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고향] 남한에서 북한 당 간부보다 더 좋은데 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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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2의 고향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북한에서는 출신성분에 따라 대학도 가고 직업도 당 일군으로 선택받아 좋은 일을 합니다. 하지만 남한에 간 탈북자들은 특별한 직업이 없어도 북한 당 간부보다 더 좋은 생활을 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오늘은 탈북여성 이영순(가명) 씨의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올해 나이 70이 되는 탈북여성 이영순 씨는 지병으로 거동이 좀 불편한데도 집에 있는 날보다 외출하는 날이 더 많습니다. 남한생활 4년이 되는 이영순 씨가 무슨 일로 이렇게 분주한 생활을 하냐고요?

이영순: 아침에 새벽기도도 하고 5도청에서 우리 북한에서 온 사람 행사도 하고 또 다른데 모임이 있고 놀러도 가고 그러죠.

기자: 매일같이 나가시면 버스타고, 지하철타고 점심도 사먹고 하자면 경비도 만만치 않잖아요?

이영순: 그럴 때는 점심은 보장해 줍니다. 버스도 전용버스를 타고 하니까요. 괜찮습니다.

기자: 개인 사비 드는 것은 없군요.

이영순: 개인 차비는 집에서 마을버스 타고 지하철 타러 가기까지 차비 드는 것밖에는 없죠.

이영순 씨가 나가는 모임은 남한에 간 탈북자들의 친목단체나 기독교 단체 모임이 대부분입니다. 이런 모임은 언제나 자발적으로 원하는 사람들에 한해서 모임이 진행됩니다.

이영순: 가면 좋은 일 있으니까 갑니다. 가면 좋은 구경하고 또 점심 잘 해주고 올 때는 그냥 안 보냅니다. 아무 선물이라도 꼭 주지. 그러니까 떠나는 것부터 맘이 즐겁습니다.

기자와 남한에서의 생활 이야기를 해가던 중 최근 먼저 탈북한 딸과 함께 살기 위해 집을 옮겼는데 이번에 정부에서 받은 임대아파트는 새로 지은 지 얼마 되지 않고 또 남한에서도 제일 부자동네에 있는 곳이라면서 신이 나서 자신이 사는 곳이 어떤 곳인지 들려줍니다.

이영순: 14평에서 17평으로 왔습니다. 평수도 차이가 있고 옛집은 문밖에서 집안으로 신호하면 밖에 손님 얼굴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밖에서부터 들어오려면 번호를 누르고 집안에서 들어오라고 정문을 열어주게 돼있고 일단 들어와서 자기 집 문 앞에 와서 왔다고 신호하면 내가 집안에서 밖에 누가 왔는지 얼굴을 확인하고 열어줍니다. 지금 그것이 첫째 잘돼있고 수돗물도 손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발로 설거지 하는 데 밑에를 누르면 자동으로 물이 나오게 돼있습니다.

기자: 뜨거운 물과 찬물 다 그렇게 한다는 거죠?

이영순: 그렇죠. 뜨거운 물 찬물 다 그렇습니다.

이영순 씨는 10층 아파트 건물에 자신이 사는 곳은 7층이라고 했습니다. 평양에선 고층 아파트가 전망은 좋을지 몰라도 전기 사정이 안 좋아서 걸어 올라가고 또 물 공급이 안 돼 고생한다는 생각이 들어 고층 아파트에 사는 것이 어떤가 하고 물어보니.

이영순: 전혀 문제없습니다. 손끝으로 몇 층이라고 딱 누르면 엘리베이터가 올라갑니다. 하면서 올라가고 문제없습니다. 좋다는 것은 뭐라 말을 못합니다. 어제도 내가 일기를 쓰면서 2012년 새해가 밝아 왔는데 너무 좋은 집에서 근심 걱정 없이 살고 온수난방이 돼있고 가스가 다 들어와 음식하고 밥가마에 밥 준비하면 밥이 저절로 되고 방안에 장롱이랑 전자레인지는 말할 것도 없고 벽걸이 텔레비전, 김치 냉장고 없는 것 없이 다 있고 북한에 있었으면 중앙당 간부에 비길 수 없는 생활을 누린다고 ... 빨리 통일이 돼서 아이들에게 오고가지는 못해도 소식이라도 전해주면 좋겠다고 일기를 썼어요.

북한에서 살 때는 매일 먹는 것 때문에 걱정이었는데 남한에서는 그런 걱정은 아예 머릿속에 없다고 했습니다. 오히려 탈북자라고 지원해 주는 곳이 많아서 쌀이 남아돌아 거저 가져가라고 해도 다 먹지 못해 문제라는 겁니다.

이영순: 북한에선 입쌀 먹어보는 것이 소원이었는데 남한에서는 입쌀은 다 도정을 해서 영양분을 더 해주기 위해 잡곡을 찹쌀, 현미, 찰보리쌀 등 7가지 잡곡을 넣어 해먹습니다. 이번에도 쌀을 교회에서도 주고 경찰서에서도 주고 이렇게 쌀이 흔한 것을 생각하면 북한에서 내가 이렇게 먹을 걱정 안하고 사는 것 다 모르잖아요.

최근 이영순 씨의 딸은 외국으로 어학연수를 갔습니다. 그래서 지금 혼자 지내고 있다고 했습니다. 추운 겨울 밤 따뜻한 아파트에서 입을 것, 먹을 것 걱정은 없어도 외롭지는 않은지, 가족 친척이라고 많으면 외로움이 덜할 텐데 하는 생각에 긴 밤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가 하고 물어봤습니다.

이영순: 저는 밤새 전기가 오니까 텔레비전보고 뉴스 보고 드라마 보고 합니다. 그리고 잘 때 되면 머리맡에 책이 얼마나 많습니까? 북한에선 책을 보려고 해도 볼 수가 없는데 여기는 책을 미처 다 보질 못하겠어요.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리고 잠이 오면 불 끄고 자죠.

이영순 씨는 얼마 전 컴퓨터 학원에서 인터넷 교육을 받고 자격증을 땄습니다. 4개월 과정이었는데 자격증 땄다고 정부에서 격려금 200만원 그리고 교육 받는 기간 교통비와 식비를 지원 받고 해서 총 480만원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미화로 하면 3천 달러가 조금 넘습니다. 보통 교육을 받으면서 등록금을 내는 것이 맞지만 이영순 씨는 탈북자이기 때문에 정부가 대신 등록금을 내주고 격려금까지 받은 겁니다. 이것도 누가 시켜서 한 것이 아니라 이영순 씨가 원해서 한 것입니다.

이영순: 노동부에 가서 공부하겠다고 하니까 그 나이에 무슨 공부내고 깜짝 놀라시더라고요. 그런데 난 하겠다고 했어요. 컴퓨터가 다른 것 보다 좀 힘들었는데 지금은 인터넷을 좀 봅니다. 다른 것은 못해도.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면서 자기가 원하고 건강만 허락된다면 아직 너무 하고 싶은 것이 많다고 말하는 이 씨. 올해 2012년에는 정말 좋은 일만 있기를 기원한다고 소망을 말합니다.

이영순: 아직 절반이 거동이 불편합니다. 남이 보기엔 약간 다리를 전다 하지만 전 힘듭니다. 금년에는 최선을 다해 건강해 지기를 바라면서 건강에 많이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북한에 있는 아이들이 전 재산을 다 팔더라도 죽지 말고 살아서 그저 통일되는 그날까지 살아서 만나자는 것이 나의 소원입니다.

제2의 고향 오늘은 탈북여성 이영순(가명)씨의 이야기를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