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고향] 한의과 대학 지망생

원광대학교 한의대 의료봉사단이 남원시 이백면 요천권역 아리원에서 의료봉사 활동을 벌이고 있다.
원광대학교 한의대 의료봉사단이 남원시 이백면 요천권역 아리원에서 의료봉사 활동을 벌이고 있다. (Photo: RF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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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2의 고향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북한 고등중학교에서 간부 활동을 하던 학생이 남한으로 가서 4개월 만에 생각이 바뀌고 전혀 다른 사람이 됐습니다. 이 청년은 주변에 어려운 사람을 살피게 됐고 더불어 사는 세상에서 좋은 일만 하면서 살고 싶다고 하는데요. 오늘은 남한 생활이 2년째 되는 김진혁(가명) 씨의 이야기입니다.

김진혁: 대학입학 신청이 시작되는 것이 7월이니까 그전에 영어 자격증도 따고 한자 공부도 해야 할 것 같고...

함경북도 출신으로 북한에서는 고등중학교를 졸업한 김진혁 씨는 20년을 북한에서 살았기에 남쪽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겨우 감을 잡을 정도로 어색한 것이 많습니다. 요즘은 올 가을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열심히 준비 중입니다.

김진혁: 저는 희망전공이 한의대입니다. 처음에는 법대를 갈까도 했는데 한의학을 하면 집에서도 좋아할 것 같고 북한에서도 의학에 관심이 있었거든요.

보통 대학에 진학을 할 때 사회에 나가면 어떤 직업을 갖게 될지 생각을 하고 전공을 택하는데 김 씨는 한의사 즉 북한에서 말하는 동의사가 되기 위해 한의과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남한에서 한의대를 가려면 보통 공부를 잘하지 않으면 가기 어려운 학과입니다. 김 씨는 그런 얘기를 이미 주변에서 귀가 아프게 들었기에 영어와 한자 공부에 남은 시간을 모두 쏟겠다는 겁니다. 다행히 북한 출신은 특별전형이라고 해서 남한 학생들 보다 비교적 대학진학이 수월해 한번 도전해 보자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김 씨가 남한 생활을 처음 접하면서 놀란 점은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젊은 청년이라서 그런지 그가 느낀 신기함도 여느 중년의 탈북자와는 달라 보입니다.

기자: 한국이라서 놀랐던 점은?

김진혁: 일단 외국과 소통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북한에도 외국인이 있긴 하지만 국민들은 보기가 어렵고 한 번 보면 신기해하거든요. 그런데 여기선 아무리 외국인을 봐도 신기하지 않다는 점이 한국에 왔다는 것을 느끼게 하고 전기 들어오는 것이 신기합니다. 또 사람들 문화생활 수준도 틀린 것 같고요. 그런 점에서 남북한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기자: 외국인은 어디서 보세요?

김진혁: 거리에서도 보고 친구도 미국에서 온 친구, 튀니지, 동남아에서 온 친구들이 있고요. 외국 친구는 교회에서 만납니다.

남한에 가서 처음 1년은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는 해로 정하고 학원에서 컴퓨터 사용법을 익히고 관련 자격증을 취득하면서 나머지 시간은 여행을 하면서 전국을 돌아다니며 보냅니다.

김진혁: 정동진, 경주, 제주도, 포항 그리고 서울에서 기차여행도 하고 주로 산에 많이 갔습니다. 등산을 많이 했습니다.

기자: 연고지가 없는 곳을 여행 하는 것이 낯설진 않았습니까?

김진혁: 그런 것이 저는 좋았습니다. 그런 경험을 통해 남한을 배우는 것이니까요. 물론 한국 사회를 잘 아는 친구와 가면 걱정 없이 그 친구들이 하는 대로 따라가면 되지만 나도 모르고 같이 간 친구도 남한을 모르는 상태에서 가면 어수룩하긴 하겠지만 그 경험들을 통해 배울 수가 있는 것이죠. 저희는 어디 나가려면 표 끊는 것부터 오래 걸리는데 여기선 만 원 정도면 버스타고 어디든 갈 수 있잖아요. 여행 간다고 증명서가 필요한 것도 아니고 그런 것이 좋은 것 같습니다.

기자: 북한의 산과 남한에 있는 산이 틀진 점이 있던가요?

김진혁: 북한에도 산림보호구역이 있습니다. 거기에 가면 동물도 많고 나무도 있지만 보호구역이 아닌 산은 나무도 없고 밭이고 해서 재미가 없는데 한국은 산에 나무도 많고 하니까 등산하기에 기분이 너무 좋았습니다.

남한으로 간 대부분의 탈북자가 경제적인 이유로 쉽게 말해서 먹고 살기가 힘들어 남한행을 택했다고 하는데 김 씨는 학생신분이어서 그런지 그런 생활의 어려움은 없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수업 과목이 달라졌을 뿐 책을 보고 강의를 듣는 것에는 별반 어려움을 느끼지 못한다고도 합니다.

김진혁: 선생님들 실력 차이도 있는 것 같고 학생을 가르치는 법도 다르고요. 일단 교재가 많이 다릅니다. 그리고 용어도 달라서 처음에는 많이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한 달 반, 두 달 정도 지나니까 알겠더라고요. 저는 북한에서 고등중학교를 졸업했으니까 북한에서 배운 용어가 머리에 박혀서 오히려 학교를 안다녔던 친구들이 여기서 배우는 것이 쉽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는 또 학교에서 직책도 맡아서 활동도 하고 했기 때문에 더 어려웠죠.

김 씨는 시간을 내 체육관에 가서 운동도 하고 또 혼자 있을 때면 기타를 치면서 노래도 부르고 이것저것 새로운 경험을 통해 자신이 제일 잘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또 어떤 일에 소질이 있는지 찾아가는 중입니다. 그러면서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나고 있다고 했습니다. 김진혁: 제가 오면서 나를 다 바꿔야겠다고 결심을 해서 진짜 다 바꿨습니다. 성격, 생각 등 모두를 다 바꿔서 북한에서 알던 친구가 지금의 모습을 보면 못 알아볼 겁니다. 깜짝 놀랄 겁니다. 남북한 정치의 차이가 분명한데 그 진실을 알게 돼서 자연스레 바뀌게 됐습니다. 뉴스를 보고 사람 만나고 하다보니까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것 행동 생각이 틀린 것이구나 하고 깨달게 됐습니다.

북한에서와는 달리 남쪽에선 조직이 아닌 개인 즉 자신의 삶을 가장 우선 둔다는 점이 달라졌습니다. 언제든 자신이 원하면 갈 수 있고 노력만 하면 뭐든 할 수 있는 환경에 만족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생각이 서서히 변하면서 앞으로 10년 뒤 그리고 그 이후의 모습에 대해서도 상상을 해봅니다.

김진혁: 제 인생을 길게 봤을 때 북한에서 산 시간보다 한국에서 살아야 하는 시간이 더 많겠죠? 제가 한의대를 간다니까 주변에서 돈을 많이 벌겠구나 하고 말하는데 생명을 다루는 직업을 가지고 굳이 돈과 연계 짓고 싶지는 않고 통일이 되면 남북한 모든 사람들에게 ‘그 사람 참 좋은 사람이네’ 하는 말을 들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고 습니다.

제2의 고향 오늘은 탈북청년 김진혁(가명)씨의 이야기를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