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2의 고향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남한에는 현재 2만 5천여 명의 북한출신 탈북자가 사는 데 이중 20대와 30대의 젊은 층이 절반을 넘습니다. 그리고 많은 수의 탈북 청년이 대학에서 공부하는데요. 오늘은 2006년 남한으로 가서 현재 한동대학교에서 상담심리와 사회복지를 공부하는 김수희(가명) 씨의 이야기입니다.
김수희: 계절학기 했었는데 지금은 끝났어요. 학교에 남아서 영어 공부 하고 있습니다.
12월부터 새 학기가 시작되는 3월까지는 겨울방학이지만 방학기간에 있는 계절 학기를 막 끝내고 현재 보충학습을 하고 있다는 김수희 씨. 올해 23살의 김 씨는 함경북도가 고향이지만 북한에선 너무 어릴 때 엄마의 손에 이끌려 중국으로 갔기에 고난의 행군 북한을 떠났음에도 불구하고 다행히 아픔의 기억은 없습니다.
김수희: 제가 7살 때까지 산 기억밖에는 없어서 좋은 기억뿐입니다. 집에서 생활했던 기억, 유치원 갔던 기억, 할머니, 이모, 삼촌과 함께한 기억뿐입니다.
남한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70년대 80년대만 해도 농촌에서 소 팔고, 땅 팔아 대학 등록금 댄다고 했지만 90년대 들어서는 집 팔고 2000년대 들어선 빚을 내서 대학 학자금을 마련한다고 말입니다. 한 학기에 적게 잡아도 등록금만 평균 400만원에서 500만원. 미국 돈으로 환율을 계산하면 6개월 등록금이 4천500달러 정도는 있어야 되고 1년이면 학비만 9천 달러정도가 됩니다.
그런데 남한에 간 탈북자는 정부에서 대학등록금 지원을 하기 때문에 무상으로 다닐 수 있고 특히 북한 출신은 외국에서의 생활이 오랜 사람들만 일정 수 입학 시키는 특별전형이란 혜택을 받아 진학이 되기 때문에 남한학생들과 경쟁하지 않아도 됩니다. 하지만 김 씨는 중국에서 10년을 살았기 때문에 대학입학 시험이 아닌 다른 과정을 거쳐야 했습니다.
기자: 대학가기 위해 얼마를 준비한 겁니까?
김수희: 대학을 가기 위해서 준비하기보다 고등학교 검정고시를 먼저 했고 그 다음 대학진학을 준비했는데 6개월 정도 걸렸습니다.
기자: 2년 동안 한국말도 잘 모르고 쓰고 읽고 하는 것이 힘들었겠어요.
김수희: 저는 중국에서 학교를 다녔지만 한국에서 인정이 안돼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과정을 모두 검정고시를 봤습니다.
기자: 중국에서는 한국말을 읽고 쓰고 했습니까?
김수희: 중국에서는 조선족 학교를 다녀서 한국어는 썼습니다.
한국의 통계청 자료를 보면 전문대를 포함한 4년제 대학 제적 학생 수는 2012년 기준 373만 여명입니다. 한국은 인구 10만 명당 전문대 이상 대학생 수가 4천 5백여 명으로 캐나다, 미국에 이어 대학생 수로 세계 3위입니다. 좀 과장해서 말하면 한집 걸러 대학생이 산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남들보다 좀 더 낫은 대학 소위 말하는 일류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남한 학생들은 고등학교 3년 동안 성적을 올리기 위해 정말 치열한 시기를 보내게 됩니다. 김 씨도 나름 대학진학을 앞두고는 많은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기자: 대안학교 끝나고 대학진학 할 때 어떤 고민을 했습니까?
김수희: 일단 고민은 대학에 대한 정보가 없어 힘들었습니다. 탈북자가 많이 가는 대학을 위주로 관심을 뒀는데 그때 갈대상자라는 책을 봤습니다. 한동대학교 총장님 사모님이 쓰신 책인데 그 책을 읽고 감동을 받아서 한동대학에 입학할 생각을 했습니다. 당시에 학교 선생님, 교회 분들이 한동대를 추천했습니다.
기자: 대학도 그렇지만 대학에서 어떤 전공을 공부할지도 고민하잖아요?
김수희: 당시에는 전공에 대한 고민보다는 학교 선택이 중요했습니다. 한동대에서 제가 할 수 있는 과목이 상담심리나 사회복지구나 했죠. 전공은 학교를 선택하고 나서 하게 된겁니다.
기자: 입학 전과 3년 다닌 지금의 느낌은 어떤가요?
김수희: 많이 어려웠어요. 학교가 너무 좋아서 왔고 여기 있는 학과를 선택해 공부하고 있는데 진로에 대한 고민이 생겨서 1년 휴학을 했습니다. 저희 학교에 영어 수업도 많고 수준이 높아서 따라가지 못하니까 고민도 하고 그런 부분이 어려웠습니다.
이제 3학년이 된 김 씨는 남한에서의 대학생활이 행복하다고 했습니다.
김수희: 뭔가 계속 하고 있는 것? 공부도 그렇고 학교에서 여러 활동도 했단 말입니다. 대학생활에 열정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이 많아 기뻤습니다.
기자: 어떤 활동들을 했나요?
김수희: 동아리 활동은 북한중보기도모임에 나갔고 그 외에 1학년부터 현장실습이 많았습니다. 예를 들면 북한 청소년 아이들 대상으로 1:1멘토를 해주거나 과외공부 해주거나 하는 아동대상 봉사활동이 많았습니다.
학교생활 중에 일도 한다고 들었는데 어떤 일을 합니까?
김수희: 학기 중에는 중국어 교수님 조교나 과외를 했습니다. 한 3학기 했습니다. 지금은 근로학생으로 일합니다. 학교에 근로 일자리가 있으면 합니다.
대학에서 만났다는 남자 친구 얘기를 할 때엔 부끄러운 듯 이유 없는 웃음을 참지 못하는 김수희 씨는 아직은 앞으로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열심히 대학생활을 하고 졸업해서는 떳떳하게 사회인으로 한 몫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며 자신의 모습을 점검합니다.
김수희: 저는 아이들을 좋아합니다. 고아나 또는 부모에게 사랑을 받지 못한 아이들을 도우면서 살고 싶습니다. 제가 영적으로 혼자 성장하고 싶은 마음이 있거든요. 저에게는 공부가 전부가 아니고 강한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학교생활이 그런 기회고 시간이라고 봅니다. 눈에 보이는 실적이 하나도 없어서 불안하긴 하지만 열심히 하다보면 언제가 뭔가 하고 있을 겁니다.
제2의 고향 오늘은 남한의 한동대학교에 다니는 여대생 탈북자 김수희(가명)씨의 이야기를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