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2의 고향’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남한에 정착해 새로운 출발을 시작하는 북한출신 주민의 이야기를 탈북자의 지역사회 정착을 돕는 기관인 하나센터 관계자를 통해 들어보는 ‘제2의 고향’ 시간입니다. 오늘은 서울에서 봉사활동, 북한식으로 말하면 어려운 환경의 사람을 지원하는 탈북자들의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남한의 수도 서울에서 탈북자가 많이 모여 사는 지역 중 한 곳이 서울 노원구입니다. 1천여 명의 탈북자가 사는 노원구는 북부하나센터가 중심이 돼서 탈북자의 초기 정착을 돕고 있습니다. 이 단체 나유진 복지사입니다.
나유진:기본적으로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든가 예를 들어 지하철 타기, 버스 타기부터 시작해서 시장보기 은행 이용 또 지역을 알려면 무엇부터 해야 하는가를 도와줍니다. 그리고 공공기관을 이용하는 부분들 등등 굉장히 세밀한 부분을 지원해 주는 봉사자들이 항상 대기하고 있어서 정말 가족처럼, 친구처럼 마음의 위로를 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고 탈북자는 항상 정부나 민간단체의 지원 대상이 된다고 생각하겠지만 이런 생각은 사실과 다를 때도 있습니다. 노원구에 사는 탈북자들 중에는 자기보다 어려운 환경의 이웃을 도와주는 활동을 하는 ‘나눔봉사단’이 6년째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들 봉사원은 전부 탈북자입니다.
나유진: 처음 나눔봉사단이 만들어진 것은 남한에 와서 여러 가지 혜택과 도움을 받은 분들이 이제는 우리도 사회에 좋은 일을 하고 싶다는 얘기가 나오면서 저희 복지관과 같이 본인보다 더 어려운 사람에게 도움을 주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 분들이 모여서 시작됐고 지금은 함께 진행하고 있습니다.
현재 나눔봉사단은 탈북여성 정진화 씨가 단장을 맡고 있습니다. 정 씨는 2002년에 남한에 입국해 비교적 생활에 안정을 찾은 탈북자입니다. 남한에서 여행 안내원으로 일하는 정진화 씨는 틈틈이 비는 시간을 이용해 활동하고 있습니다. 초창기에는 6명으로 시작한 자원봉사가 수도 지금은 20여 명으로 늘었습니다.
정진화: 저희가 일을 하면서 하기 때문에 자주는 못하고 한 달에 2번 정도 하는데 처음에는 노원구에 사는 독거노인의 식사 배달부터 했습니다. 복지관에서 주 6일을 식사 대접을 하는데 오지 못하는 분에게는 도시락 배달을 하고 경로식당까지 오시는 분에게는 식당에서 봉사했습니다. 스스로가 스스로를 돕자는 취지에서 새로운 탈북자가 금방 먹을 수 있게 밑반찬을 몇 가지씩 제공을 하면 좋겠다. 북한에서는 단맛을 크게 중시 안 하는데 한국에는 단맛이 많이 들어가고 조미료가 많이 써서 불편한 감이 있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입맛이 안 맞아서 거부감이 있었거든요. 친구들에게 자원봉사도 알릴 겸 한국에서 처음 빈집에서 쓸쓸한데 음식을 나누면서 고향 선배로 나눠주는 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2006년에 봉사활동을 시작했을 무렵에는 남한 내 탈북자만으로 꾸려진 봉사단체가 거의 없었는데 요즘은 중앙 정부에서도 격려해줘서 전국에 20개가 넘는 봉사단체가 만들어졌고 기타 탈북자 단체에서도 소외된 계층의 어려운 이웃을 대상으로 봉사활동을 하는 단체가 많다고 정 씨는 덧붙였습니다. 그리고 그가 말한 봉사란 따뜻한 마음을 주변 사람과 나누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정진화: 사람이 어떤 것을 지정해서 주겠다면 어렵잖아요. 준비하는 데도 시간이 많이 걸리고요. 우리는 솔직히 북한을 떠나 고생하고 해서 몸이 불편한 분이 많습니다. 저는 다른 곳에 가면 항상 말합니다. 저희는 젊고 힘이 있는 사람들이 하는 것이 아니고 봉사를 받아야 될 어머니, 아버님들이 활동한다고 … 나한테 소중하면 다른 사람에게도 소중하겠다는 마음으로 참여하면 나누는 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남한에 간 2만 명이 넘는 탈북자는 그들만의 연계를 하며 생활하고 있습니다. 남한에서 가장 큰 탈북자 친목 단체는 ‘숭의동지회’라고 할 수 있는데요. 이 단체의 최청하 사무국장은 탈북자 밀려들던 2000년 초와 달리 10년의 세월을 보내면 좀 더 성숙한 모습으로 탈북자는 남한 사람들과 어우러져 살아가고 있다고 했습니다.
