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고향] 부산의 탈북자 "시원시원한 성격 함경북도와 닮아 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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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2의 고향’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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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6일 낚시대회가 열릴 예정인 부산 도심의 동천. 하루 5만t의 바닷물을 흘려보내는 '해수 통수'로 수질이 대폭 개선되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남한에 정착해 새로운 출발을 시작하는 북한출신 주민의 이야기를 탈북자의 지역사회 정착을 돕는 기관인 하나센터 관계자를 통해 들어보는 ‘제2의 고향’ 시간입니다. 오늘은 남한에서 국제항구 도시로 불리는 부산 편입니다.

서울에서 자동차로 4시간 반 정도 남동쪽으로 내려가면 항구도시 부산이 나옵니다. 부산은 남한 제1의 국제무역항과 국제공항이 있고 인구 350만 명이 살아 남한에서는 서울 다음으로 인구가 많은 도시이기도 합니다. 15개 구와 1개 군으로 행정구역이 나뉘어 있는 부산광역시. 부산에 사는 탈북자는 YWCA 즉 기독교여자청년회 산하 새터민 지원썬터(하나센터)에서 정착지원을 받습니다. 부산 탈북자 현황을 이 단체 문미영 팀장에게 들어봅니다.

문미영: 부산에는 탈북자 700여 명이 사는데 사하구와 해운대구에 많이 삽니다. 옛날에는 해운대구에 탈북자가 별로 없었는데 지장군이 해운대구에 포함되면서 그쪽에 새로 생긴 임대아파트로 많이 유입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탈북자의 70%가 여성인데 최근에는 30-40대 아이 엄마가 많아 북한 출신 아동이 많습니다.

부산 주민들에게 북한 사람은 그리 낯설지 않습니다. 지난 2002년 부산 아시안 게임 때 평양의 젊은 미녀로 구성된 290여 명의 응원단이 찾았던 도시가 바로 부산이기 때문입니다. 당시 부산뿐만 아니라 남한 사람들은 북한의 예술부문 인재를 양성하는 금성학원 출신 미녀가 다 모였다, 또는 평양 음악무용대학, 평양연극영화대학데 다니는 여학생들의 꾸미지 않은 순수미가 대단하다는 관심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부산은 북한 사람에게도 낯설지 않을 것이라고 하는데요 문 팀장에게 좀 더 부산에 대해 들어보죠.

문미영: 부산은 한국 제2의 수도이고 국제항이 있는 도시입니다. 바다가 있어서 사람들 성격도 시원시원한 편입니다. 대부분 탈북자분이 한국에 오시면 한국 사람들은 앞에서 말하는 것과 속마음이 다르다고 하는데 그나마 부산 사람이 제일 속과 겉마음이 같지 않냐 할 정도로 화통한 성격이 많고 사투리도 함경북도와 비슷합니다. 억양이나 단어가 많이 비슷해서 고향과 비슷하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부산엔 탈북자 밀집 지역을 중심으로 종합복지관에서 탈북자 지원 활동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사하구에는 몰운대 종합사회복지관이 있어서 정착지원과 취업지원이나 일반 상담을 하고 있으며 부산 인권상담센터에서도 탈북자의 취업지원을 돕고 탈북자가 남한에서 정당하게 누려야 할 권리를 찾아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문 씨는 덧붙였습니다. 이번에는 탈북자의 정착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취업 상황 알아봅니다.

문미영: 아무래도 부산에 항구가 있어 조선소가 있는데 그곳에 꼭 필요한 작업이 용접입니다. 남성은 조선소에 취업을 많이 하고 한국에 해기사라고 배를 운전하는 것인데 국가사업인데 부산에 있습니다. 그쪽에서 공부해 취업한 분도 있고 여성은 무역회사가 많다 보니까 사무회계, 통역 분야에서 일하는 분도 있습니다. 또 부산에는 조용히 공부하는 사람이 많아서 의사가 된 탈북자나 간호사도 많이 있습니다.

여기서 남한의 인기 여가수 장윤정 씨의 노래 올래라는 곡 잠시 들어보시죠.

