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사람이 되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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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2의 고향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성공적인 삶을 살고자 노력 싶어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을 겁니다. 하지만 무엇을 놓고 성공이라고 보는가에는 그 답변이 각양각색일 것일 텐데요. 오늘은 남한생활 5년차가 되는 탈북여성 이호희 (가명)씨의 이야기입니다.

이호희: 더 나은 삶을 위해서, 말로만 듣던 남한사회를 알고 싶어서요. 우리와 같은 땅인데 남한사람은 어떻게 생활하고 있지? 우리 북한에서 듣던 남한과 뭐가 다른지 시험해보고 싶어 온 거죠. 어떻게 보면 제 운명이 아닌가 싶어요.

함경북도 출신으로 북한에서 당원이기도 했던 이 씨. 단순한 호기심이 결국 탈북으로까지 이어집니다. 50평생 북한에서 살았고 외국 여행은 한번도 해보지 못한 그가 현재 사는 곳은 남한입니다. 어떻게 잘 살고 있을까요?

이호희: 서로 다른 정치제도에 살았고 문화가 달라 적응하기가 힘들더라고요. 이 사회에 스며들기가 처음에는 힘들었어요. 정착이란 것이 말하자면 물위에 뜬 기름이나 같은데 그게 다시 하나가 된다는 것과 같은데 그 과정을 반듯이 거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과 기름처럼 섞일 수 없었다고까지 말하는 이 씨, 도대체 뭐가 어떻게 다르다는 것인지?

이호희: 말하자면 북한에서는 모든 것이 국가의 결정에 의해 되고 국가 지시에 따라 움직이던 사람이 여기 오면 모든 것을 자기가 결정하고 해결해야 한다는 거죠. 그래서 당황하는 감이 있죠. 어떻게 해야 되지? 어떻게 살아야 되지?...이럴 때 국가에서 뭔가 우리한테 해줘야 하는 것이 아닌가?

기자: 내가 제일 먼저 결정한 일은 어떤 것이었나요?

이호희: 우선 어려움에 부딪혔습니다. 먹고 살아야 하니까 직업을 구해야하지 않겠는가? 성급하게 생각하다보니 앞뒤 가리지 않고 누가 소개해주는 식당일을 해본 겁니다. 북한에서는 식당일을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 6명이 800명의 식사를 보장하는 대학식당에 들어갔다가 너무나 힘들어 기권하고 나왔습니다.

자신이 사는 지역의 한 대학구내식당에서 처음 일자리를 잡은 이 씨는 모든 것이 생소하고 안하던 식당일이 힘겨울 수밖에 없었는데요. 그가 한 일은 단순노동이었지만 빠른 손놀림과 익숙함을 요하는 일이었습니다.

이호희: 부식물을 가공할 수 있게 다듬어 주는 일이었어요. 배추 다듬고, 감자 깎고, 돼지고기를 다듬고 하는 일이예요. 한 끼 먹는 식사량이 양배추만 해도 세마대가 되고 그 큰 식당을 다 청소해야 되지 진짜 이런 일을 난생처음 하다보니까 너무 힘들어서 일 끝나고는 널브러졌습니다.

목숨을 걸고 도강을 했고 새로운 인생을 살자고 굳은 결심을 한 그에게도 힘든 것은 힘든 것이었습니다. 잠깐 한순간 지나가고 말 것이라면 한 번 해보겠지만 앞으로 쭉 식당일을 하면서 살아야한다고 생각하니 신중해질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이호희: 며칠 일하면서 도저히 못하겠다고 생각했어요. 왜냐하면 육체적으로 준비되지 못한 상태로 뛰어들다보니까 집에 오면 다리가 퉁퉁 붓지 눈이 빨갛게 되지 해서 도저히 안 되겠다고 생각하고 포기한 거죠. 그 다음부터 내 육체가 말을 안 들으니까 몸이 감당할 수 있는 일을 찾게 됐어요. 북한에서는 그런 생각을 할 필요가 없었거든요. 국가에서 지정한 일을 하면 되니까요. 자신의 적성을 따진다든가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생각은 안 해요. 오직 당과 수령이 부르는 일터 이래가지고 집단배치를 하는데 거기에 익숙한 여자가 갑자기 먹고 살려고 무작정 직장에 뛰어들다보니 실패한 거죠.

