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2의 고향’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남한에 정착해 새로운 출발을 시작하는 북한출신 주민의 이야기를 탈북자의 지역사회 정착을 돕는 기관인 하나센터 관계자를 통해 들어보는 ‘제2의 고향’ 시간입니다. 오늘은 남한에서 산업의 수도로 불리는 울산광역시 편입니다.

남한에서 중화학 공업도시를 손꼽으라고 하면 제일 첫 번째가 인구 100만 명이 사는 울산입니다. 북한 주민도 잘 아는 현대그룹의 조선소와 자동차 공장이 있고 울산에는 또 석유화학 공단과 정유화학 관련 공장이 밀집해 있는 도시입니다.
울산 시청이 컴퓨터 인터넷 가상공간에 소개한 내용 중 울산의 하루라는 통계를 올려놓은 자료를 보면 하루 출생인구, 교통사고량 등 재미난 것이 많은데요. 그중 울산에서 소비되는 고기가 소는 하루에 55마리(마리당 600kg) 돼지는 880마리(마리당 100kg)란 부분이 눈에 띕니다.
울산에는 현재 200여 명의 탈북자가 거주하고 있습니다. 지역적 분포로 따져볼 때 이 숫자는 탈북자가 제일 적게 사는 제주도 다음입니다. 하나센터 관계자에 따르면 울산에는 신규 전입자보다 2-3년 이상 된 거주자가 많다는 것이 관계자의 말입니다.
김민경: 몸이 아파서 일을 못 하지 일자리를 못 구하신 분은 거의 없습니다. 울산 지역은 그나마 오신 지 오래된 분이 많고 신규 전입자가 많지 않습니다. 그분들이 북에 있는 가족을 불러와서 자기가 일을 하고 있으니까 다른 일자리를 알아봐 주는 겁니다.
울산하나센터는 탈북자가 밀집해 사는 울산 중구의 사회복지관에서 운영을 맡고 있습니다. 참고로 이 복지관에서는 지난 2005년부터 지역에 편입한 탈북자가 남한 사회에 잘 적응하게 하도록 돕고 있습니다. 여러 사업 중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공부방과 입학 전 유아들을 돌보는 어린이 방 사업은 탈북자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습니다.
김민경: 엄마들이 아이들이 학교에서 준비물을 하나 챙겨 오라고 해도 외래어를 몰라 어려워합니다. 덧셈 뺄셈도 북에선 더하기 덜기라고 용어가 다릅니다. 그래서 부모님이 아이들 학습지도를 전혀 못 하는 겁니다. 저희에게 와서 학습지도를 하고 준비물도 스케치북 탬버린 이런 게 뭔지를 몰라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브릿지 음악)
남한에 간 탈북자는 초기 정착에 꼭 필요한 주택지원과 함께 일정 기간 생활비 지원을 받습니다. 하지만 정부 지원금은 최소 생활에 필요한 금액으로 결국 자신이 사회 활동을 통해 생활비를 벌어야 합니다. 남한 사람과 똑같이 경쟁을 통해 자기의 꿈을 실현해 가는 울산 거주 탈북여성 김춘화 씨의 말을 들어봅니다.
김춘화: 처음에는 이북하고 남한하고 문화적 차이도 있고 해서 좀 적응이 안 됐는데 사람 마음이란 것이 북이든 남이든 다 똑같잖습니까? 다 자기가 하기 나름이고 지금은 울산 떠나서는 못 살 것 같고 제 고향처럼 느껴져요.
함흥이 고향이 김 씨가 남한의 울산을 제2의 고향으로 느끼는 데는 시간이 좀 걸렸지만 직장 생활을 하면서 지역 사회에 뿌릴 내릴 수 있었습니다. 서울에서 1년을 생활하고 취업문제로 울산으로 간 김 씨는 서울과는 달리 지역 주민과 동화돼 비로소 마음의 안정을 얻었다고 말합니다.
