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2의 고향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여러분 남남북녀라는 말 들어보셨죠. 여자는 북한에 미인이 많고 남자는 남쪽에 미남이 많다는 의미로 씁니다. 지금 같은 분단 현실에서 북한출신 여성이 남한에 가서 남쪽 남성과 결혼을 하면 어떨까요? 오늘은 그 답을 찾아보겠습니다. 남한 생활 10년이 되는 이해연(가명) 씨의 이야기입니다.
최근 남한의 수도 서울에서만 북한 출신 여성과 남한 남성이 만나 가정을 이루는 수가 한해 300명 이상 된다고 합니다. 이해연 씨도 남한 남성을 만나 행복한 가정을 꾸린 여성 중 한 명입니다. 강산이 한 번 바뀌는 동안 정말 열심히 살았다는 이해연 씨.
이해연: 남한에 오자마자 회사에 들어가서 대학공부 하면서 일하면서 남편을 만나 결혼 했고 공부하면서 아이들도 낳고 그 10년 동안 대학 졸업하고 대한민국에서 나고 자란 사람도 취직하기 힘든데 좋은 직장에 취직도 하고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고 10년 동안 그렇게 살았습니다.
기자: 남한에 도착했을 때 나이가 몇 이나 됐었나요?
이해연: 25살이요.
탈북하기 전 함경남도에선 시외대 교환수로 일했다는 이해연 씨는 지금 두 아이의 엄마로 또 한 가정의 주부이면서 직장인으로 1인 3역을 하며 바쁘게 살고 있습니다. 그의 직업은 사회복지사. 이 씨가 하는 일은 남한에 입국하는 탈북자들이 빨리 지역사회에 정착하도록 돕는 일입니다. 쉽게 말해서 어디에 장을 볼 수 있는지 은행에서 돈은 어떻게 찾을 수 있고 저금은 또 어떻게 하는지 그리고 남한에서 자녀입학은 어떻게 하는지 등 일상에서 필요한 정보를 신규전입 탈북자에게 알려주는 것입니다.
이해연 씨가 사회복지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남한 정부에서 탈북자에게 주는 학비지원의 혜택도 있지만 끊임없이 더 나은 미래를 만들고자 하는 본인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이해연: 좋은 사람들 만나고 좋은 제도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나라에서 지원을 해주니까... 저희가 그 비싼 등록금을 개인적으로 내면 공부를 못하죠. 일반 남한 사람도 학비 때문에 대학 못가는 사람 있잖아요. 그런데 저희는 학비를 대주니까 얼마든지 자기만 열심히 하면 졸업할 수 있고 하니까... 공부하는 중에 정말 북한에서 배웠던 모든 것이 거짓이었구나, 대학 다니면서 새 인생을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 새로 배우고 세계관이 만들어지고 다시 재구성했던 것 같습니다.
기자: 남한 적응과정에 정신적인 충격도 많았을 것 같은데 어떤 것이었나요?
이해연: 처음 학교 가서 충격이었던 것이 사회주의에 살면서 거기서 배웠던 인간이 살면서 가장 이상적이고 가장 멋있는 사회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굶어죽었고 북한에서 인간 생지옥이고 사람 못살 곳이라고 한 자본주의 사회는 돌아가면서 내는 세금으로 어려운 사람들 도와 같이 사는 것이 정말 큰 충격이었습니다. 이해연 씨는 자신이 사는 지역에 아파트를 받아 나오는 신규 전입 탈북자들을 만나면 자신이 겪었던 남한사회에서의 시행착오와 나름 성공에 비결을 하나라도 더 알려주기에 애쓰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잘 못된 정보나 환상을 가지고 새 출발을 하려는 사람을 만나면 좀 당황스럽다고도 했습니다.
이해연: 무조건 부자가 되겠다. 북에서 저희 때는 거의 남한 문화를 접하기 못했지만 요즘 사람들은 드라마를 보고 오잖아요. 제일 안타까웠던 것이 드라마에서 나오는 것이 남한이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북에서도 어느 정도 먹고 살았는데 그것을 버리고 드라마의 환상을 가지고 와서 다른 현실을 접했을 때 가장 안타깝습니다.
여기서 화제를 돌려 북한출신으로 남한 사람을 배우자로 만나 사는 결혼이야기 들어봅니다.
기자: 가장 이상적인 결혼이 북한분이 남한 사회를 아는 분과 만나는 것인데 현실에서 걸림돌도 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결혼 과정에서 어려움은 없으셨나요?
이해연: 없었습니다. 남편과는 연애도 2년 정도 하고 결혼에 대해 심사숙고해서 둘 사이에는 큰 문제가 없었습니다. 단 언어에서 서로 이해 못하는 부분에 대해 노력한 부분은 있습니다. 그런데 어른들 입장에서는 저희 같은 외기러기가 홀랑 넘어와서 한 집안과 화합되는 것에 대해 걱정을 하셨습니다. 시댁에선 북한에서 온 사람과 어떻게 맞춰가면서 살지? 이런 선입견도 있고 또 살면서 음식문화와 다른 방식으로 어려웠고 저는 또 북한에서 갖춰놓고 살지는 못해 저는 지금도 치우고 정리정돈을 잘 못하는데 시어머니가 보시기엔 답답하셨나 봅니다. 지금은 10년이 됐으니 나아졌지만 처음에는 그런 것을 못 견뎌 하시더라고요.
청취자 여러분도 이해연 씨의 남편은 어떤 분인지 궁금하시죠? 이해연 씨의 남편 이성진 씨입니다.
이성진: 결혼할 때도 그랬지만 이 사람이 북한 사람이라고 해서 특별한 생각을 하진 않았고 이 사람이 좋았고 지금도 좋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것은 남한사람 북한사람 이런 편견을 가지고 상대를 봤을 때는 자기나 타인으로 인해 생각이 흔들리게 됩니다. 그런 생각은 틀리다고 봅니다. 그런 생각은 할 필요 없고 사람만 보면 됩니다.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고 했습니다. 결혼은 짝사랑과 달리 상대를 존중하며 아껴주는 마음에서 커간다는 것을 이성진 씨의 부인 자랑에서 느껴봅니다.
이성진: 저 사람은 제가 봤던 다른 어떤 여자보다도 현명하고, 이성적이고 매사를 긍정적으로 바라봅니다. 나는 이래서 안 된다는 생각도 제가 여태까지 지켜본 바로는 그런 적이 없습니다. 여러 면에서 집사람은 재능이 많습니다. 요리도 잘하고 그림도 잘 그리고 아이들과 놀아주는 것도 잘하고 저는 집사람이 뭐 하나 부족한 것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돕고 있는 사람들이 행복해 하고 그 도움으로 더 나은 삶을 살고 더 좋은 곳에 취직하는 것에서 보람을 느낀다고 말하는 이해연 씨. 앞으로 이 씨가 이루고 싶은 꿈은 어떤 것일까?
이해연: 크진 않은 것 같습니다. 지금 제가 하는 일이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된다고 하니까 매달 나오는 후배에게 남한사회 정착하는데 위로의 말 한마디라도 해주고 하면서 일하고 그렇게 하면서 제 아이들 잘 키우고 가정 잘 꾸며가고 ... 결혼 초보다 더 소박해진 것 같습니다.
제2의 고향 오늘은 탈북여성 이해연(가명)씨의 이야기를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