최청하: 여기에서 집 받고 먹고 사는 데 큰 걱정 없이 정부지원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대다수가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받는 데만 그치지 말고 여기 온 사람들로 사회봉사도 하자 해서 많이들 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얘기하고 싶은 것이 서울시 강서구에 거주하는 고매화 팀이 상당히 잘하고 있습니다. 실버 예술단을 구성해서 노인정에 찾아가고 노인병원에 가서 목욕 봉사도 하고 하는데 금년은 더 활성화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최 사무국장이 추천한 탈북자 봉사단체는 ‘모란봉 실버 예술단’입니다. 보통 실버라는 용어는 머리가 희어진 노인을 상징하는 말로 실제 모란봉 예술단은 50세부터 70세 연령대의 탈북여성 9명이 봉사활동을 펴고 있습니다. 이 단체는 올해 52세로 나이가 제일 어린 탈북여성 고매화 씨가 뜻을 같이하는 탈북여성들과 정기적으로 지역 내 노인정과 병원을 방문해 공연하고 있습니다.
고매화: 저부터 한국에 오는 과정에 딸 하나 있었는데 자식이 길거리에서 사망했습니다. 그런 가슴 아픈 일도 있고 저희 단체 어르신들이 몽땅 심각한 충격으로 자살하겠다고 하는 분도 있고 몽땅 우울증이 잇고 현재 암으로 수술했던 분도 있고 그런데 이분들이 한결같이 봉사하는 이유가 이분들이 하는 말이 잘 먹고 잘 살자고 왔는데 오는 과정에 병과 아픔을 경험하고 가지고 있으니까 나만 기쁘게 사는 것이 아니고 주변에 우리 같은 사람들도 즐겁게 해 드리겠다는 이런 뜻입니다. 별 뜻은 없습니다.
1999년 탈북해서 중국에 가서는 하나밖에 없던 어린 딸을 잃었다는 고 씨. 2007년 남한 입국에 성공해 이제 3년 정도 자본주의 사회를 경험했는데 신기한 것이 참 많다고 했습니다. 그중 하나가 봉사활동인데 자원봉사활동이란 말은 북한 주민에게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고 했습니다.
고매화: 북한에 전화할 때 우리가 이런 봉사를 한다고 하면 북한 사람들은 남한에 가서 자기 돈이나 벌며 잘살면 되는 것이지 무슨 봉사냐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저희도 자본주의 사회에 봉사란 것이 있다는 알고 깜짝 놀랐습니다. 사회주의 나라에도 없는 봉사가 자본주의 나라에 있으니까요.
경로당에서 식사를 돕고 노인들과 산책도 하고 남한의 트로트나 민요를 들려주는 음악공연도 하면서 웃고 즐기는 시간을 갖는 것이 모라봉 예술단의 봉사활동입니다. 기자가 전화를 했을 때도 단원들과 함께 한참 공연 연습을 준비하던 중이었는데요. 올해 67세가 된 또 다른 단원에게 아무런 물질적 대가도 없는 봉사활동을 하는 이유에 대해 들어봤습니다.
예술단원: 저도 아픈데 여기 나와 활동하니 정말 기쁩니다. 양로원 시설 갔을 때 노인들이 바로 걷지도 못하고 바로 앉지도 못하는 분들이 공연을 보고 웃고 박수치고 우리를 안고 싶다고 하는 모습을 보면 우리가 한일이 너무 좋구나 나만 좋은 것이 아니고 어르신들도 얼마나 좋을까? 이럴 때 제일 행복하고 기쁩니다. 한순간을 살아도 기쁘게 생활하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최고입니다.
탈북 과정에서 자녀를 모두 잃었다는 이 탈북여성은 자신보다 더 어려운 사람을 도울 수 있고 실의에 빠졌던 이들이 다시 웃는 모습을 볼 때 세상 사는 기쁨과 행복을 느끼며 자신의 존재가치를 찾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살아 숨 쉰다는 사실이 고맙기까지 하다고 했습니다.
‘제2의 고향’ 오늘은 서울에서 봉사활동을 하는 탈북자들의 이야기를 전해 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