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고향] 유학 다녀온 남한의 탈북 대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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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2의 고향’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남한 땅에 새롭게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탈북자들의 이야기. 북한에서는 출신 성분 때문에 또는 토대가 나빠 배움의 기회를 얻지 못했던 수많은 북한 출신 청년들이 남한에서 당당한 대학생으로 자신의 미래를 설계하고 있습니다. 이들 중에는 대학생활 중 외국에 나가 영어를 배우는 학생도 있습니다. 오늘은 최근 뉴질랜드에서 2년 동안 언어연수 과정을 마치고 남한으로 돌아간 현부흥 씨의 얘기를 전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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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북섬의 동부 해안 도시 타우랑가(Tauranga)에 위치한 공립학교 교직원들이 한국을 방문, 뉴질랜드 유학 및 어학연수 설명회를 갖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한 번의 강제 북송과 재탈출을 거쳐 탈북에 성공한 올해 26살의 현부흥 씨. 현재 남한에서 어머니와 함께 사는 현 씨는 남한 생활이 6년째가 됩니다. 남한에 가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생이 된 현부흥 씨는 최근 발생규모 6.3의 지진으로 큰 인명사고가 있었던 뉴질랜드로 언어연수를 다녀왔습니다. 먼저 간단한 자기소개부터 들어봅니다.

현부흥: 저는 1999년에 나왔습니다. 고난의 행군이 절정에 달했을 때입니다. 제가 북한을 탈출한 때는 많은 사람이 굶어 죽었고 저도 겨울에는 산에 올라가 나무하고 여름에는 밭에 나가서 풀을 뜯고…

탈북해서는 중국에서 5년을 살았습니다. 물론 불법 신분이었기 때문에 학교를 제대로 다닐 수 없었고 중국에서 인터넷 즉 컴퓨터 가상공간을 통해 남한으로 가는 길을 찾아 결국 2005년 남한입국에 성공합니다.

현부흥 씨는 북한에서 하지 못했던 공부를 남한에 가면 정말 마음껏 하리라 마음먹습니다. 그리고 열심히 공부했고 대학에 입학했습니다. 그는 거기에 머물지 않고 더 큰 세상을 경험하기 위해 2년 전 뉴질랜드란 곳으로 날아갔는데요. 그가 공부한 뉴질랜드가 어떤 곳인지 한 번 들어볼까요?

현부흥: 하늘에는 천국이고 땅에는 뉴질랜드다. 왜냐하면 뉴질랜드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자연을 그대로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겨울과 여름 4계절이 있고 지역마다 계절이 다르고 바다도 아름답고 뉴질랜드는 인구가 4백만인데 양의 수는 4천만 마리로 양이 많습니다. 물론 관광지로 유명한 곳이고 가장 중요한 것은 대륙하고 멀리 떨어진 곳으로 남극과 가까운 섬나라입니다.

요즘 남한 대학생들은 졸업해도 쉽게 취직이 안 되기 때문에 대학 생활 중에 수습사원으로 일정 기간을 회사에서 거의 무보수로 일하며 경험을 쌓거나 아니면 좀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집에선 외국으로 영어를 배우러 언어 연수를 많이들 나갑니다. 현부흥 씨의 경우는 고등학교 때 자매결연을 한 학교가 뉴질랜드에 있어 한 달 동안 그곳에 갈 기회가 있었는데요. 그때 대학에 입학하면 현지의 도움을 받아 어학연수를 할 수 있는 약속을 받았던 겁니다.

현부흥: 처음에는 특별하다고 느꼈습니다. 처음 하는 외국 생활이라 말도 안 통했고 모든 것이 특별하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말이 트이고 마음이 통하고 나니까 외모는 다르지만 이곳 역시 사람이 살아가는 땅이로구나. 남한이나 북한이나 중국이나 뉴질랜드나 사람이 사는 곳은 같지만 제가 발견한 것은 서로 추구하는 것이 다르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북한에선 하루 먹을 것을 걱정하며 살지만 남한 사람은 차를 바꾸고, 집을 사고, 좋은 배우자를 만나는 것이 추구하는 것이고 뉴질랜드는 자기 배를 갖고, 전 세계 여행을 다니려고 하고 노후를 준비하고 서로 …

사람 사는 곳은 결국 어디나 같을 수밖에 없다는 진리를 깨친 현부흥 씨. 하지만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를 채우고 나면 그다음부터는 너무도 사는 방식이 다르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남한에서 생활할 때는 모두가 너무 여유 없이 세상이 바쁘게 돌아가 자신도 ‘바쁘다 바뻐’를 입에 달고 살았지만 뉴질랜드에서의 생활은 달랐습니다. 끝없이 펼쳐진 초원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양을 보면서 또는 너무도 파란 바다를 보며 답답한 가슴이 뻥 뚫리는 또 다른 느낌의 자유를 만끽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 여유로운 생활은 다른 넓은 세계도 볼 수 있는 눈도 뜨게 했습니다.

