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2의 고향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몸이 아플 때 누군가 옆에서 지켜준다면 그 사람은 분명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일 겁니다.
오늘은 남한생활 8년차가 되는 탈북여성 박은영(가명)씨의 이야기입니다.
박은영: 오늘은 출입국 사무소 갔다 오는데 너무 피곤하고 힘들다고 오늘까지 쉬겠다고...
함경북도 무산이 고향인 박 씨는 고난의 행군시절 탈북 해 중국생활을 거친 후 남한에 정착했습니다. 이날은 박 씨의 남편이 일을 쉬고 남한에서의 합법적 신분을 보장받기위해 관공서엘 가는 날이었습니다.
건강이 안 좋아 일은 하지 못하고 집에서 하루 종일 소일하는 박 씨는 고향을 떠난 지 너무 오래돼서 북한에서의 생활은 이제 기억도 가물가물하다고 합니다.
박은영: 고향생각이라고는 무산 시골 골짜기였는데 감자 심고 캐먹고 너무 순박한 사람들이예요. 그런데 엄마 아빠 돌아가시고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었어요. 내가 너무
순하니까 주변 이웃들이 뭐만 없어져도 나를 도둑 취급하는 거예요. 그래서 그때부터 막
독하게 살았어요.
몸이 아프다 보니 경제생활은 남편에게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는 입장인데요. 그래도 정부에서 나오는 보조금으로 큰 어려움은 없이 지낼 수 있습니다.
박은영: 남쪽에서의 생활은 그래도 내 이름으로 집이 있고 여기 와보니까 아파서 일을 못해도 정부에서 지원해주니 크게 아쉬운 게 없어요. 교통도 좋고 하니까 어디든 갈 수 있고요. 이북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어요. 가게를 가도 '고객님 어서 오세요' 이렇게 친절하고
교통 편리하고 이런 것을 알겠는가 하고요. 직접 와서 느껴보라고 하고 싶어요.
듣는 것보다 직접 와서 느껴보라고요.
언제나 자신의 옆을 지켜주는 남편에게는 고마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특히 일가친척 아무도 없는 남한 땅에서 몸도 아픈데 혼자였다면 어땠을까? 정말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인데요.
박은영: 우리 신랑은 저한테 진짜 잘합니다. 조금 아파도 눕혀놓고 밥하고 반찬하고 출근
하고요. 우리는 아플 때가 젤 서러운데 아플 때 남편이 진짜 잘해줍니다. 그리고 일요일은 꼭 자기가 음식을 합니다. 힘들게 일하고 왔어도 내색 않고 마누라 하나라도 챙겨주려고
하는 것이 너무 감사한 겁니다.
크게 가진 것은 없지만 남편 이야기가 나오자 하고 싶은 말이 봇물 터지듯 합니다.
박은영: 내가 뭘 먹고 싶다고 하면 밤 12시라도 사가지고 오는 남편입니다. 그래서 옆에서 친구들이 어떻게 그렇게 남편이 잘하냐고 모두들 부러워합니다.
기자: 소망이 있다면 어떤 겁니까?
박은영: 저는 큰 것은 안 바라고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이대로만 살자. 한국에 온 것도 감사하고요. 통일이 대박이라고 하고 나 역시 그런 소원이 있지만 지금처럼만 살자고 합니다. 큰 부자가 아니고 못살지도 말고, 더 아프지 말고.
남한생활 8년 동안 남들처럼 일을 해서 돈을 모은 것도 아니고 대학에 가서 공부를 하지도 못했고 병원신세만 져야했던 박 씨. 북한에 있을 때부터 아팠던 몸이 탈북과 중국에서 쫓기는 생활을 하는 동안 더 악화됐던 겁니다. 마음처럼 몸이 안 따라 주는 것이 늘 안타깝죠.
박은영: 저는 처음 와서 중국에서도 하도 일을 많이 했기 때문에 한국에서 여자일은 아무리 해도 안 힘들다고 생각했는데 세차장에 가서 일하데 그 사장님이 안 되겠다고 그냥 가라고 하더라고요. 저는 정부에서 다 해주고 하니까 감사한데 나가서 좀 움직이고 일을 좀 해서 벌자하는 욕심이 있습니다. 우리 아저씨는 마음이 쾌활해서 내가 아프면 웃게 해주고 합니다. 그리고 짜증내지 말고 웃으라고 합니다. 웃어라, 웃어라. 웃으면 복이 온다. 그럽니다.
기자가 박 씨와 전화통화를 하는 동안 박 씨의 남편이 일을 보고 집에 도착했는데요. 박 씨가 남편 자랑이 과할정도로 했다고 전하니 하는 말이 이렇습니다.
이철: 잘한 것도 없습니다. 일하러 가서도 마음이 계속 집에 있어요. 출근하는 도중에도
집사람이 아프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고 일단 옆에 없으면 불안한 감이 생깁니다.
집사람이 많이 아프니까요. 저에게는 집사람이 전부라고 생각합니다.
북한여성과 조선족 남성의 만남. 중국에서는 순탄치 않았습니다. 중국에서 탈북자는 범죄자 취급을 받았고 그를 보호하는 남성도 처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남한에서는 누가 신고를 할까 걱정을 하지 않고 살 수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행복입니다.
이철: 내가 중국에서 만났을 때도 내가 동정심이 많은데 처음 북한여자라고 하니까 안보고도 이 여자를 도와줘야겠다는 맘이 생기더라고요. 그렇게 지내다 보니까 정도 들고요.
기자: 남이 보지 못한 부인의 맘을 보신 거군요?
이철: 이제까지 북한에서 못 먹고, 못 입고 그런 것을 내가 다 해줘야겠다. 이런 맘이 처음 만났을 때부터 들었어요.
모든 사람이 새해를 맞으면 소망을 빌듯 박 씨의 남편도 소박한 바람을 전합니다.
이철: 첫째 나는 집사람이 건강했으면 좋겠고요. 남들처럼 많이 벌어 해줄 수는 없어도 남이 하는 것만큼은 해줄 겁니다. 노력할 겁니다.
제2의 고향 오늘은 탈북여성 박은영(가명) 씨의 이야기를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