족에게 남한의 각 지역에 대해 전해듣습니다. 그리고 서울에 있는 정착지원교육시설인 하나원을 퇴소할 때 가신이 원하는 곳에 거주지 배정을 받습니다. 즉 자신이 앞으로 살고자 하는 희망지역을 적어내고 제비뽑기를 통해 서울부터 제주도까지 살 집을 받는 겁니다. 평양 출신으로 홀로 탈북해 남한 생활을 시작한 이수남(45.가명) 씨도 전주에 거주지 배정을 받아 만족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이수남: 이제 거의 10년 되는데요. 지금 수건 만드는 회사에서 영업 사원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전라도 전주하면 옛날부터 양반 도시라고 하는데요. 비빔밥이 유명하고 콩나물 국밥도 유명하고 사람들 성향은 먹는 것이 풍부한 고장이라 사람들이 온순하고 마음이 넓습니다. 통일될 때까지 살아야 되잖아요. 통일이 되면 평양에 가서 살겠지만요.
이수남 씨는 남한의 전주를 제2의 고향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그동안 남한 여성과 결혼해 슬하에 두 명의 자녀를 뒀고 다니는 직장에서도 인정받으면서 살고 있습니다. 이런 자신감은 이 씨의 말투에서도 느낄 수 있습니다. 어쩌면 전주사람보다 더 심하게 느껴지는 지방 사투리. 이 씨는 말끝마다 전라도 특유의 추임새를 넣어가며 북한의 고향과 남한 생활이 어떻게 다른지를 들려줍니다.
이수남: 엄청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여기는 내가 벌어서 일하면 모두 내 것이 되는데 북한에서는 명령을 받아 배급을 받아 살았기 때문에 비교가 안 되죠. 여기는 자유가 있고 돈을 벌면 집이 됐든 차가 됐든 내 것이 될 수 있는데 북한은 그런 것이 없거든요. 올해는 봉급도 많이 올라가서 적금도 전년보다 더하고 건강하게 살아야겠다는 바람이고 통일이 빨리 됐으면 하는 것은 더 얘기할 것도 없고요.
‘제2의 고향’ 오늘은 비빔밥과 판소리가 유명한 전라남북도 편이었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탈북자들이 제일 가보고 싶은 곳으로 손꼽는 제주도 편입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