현부흥: 얻은 것은 진짜 많습니다. 일단 생각이 넓어졌습니다. 처음 한국에 왔을 때 북한에 대해 또 남한에 대해서 다 안다고 생각했는데 뉴질랜드에 갔을 때 외국에서 바라본 남북한은 너무 달랐습니다. 안에서 볼 때는 보이지 않던 면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시각이 많이 변했고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한국 음식을 못 먹어서 힘들었고…

북한 청취자 여러분은 과연 뉴질랜드 사람들은 뭘 먹고 살까 궁금하실 겁니다. 현부흥 씨도 말했지만 우리는 밥에 김치가 주식인데 그곳 사람들은 매일 빵에 고기를 얻은 음식을 먹고 그밖에 우유와 치즈 등 유제품을 먹어서 맵고 얼큰한 그런 것이 그리웠다고 했습니다. 자신이 살면서 그동안 먹었던 고기겹빵보다 많은 양을 2년 동안 먹어버린 겁니다. 어느덧 남한에 돌아가서도 아침은 간편한 뉴질랜드식 다시 말해 우유에 곡식을 죽처럼 풀어먹는 식단이 편해졌다고도 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자신이 살던 곳을 떠나 다른 세상을 경험하고 나면 견문도 넓어지고 자신감을 갖게 된다고들 합니다. 그런데 현 씨는 오히려 더 준비하고,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만 커졌다고 하는데요.

현부흥: 제가 사는 세상이 탈북자들만 같이 살아가는 세상이라면 당연히 돋보일 수 있지만 남한 땅에서 수많은 청소년이 외국을 다녀왔기 때문에 저는 그런 친구들과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란 것을 알았고 제가 영어를 잘한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더 잘하는 친구를 만나면 역시 부족하구나 상대적인 부족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올해 초 남한에 돌아간 현 씨는 현재 복학을 준비하면서 최근 남한에 입국한 탈북 청소년들과 함께 공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이들에게는 대학 선배로 또 고향 선배로서 대화를 나누게 되는데 자주 깜짝깜짝 놀란다고 합니다. 26살인 현 씨와 20대 초반의 북한 출신 청소년들의 생각이 너무 다르기 때문입니다.

현부흥 씨는 대학을 졸업하고 나면 대학원까지 그리고 가능하면 그 이상으로 공부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잘되기만을 바라며 탈북이란 길을 택했던 아버지의 마음에 조금이라도 보답하는 길임을 너무 잘 알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현부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여러 장면이 있는데 그중에서 2001년 북송됐을 때 감옥에서 봤던 아버지의 마지막 눈빛이 기억에 남습니다.

현부흥 씨는 힘들 때면 음악을 듣습니다. 좋아하는 곡은 ‘나에게 용기를 주다’라는 노래인데 영어 노래의 가사는 이렇습니다. 내가 우울하고, 내 영혼이 지칠 때 괴로움이 밀려와 나의 마음을 무겁게 할 때 그럴 때, 난 여기서 가만히 조용히 당신을 기다립니다.

(음악: raise me up)

현부흥: 지금 북한에서 이 방송을 듣는 있는 분들에게 제가 한 말씀 하자면 북한은 여러분의 전부가 아닙니다. 세상은 넓고, 너무 아름다운 것도 많고, 사람은 다르지만 정이 있는 것도 많고…북한 나오면 다 죽을 것 같지만 북한 나와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사람 너무 많습니다. 저 또한 그중 한 명이고요. 여러분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북한이 통일된다면 외국에 나가서 저처럼 생활할 수 있는 기회가 주워지길 바랍니다.

‘제2의 고향’ 오늘은 영어를 배우기 위해 대학생활 중 뉴질랜드에서 언어 연수를 받은 탈북 청년 현부흥 씨의 이야기를 전해 드렸습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