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고향] 서울 양천구 탈북자들 "쉽지 않은 적응...하지만 미래는 밝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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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2의 고향’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남한에 정착해 새로운 출발을 시작하는 북한출신 주민의 이야기를 탈북자의 지역사회 정착을 돕는 기관인 하나센터 관계자를 통해 들어보는 ‘제2의 고향’ 시간입니다. 오늘은 탈북자 밀집 지역으로 알려진 서울 양천구에 사는 탈북자들이 남한 주민과 때로는 마찰하면서도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박은실: 처음에는 서로 선입견에 껄끄러웠는데 살다 보니까 지금은 옆집 언니 만나면 웃으면서 잘 지내고 있어요.

남한 생활 10년이 되는 탈북여성 박은실 씨는 처음엔 남한 이웃과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못하고 서로의 존재를 못마땅하게 생각하던 것이 이제는 옛말이 됐다고 했습니다. 과연 북한 주민은 남한에서 몇 년을 살아야 자본주의 사회에 적응하고 자신이 이방인이란 보이지 않는 꼬리표를 뗄 수 있는 것일까?

같은 뿌리를 둔 한민족이지만 북한 출신 주민은 남한에 가면 같은 말을 쓰는 외국에 온 것처럼 느껴진다고들 호소합니다. 무심코 한 행동이 주변 사람의 입방아에 오르고, 사소한 자신의 행동 때문에 이웃이 불편함을 호소하는 일이 생기면서 여전히 서로에 대한 편견과 차별은 쉽게 넘을 수 없는 벽이 돼서 돌아오는 겁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일로 남북한 주민은 서로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으로 생각하는지 서울 남부하나센터 정지은 복지사에게 들어봅니다.

정지은: 탈북자가 지역 사회에 주택을 배정받으면 쓰레기 분리수거나 집에서 술을 마시고 술병을 너무 많이 내놓는다. 여자 집에 남자가 들어가는 것을 자주 봤다. 문란하다는 말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북한주민이 사정 얘기를 한 거죠. 10여 년 동안 가족이나 친척, 동창을 만나지 못했다가 지역사회에서 아는 사람을 만났는데 가게에서 돈을 주고 먹기는 힘들고 또 집에 아무도 없는 상황에서 집에서 회포를 푸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3개월 정도는 이래저래 친구들을 집에서 만나서 풀게 된다.

가정에서 나오는 쓰레기를 버릴 때는 음식 찌꺼기, 일반 쓰레기 그리고 병과 깡통, 신문 등 재활용 물품을 각각 분리해서 버려야 하는데 일부 탈북자가 쓰레기를 마구 섞어 버리면서 지역 주민과 마찰이 있었다는 얘깁니다.

남한에 사는 탈북자 2만 명 중에서 서울과 인천, 경기도 등 수도권에 사는 사람은 70%에 이르고 더 정확히 말하면 10명 중 3명은 남한의 수도인 서울에 새살림을 꾸렸습니다. 최근 몇 년의 남한 통일부의 통계를 보면 매일 50여 명의 탈북자가 남한에 입국하는 데 이들 중 상당수가 중국이나 제 3국에서의 생활을 거치지 않고 처음 자본주의 사회를 경험하기 때문에 이들이 겪는 문화충격은 더 클 수밖에 없습니다.

정지은: 북한에서 직행으로 오시는 분이 있는데 이런 분들은 정말 버스를 처음 보고 큰 건물을 처음 보시는 분들이 많으십니다. 또 이분들이 많이 아프십니다. 그 이유 중 하나가 서울 공기나 전자제품 등에 적응이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머리가 아프다며 뇌 사진을 찍고 하는데 환경이 바뀌면서 적응력이 떨어져서 그런 것 같습니다. 남한에 잘 정착하시는 분들은 돈도 많이 벌고 가족과 잘 지내시는 분도 계시고요.

남한의 각종 문화 시설의 이용이나 지켜야 할 공중도덕 등은 알지 못한다면 당장 생활이 어렵고 이웃과 말썽의 소지가 됩니다. 예를 들어 방음장치가 잘 돼 있지 않은 아파트에서 밤에 큰소리로 떠든다든가 하면 바로 옆집에 피해를 줄 수 있는데 이런 것을 잘 지키지 않아 옆집 주민과 말다툼을 하게 되는 겁니다.