(장윤정의 노래 올래)

난데없이 남한 노래를 들려드린 이유는 부산에 사는 30대 초반의 탈북여성 강화옥 씨를 소개하기 위해서입니다. 강 씨는 부산에서 노래방을 운영하는 여사장님인데 장윤정의 올래라는 노래를 제일 좋아한다고 합니다. 항상 노래를 흥얼거리며 생활하는 강화옥 씨 그가 느끼는 부산은 어떤 곳일까?

강화옥: 서울보다는 인심이 좋습니다. 물가도 부산이 싸고요. 그래서 살기 까다로운 것은 없습니다. 노래방 영업은 저녁 7시30분부터 새벽 4시 정도까지 합니다. 경기 탈 때는 경기 타고 잘 될 때는 잘되고 그렇죠. 저는 또 노래도 좋아하고 손님들 비위도 잘 맞추니까 적성에 맞다 생각하고 일하고 있습니다.

회사생활을 하다가 봉급쟁이보다는 자기 사업이 훨씬 수입이 낫다며 노래방 사업을 하게 됐다는 강 씨 한 달 수입이 400만 원에서 많게는 500만 원까지 그러니까 미국 돈으로 하면 월 4천 달러 이상은 된다고 했습니다.

강화옥: 시간비가 1 만5천 원에서 2만 원이고 음료수와 안주가 들어가면 보통 3만 원 정도 됩니다. 술을 많이 팔면 10만 원 정도 남습니다. 그런데 일반 고객이면 3-4만 원정도 입니다. 혼자 하지만 바쁘면 도와주는 사람이 있고 하니까요. 서비스를 잘해주면 손님이 계속 올 것이고 나중에 돈을 모으면 큰 노래방을 하고 싶습니다.

(브릿지 음악)

부산이 항구 도시인 만큼 용접일을 하는 탈북자의 얘기도 들어봅니다. 올해로 7년째 큰 배를 만드는 조선소에서 용접일을 하는 박무관 씨인데요 박 씨는 북한에서도 용접공을 일했었지만 남한에서는 수동용접이 아닌 자동용접을 하기 때문에 학원에서 다시 기술을 배운 다음 순수하게 실력으로 현재의 직장에 취업이 됐다고 강조합니다.

박무관: 저때는 탈북자 혜택이 있는 것이 아니었고 오직 제 실력으로 취직이 됐습니다. 제가 다녔던 학원에 63명이 한 기수인데 탈북자는 저 하나였습니다. 그중 5명이 지금 회사에 다니는데 2등으로 졸업해서 취직됐습니다.

부산 사람들은 바닷가에 살아서 겉으로 보면 말투도 투박하고 엄청 거친 것 같지만 진심으로 대하면 바다처럼 넓은 마음을 갖고 따뜻한 사람이 많다고 말하는 박무관 씨. 일부 남한 사람들은 탈북자가 세금도 내지 않았지만 남한주민보다 생활비 지원이나 자녀 대학등록금 지원 등 특혜를 많이 본다고 말하지만 정작 많은 수의 탈북자는 취업이나 생활에서 차별을 받는다는 의견이 있습니다. 그에 대한 박 씨의 생각은 이렇습니다.

박무관: 탈북자라고 차별도 안 받았고요. 사실 탈북자라고 차별을 받는 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 잘 못입니다. 자기 마음을 열어 주지 않으면 어디 가서나 차별을 받게 돼있고 마음의 문을 열면 언젠가는 이해해 주고 인정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세월이 약인 것 같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차별 받는다는 그런 생각을 많이 했는데 지금 보면 내가 북한에서 왔다고 동정하는 것을 마음 내키지 않게 받아들였던 것이 걸림돌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어리석은 시절을 보냈다는 생각에 후회를 많이 합니다.

모든 것이 자기 하기 나름이라는 박 씨는 과연 제2의 고향인 부산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는 것인지? 박무관: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100만 원을 버는 사람은 100만 원을 기준으로 생활하려고 하는 것이고 1천만 원을 버는 사람은 1천만 원을 기준으로 해서 만족하면서 살려고 하는 겁니다. 그렇지만 100만 원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은 천 만원을 벌어도 만족을 못 할 것입니다. 저는 제가 버는 소득에 충족하면서 부족함이 없이 삽니다.

‘제2의 고향’ 오늘은 남한의 항구도시 부산에 사는 탈북자 편이었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중공업 도시인 울산 편입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