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고향] 광주 광역시 탈북자 "떠돌이 생활 끝내고 두 다리 쭉 뻗고 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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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2의 고향’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남한에 정착해 새로운 출발을 시작하는 북한출신 주민의 이야기를 탈북자의 지역사회 정착을 돕는 기관인 하나센터 관계자를 통해 들어보는 ‘제2의 고향’ 시간입니다. 오늘은 맛과 멋이 어우러진 광주광역시 편입니다.

서울에서 남서쪽으로 4시간 정도 차를 타고 내려가면 광주란 도시가 나옵니다. 광주광역시는 인구 140만 명의 대도시로 남한에서는 서울ㆍ부산ㆍ대구ㆍ인천에 이어 제5위로 호남지방 최대의 도시입니다. 광주는 넓은 호남평야의 곡창지대와 임해공업지대 그리고 수산업 지역을 배후지로 가지고 있어 호남경제권의 중심지로서의 지위도 굳히고 있습니다.

광주에는 서부와 북부 권역으로 나눠져 지역 하나센터에서 탈북자의 초기 정착을 돕고 있습니다. 먼저 서부 하나센터 윤승현 소장에게 탈북자 거주 현황부터 들어봅니다.

윤승현: 광주에는 매달 평균 8-10명의 탈북자가 전입신고를 하고 있습니다. 현재 광주에는 500여 명의 탈북자가 살고 있습니다. 올해 정식으로 하나센터가 개소하면서 서부와 북부가 나눠지는데 북부는 광주 북구와 전남의 나주 목포를 맡고 있습니다. 올해는 서부에 2명 오면 북부에 1명 정도 배치가 되는 것으로 압니다.

2002년 세계축구경기인 월드컵 본선경기를 치렀고, 2003년에는 대학생 종합 운동 경기 대회인 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를 개최하는 등 국제도시로도 손색이 없는 곳입니다. 또한 광주시는 농촌과 도시가 어우러진 도농복합 도시이기도 합니다. 경지면적은 2000년 현재 1만 4천ha로 쌀농사의 도시이기도 합니다.

남한의 다른 도시에 비해서 공업이 뒤떨어져 있었지만 1980년대에 조성된 4개의 공업단지와 1개의 농공단지에서는 가전 전자제품을 비롯해 각종 제품이 생산되는 산업도시로의 면모도 갖추게 됐습니다.

윤승현: 서울이나 수도권은 일단 상대적으로 임금이 비싸고 일자리가 있다고 하지만 전반적으로 물가도 높고 삶이 박하니까 오히려 요즘은 광주 쪽이 일자리가 충분하고 괜찮다는 말이 탈북자들 사이에 돌아서 예전처럼 여기 오는 것을 꺼리 거나 후회 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광주가 원래 의향이라고 해서 정의로운 도시고 문화예술이 발달한 도시여서 다른 어떤 도시보다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탈북자를 보는 시각이 온화하고 적극적으로 돕고 관심을 갖는다고 생각합니다.

(브릿지 음악)

이번에는 광주의 북구와 전라남도에 있는 도시인 목포와 나주를 담당하는 광주 북구 하나센터로 가봅니다.

오미섭: 지금 통계상 광주에만 479명 있고 북구에 많은데 230명 정도 관할지역에 탈북자가 있습니다.

남한에 간 탈북자는 지역 배정을 받을 때 희망지역의 임대아파트 주택 사정에 따라 거주지 배정이 본인의 희망과 달리 될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희망지역의 아파트가 너무 오래전에 지어진 경우 실망하기도 하지만 광주에 살기를 원하는 탈북자는 주택과 관련한 걱정은 안 해도 되겠습니다.

오미섭: 광주는 주택 상황이 좋은 편입니다. 특히 목포는 임대주택이 들어선지 3년 정도 돼서 아파트가 아주 좋습니다. 그리고 광주로 오면 인심이 좋다는 것을 아실 겁니다. 전라도 쪽이 억양이 강해 처음 들었을 때는 화가 난 지 알지만 있다보면 전라도의 정을 많이 느끼게 됩니다.