김춘화: 울산은 지방이리기 보다 현대 자동차, 현대 중공업이 있어서 일자리가 많습니다. 서울은 보통 회사가 경기도에 전자 회사가 있는데 여기는 자동차 공장이 있습니다. 우선 편한 것은 일자리가 많아서 아무 곳에나 취업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았고 인건비도 여기는 다른 곳과 비교해 비쌉니다. 그다음에 바로 동해라서 10분 정도 나가면 바다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고향 이북도 바닷가인데 바다와 같은 곳에 있으니까 한 번씩 주말에 놀러 나가서 회도 먹어 좋고 또 경상도 사람을 보면 이북 말을 많이 씁니다. 북한에서 애기를 보고 얼라라고 하는데 여기도 똑같이 그럽니다. 옛날에 경상도 사람이 북에 갔는지 모르겠지만 그런 공통점도 있고 서울 사람은 매운 것을 잘 못 먹어도 여기 사람은 매운 것을 엄청 좋아하거든요.
울산은 남한에서 탈북자가 가장 적게 사는 지역 중 하나입니다.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임대주택이 많지 않아 탈북자가 주택 배정을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런 주택 사정도 최근에는 많이 변했습니다.
김춘화: 내가 여기 온 것이 4년인데 올때보다 많이 변했습니다. 임대 아파트도 하나였는데 지금은 많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집도 더 멋있게 많이 지었습니다.
참고로 김 씨가 말하는 고속철도는 25,000v 전기로 가는 열차인데 시속 300km 이상으로 운행돼 서울까지 가는데 자동차로 5시간 걸리던 것을 절반으로 줄인겁니다.
김 씨는 현재 식품과 생활용품을 전문으로 파는 대형 가게에서 2년째 일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반장으로 승진해서 25명을 통솔하는 위치에 선 겁니다. 세상에 거저 되는 없다는 김 씨의 정착 성공의 비법은 간단합니다.
김춘화: 남보다 부지런히 뛰고 남보다 조금 더 밤잠 안자고 노력하고 하면 월급도 자꾸 올라가잖아요. 처음에 100만 원에 들어갔는데 지금은 128만 원입니다. 내가 대한민국이 왜 좋은가 하면 능력이 있으면 얼마든지 내가 그 자리에 올라갈 수 있다는 것은 인정합니다.
(브릿지 음악) 30대 후반의 울산에 사는 또 다른 탈북여성 정영은(가명) 씨가 말하는 울산에 대한 소감입니다.
정영은: 무뚝뚝한 면은 있지만 성격도 좋고 솔직한 것도 좋고 또 옆에서 탈북자라고 정을 주고 그럽니다. 울산이 산업 단지가 많아서 공기도 안 좋고 하다는 말을 들었는데 와보니까 산도 있고 바다도 있고 너무 좋네요.
정 씨는 보험회사에 다니고 있습니다. 아이의 엄마로 또 가정일을 하면서 지금의 회사에 근무한 지 2년 만에 팀장의 자리에 오른 억척여성입니다. 정 씨는 북한에서는 식의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기가 원하든 원하지 않던 일을 해야만 했지만 남한에서는 억지로 마지못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한 여자로서의 자기 자릴 찾기 위해, 남들보다 더 나은 생활을 하기 위해 사회생활을 한다고 말합니다.
정영은: 처음에 보험회사에 들어와서 금융에 대한 지식을 알게 되는 것이 기뻤습니다. 돈을 떠나서 우선 모르는 세계를 안다는 것이 좋았습니다. 그리고 남한에서 살려면 반드시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 하나하나 알아가는 과정에 들었습니다. 거기에 대한 지식을 쌓기 위해 컴퓨터나 인터넷을 많이 이용했고 책도 한 달에 3권씩 사서 보고 자산 관리사나 금융 쪽 자격증을 따기 위해 공부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북한에서 교사를 했던 정 씨는 지금은 보험 일을 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다시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도록 남한에서 유아교육학과를 졸업하고 관련 공부도 병행하면서 미래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제2의 고향’ 오늘은 남한의 중화학공업도시인 울산편이었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경상도 편입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