이 씨의 말을 들어보면 청취자 여러분은 남한 식당일이 정말 힘들구나 하고 생각하실 텐데요. 그러면 남한사람들은 어떻게 그런 힘든 일을 할 수 있는 건지?

이호희: 나는 너무 힘든데 남한 분들은 흥얼흥얼 노래를 부르는 것 있죠. 나한테 노래도 부르면서 하세요 하는데 나는 도망가고 싶은 마음뿐이라고 답했더니 웃으시더라고요. 솔직히 말해 그 사람들은 식생활도 우리와 다르기 때문에 벌써 보니까 팔뚝이 실하고 다리도 실하고 육체적으로 저보다 우월했어요.

이 씨는 북한에서 하던 일과는 다른 직업을 선택해 하고 있습니다. 아주 새로운 분야인데요. 처음 경험한 식당일과는 달리 보람도 느끼고 적성에도 잘 맞는다고 합니다.

이호희: 저는 병원에서 간호조무사로 일했는데 간호사 업무를 보조하는 일이다보니 야간근무를 해서 야간대학을 다닐 수 없었어요. 요양원은 요양병원보다는 한 단계 낮은 단계인데 평균수명이 높아지다 보니까 100세가 된 어르신도 병 없이 사는 분도 계세요. 이런 분은 자식들이 모시기 힘드니까 어르신을 돌보는 요양원이 있어요. 이곳에선 조무사가 낮에만 일하기 때문에 낮에 일하고 밤에 야간대학을 다니고 있어요. 또 제가 하는 공부가 사회복지사이기 때문에 일도 하고 공부하는 분야도 심화시킬 수 있습니다.

이 씨가 생각하는 남한생활 정착과 성공 그리고 행복은 이런 겁니다.

이호희: 저는 탈북자가 여기서 국회의원이 되고 공장사장이 되고 하는 것이 성공이라고만 보지 않습니다. 북한에서 살던 때의 습성과 생각, 관점을 다 벗어 버리고 남한사회의 한 성원이 돼서 이 사람들과 직장생활 하고 일상 생활할 수 있다면 그것이 성공이라고 생각해요.

또 계획했던 것을 실현했을 때 제가 한 일에 대해 다른 사람들이 호응을 해줄 때 그때 제가 성취감과 긍지를 느끼게 됐어요. 일하면서 배우는 야간대학에서 열심히 공부해 장학금을 탔을 때 내가 정말 남한에서 잘 적응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성취감을 느끼게 됐어요.

남쪽 생활 5년이 되긴 했지만 아직도 낯설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고 특히 북에 있는 가족을 생각하면 너무 보고 싶어 밤잠을 설치기 일수 입니다. 그래도 웃으면서 이 씨가 당당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이 자신의 인생설계를 하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모든 것을 쏟아 붓기 때문에 걱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겁니다.

이호희: 올해는 경차라도 사서 출퇴근하고 싶어요. 북한에서는 시집갈 때 승용차를 한 번 타봤지 그 외에는 차를 못타봤어요. 그런데 내가 여기서 직접 승용차를 몬다면 어떨까요? 차살 돈이 없는 것이 아니라 운전도 숙련이 돼야 해서 차를 못 샀어요. 내가 차를 몰면 시간적 여유가 생기는 거예요. 지금은 집에서 직장까지 버스로 30분 걸리는 데 차를 몰고 가면 10분 정도 걸리는 거예요. 그러면 나머지 시간으로 다른 것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도 해봤어요.

제2의 고향 오늘은 탈북여성 이호희(가명) 씨의 이야기를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