(목포의 눈물)

지금 듣고 계신 노래는 남한 여가수 이난영 씨의 목포의 눈물입니다. 그리고 이미자 씨의 영산포 아가씨는 남한에서 한때 인기를 끌던 옛 가요인데요 이 두 곳의 공통점은 항구 도시입니다. 또 광주에서 버스나 자가용으로 한 시간 거리에 있습니다.

하나센터에서 상담사로 일하는 김명희 씨는 남한에서 탈북자가 빨리 정착하기 위해서 꼭 명심해야하는 일은 주위의 도움에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자신의 미래를 설계하며 개척해 가는 것이라고 광주를 찾은 새내기 탈북자들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김명희: 바로 해답이 나오는 일은 많지 않다. 어떤 일을 이루거나 성공하고자 할 때는 그것에 대해 노력을 해야한다. 오늘 뭘 해서 낼 결과를 기대하면 안된다. 탈북자에게서 볼 수 있는 문제 중 가장 눈에 들어오는 것이 생활에서 오는 즉각적 반응을 바란다는 겁니다. 생활에 적응 하기 어려운 이유이기도 한데 이쪽에서 뭔가 얘기를 했을 때 뭔가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관계를 단절하면 안 된다. 주변의 사람도 다 인적 자원이기 때문에 차분히 한 단계 씩 밟아나가야 한다고 얘기해 주고요. 초기에는 다른 사람의 도움을 많이 받겠지만 가능하면 나중에 도움을 돌려줄 수 있게, 스스로 이끌어갈 수 있게, 독립적으로 살아갈 수 있게 직업훈련을 받아서 경제적 독립을 할 수 있도록 하라는 얘기를 많이 해줍니다.

광주에 정착한 탈북자들은 바다가 곁에 있어 풍부한 해산물을 맛볼 수 있고 넓은 농경지가 있어 농업에 종사하기도 하지만 원한다면 생산업체에서 일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공부를 하고자 한다면 대학에 진학해 관심 분야에 대해 배울 수도 있습니다. 광주에 산지 2년이 된다는 탈북여성 이춘심(가명) 씨 입니다.

이춘심: 여기는 인심도 좋고 몇 년을 살아 보니까 여기는 복잡하지도 않고 하나센터에서도 많이 도와주시니까 이젠 광주 떠나선 못 살것 같습니다. 사회복지학과 다니는 것도 조선에서 부터 그랬고 중국에서도 그렇고 노인 복지 쪽에 관심이 있어서 대학에 다니고 있습니다.

또 다른 탈북여성 김옥순 씨입니다.

김옥순: 안녕하십니까? 처음 뵙겠습니다. 도시가 마음에 드는지 아직은 잘 모르겠는데 하여튼 하나센터에서 공부도 하고 선생님들과 대화도 나누고, 북한이나 중국에서 살때 이렇게 많은 관심을 받지 못했거든요. 그래서 지금은 많이 편안하고 행복합니다.

10대 후반 단순히 먹고 살기 위해 고향을 떠나야 했던 김 씨. 중국에서 6년간 떠돌이 생활을 끝내고 광주에 정착한지 이제 열흘이 채 되지 않은 사회 초년생입니다. 이제야 두 발을 편히 뻗고 잘 수 있게 됐지만 북에 있는 가족 생각에 겨울이 더 춥게 느껴진다고 했습니다.

김옥순: 중국에서도 한국에 가서 이전에 북한에서 배우지 못하고 느끼지 못한 자유를 느끼면서 살고 싶고요. 한국에 가면 부모님과 동생을 데려와서 같이 살고 싶다는 생각 많이 했습니다. 어머니하고 동생에게 해주고픈 말은 그저 미안하다는 그 한마디, 곁에 있을 때 잘 도와주지 못하고 부모님을 떠나서 알게 된 것이 미안하고 이제부터 후회는 다시 안하고 만약 어머니와 동생과 같이 산다면 정말 열심히 다시는 고생하지 않고 행복하게 해줄 수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주고 싶습니다.

‘제2의 고향’ 오늘은 남한의 맛과 멋의 도시 광주광역시 편이었습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