서울의 한 탈북자 밀집지역에서는 지역 주민이 탈북자들이 유입됨으로써 불미스러운 일이 생기고 주변 집값이 떨어진다며 탈북자의 입주를 반대하는 서명운동을 벌이기까지 했습니다. 특히 탈북자들이 모여 사는 지역은 대부분 임대 아파트가 밀집한 지역이기 때문에 남한주민도 영세한 분들이 많은데 그들의 눈에는 탈북자에게 정착금도 주고 대학 학자금도 지원하는 등 탈북자에 대한 정부의 혜택이너무 많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주민의 불만은 지역사회 복지관이나 하나센터에서 남한주민과 탈북자를 불러 모아 대화를 하게 함으로써 서로의 속사정을 알게 됐고 서서히 서로가 상대를 받아들이는 단계가 됩니다.

정지은: 서로 이해하는 거죠. 탈북자는 남한 사람들에 맞춰야 한다는 교육은 많이 받았고 지금도 받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쓰레기 분류나 아파트 내에서의 생활 등을 저희 하나센터나 정착도우미를 만나면 저희가 그런 얘기를 많이 하고요. 하지만 예전에는 탈북자를 중심으로 주류 사회의 문화를 교육하는 형식이었지만 요즘은 좀 바뀌어서 남한주민도 탈북자를 이해하고 수용해야 한다는 식으로 주민통합기획단이라고 해서 징검다리라는 이름으로 저희가 인식개선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브릿지 음악)

탈북해 중국에서 10년을 넘게 살다 남한에 간 탈북여성 김순금(가명) 씨는 서울 양천구에 자녀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현재 직업훈련 학교에서 재봉일을 배우고 있는 김 씨는 주변에서 도와주는 사람이 많아 큰 어려움은 없다면서 남한생활을 잘하려면 우선 자신부터 마음의 문을 열고 긍정적으로 모든 일을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김순금: 하나부터 다 해야 하니까 어렵지만 힘들다고 생각하면 더 힘들고 즐겁다고 생각하면 더 즐겁게 살 수 있다고 봅니다. 주변에서 도와주는 사람이 많아서 모르는 것 있으면 물어보고 도움을 많이 받기 때문에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남한 생활 1년 정도가 된 김 씨와는 달리 양천구 주민으로 10년을 산 탈북여성 박은실 씨는 지금 인쇄소에서 일하는 데 직장에서는 물론 이웃과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면서 어디에 살던 자기 마음먹기에 따라서 살기 좋은 곳이 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박은실: 여기 사람들은 돈에 대해 민감하게 생각하는데 저희는 남에게 빚 안지고 수입에 맞춰 사니까 지금까지는 괜찮았습니다. 수입에 맞춰서 저금하고 밥 먹고 살고 애들 공부시키고 그렇게 있는대로 조절해서 먹고 살죠. 저도 이젠 여기 온 지 10년이 됐는데 우리 꿈보다 아이들이 잘 적응해서 잘 됐으면 하는 마음뿐이죠. 우리는 그냥 아이들 뒷바라지만 해주고요.

정착 초기에 어려움을 호소하던 대부분의 탈북자는 시간이 흐르면서 남한 사회를 알아가고 자신이 맡은 직장에 충실하면서 사회 구성원으로 자릴 굳히게 됩니다. 또 다른 탈북여성 허금이 씨도 남한에서 대학원 과정을 마치고 지금 박사 과정을 준비하면서 탈북자들에게 컴퓨터 기초교육을 가르치는 강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허 씨는 북한에서 태어났지만 이제는 양천구를 떠나선 살 수 없을 것 같다며 자신이 만족하면서 사는 곳이 제일 좋은 곳이라고 말했습니다.

허금이: 고향처럼 느껴지죠. 이사를 좀 넓은 곳으로 가더라도 내가 있는 지역에서 찾고 싶은 그런 마음에 애착이 생겼고 이젠 여기가 제2의 고향이란 생각을 많이 합니다.

‘제2의 고향’ 오늘은 서울의 양천구에 사는 탈북자들의 이야기를 전해 드렸습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