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나의 미래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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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2의 고향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직장에서 돌아와서는 집안 일을 하고 한 남성의 아내로 그리고 아이들을 돌보는 어머니로서 1인 3역을 하는 여성은 존경스럽기까지 합니다. 오늘은 회사를 다니면서 박사과정을 공부하는 아내이자 한 아이의 엄마인 황금희(가명) 씨의 이야기 전해드립니다.

황금희: 애를 낳으니까 엄마의 마음을 알겠더라고요. 그리고 부모의 사랑은 한도 끝도 없는 것 같아요.

회사원 황 씨는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이전에 생각하지 못했던 한 아이의 엄마로서 무한한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합니다. 함경북도 장흥이 고향인 황 씨는 2001년 탈북해 남한에 가서는 대학에 진학했고 공부를 하던 중 남한 남성을 만나 결혼합니다. 남남북녀 부부가 탄생한 겁니다. 그리고는 자연스럽게 사랑의 결실을 맺게 되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 하는데요.

황금희: 저는 공부도 해야되고 애도 키워야해서 처음에는 고생을 많이 했어요. 두가지 일을 해야 했는데 애를 낳았을 땐 친정이 없으니까 애 목욕도 시켜야 하고 이유식도 끓여 먹여하는 그런 상황에서 저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없어서 고생을 많이 했거든요. 그런 상황에서 대학원 석사 논문도 써야하니까.

"평범한 것이 가장 행복한 거다"는 말도 있지만 정작 당사자는 학교 수업을 들으면서 동시에 집안일을 한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게다가 단독 탈북이어서 힘들일이 있어도 마음을 털어놓고 말하거나 도움이 필요할 때 부담없이 찾을 수 있는 피붙이가 없었던 것죠. 현실이 그렇기에 어디 물어볼 사람도 딱히 없어 출산일을 기다리는 동안 자기 나름대로 준비를 단단히 합니다.

황금희: 애를 낳기 전에는 인터넷이나 육아책을 보고 애기 귀저기, 이유식, 분유 고르는 법을 알았고 미리 준비도 하고 했죠. 애를 정작 낳고 나서는 당황스러웠는데 마트에 가면 다양한 분유나 옷이 많아요. 그런데 비싸고 하니까 인터넷을 보고 세일 언제 하는지 생각해 뒀다가 세일할 때 저렴한 가격에 구입했어요. 이유식도 책을 보고 만들었어요. 북한에서는 영양가를 생각해서 야채를 넣던가 이런 것은 못봤고 쌀죽만 먹이는 것을 봤는데 책을 보니까 음식에도

궁합이 있더라고요. 양송이 버섯에 참기름 넣고 고기도 갈아서 넣고 그런 재료를 사와서 똑같이 육아책 보고 끓여 먹였던 기억이 나네요.

아이를 낳으면 보통은 친정엄마가 산후조리를 돕습니다. 산모가 건강을 회복하는 동안 신생아도 돌봐주고 집안 일을 해주는데요. 그런데 황 씨의 경우처럼 친정엄마가 없는 경우 낭패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럴 때 찾는 곳이 산후조리원입니다. 잠시 남한의 산후조리원 통계를 보면 2016년 보건복지부는 민간에서 운영하는 산후조리원이 전국에 610곳이 있다고 집계했습니다. 보통 2주 또는 필요에 따라 일정 기간을 산모는 조리원에서 생활하면서 혼자 아이를 돌볼 수 있는 마음의 준비와 몸의 건강을 찾게 되는 거죠. 첫아이를 키우는 엄마는 아이가 조금만 아파도 병원 응급실을 찾게 되는데 황 씨도 예외일 수는 없었죠.

황금희: 저는 초보 엄마라 애를 키워본 경험도 없고 밥을 해먹어 본 기억도 별로 없어서 이유식을 만드는데도 실수를 많이 했어요. 육아책 보고 만들었으면 괜찮았을텐데 그날따라 책도 못보고 나름 생각해서 계란도 넣고 만들었는데 궁합이 안 맞았던 거예요. 아이가 열도 나고 해서 응급실에 데려갔는데 병원에서 음식을 잘못 먹여서 그렇다고 해서 당황했어요.

아이를 낳기 전과 그 후는 상황이 전혀 달라집니다. 예전에는 직장 일을 마치고 퇴근하면 남편만 챙기면 됐는데 이젠 육아까지 담당하면서 또 학업까지 이어가자니 몸이 열개라도 모자란다는 말이 절로 나오게 된거죠. 북한여성에서 이젠 정말 남한여성으로의 변화가 시작됩니다.

황금희: 북한에서 남편들은 가사일을 돕지 않는 다고 알고 있었고 저희 아버지도 가사일을 거의 돕지 않는 분이었거든요. 남한에서 결혼을 했는데 드라마를 보면 남편이 집안 청소도 돕고 주방에서 밥도 해주고 하는 것을 봤는데 처음에는 북한의 문화에 젖어 있어서 고정관념 때문에 남편이 주방에 와서 설거지를 하면 못하게 하고 집안 청소를 하면 못하게 하고 아무것도 집안 일은 못하게 했거든요. 그러다보니까 저만 계속 하니까 힘든 거예요. 나중에는 남편이 하겠다고 할 때 그냥 하게 놔두지 왜 자꾸 말려서 못하게 했을까? 이런 생각이 들면서 지금은 뭘 도와주면 그냥 두거든요. 남편이 같이 집안 일을 하니까 서로 편하고 어떻게 보면 의지하고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는 동반자 같아요.

황 씨는 현재 탈북자의 남한정착을 지원하는 회사에 근무하고 있습니다. 대학원을 마치고 잡은 직장에 만족하고 있는데요.

황금희: 회사생활에서 서로 갈등이 없을 수는 없는 데 즐거운 회식자리에서 스트레스를 풀고

서로 친해지고 즐겁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서 좀 더 일을 신바람나게 할수도 있는 거고요. 처음에는 저도 실수를 많이 했어요. 그래서 동료들에게 믿음을 주지 못했는데 지금은 동료들도 문제 해결을 위해 저에게 묻고 제가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하고 있거든요

자신도 조금씩 직장에서 안정을 찾고 업무에 부담을 느끼지 않으면서 일을 즐길 정도가 됐습니다.

황금희: 회사생활은 서로를 믿고 믿음을 주는 신뢰감 회복이라고 봐요. 이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그리고 일을 할 수 있고 내가 그 일을 함으로써 더 좋은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는 사람으로 인정을 받았을 때 내가 잘 적응하고 있구나 이런 것을 느낄 때 성공했다 이런 느낌을 받았고요.

북한에서 하고 싶어도 하지 못했던 것을 지금은 마음껏 할 수 있답니다. 그중 하나가 공부인데요. 북한에서 말하는 준박사 과정을 끝내고 지금은 박사과정에 있습니다. 사회에선 직장인, 가정에서는 엄마 그리고 자신이 하고 싶은 공부를 병행하는 겁니다.

황금희: 제가 박사과정에서 북한학을 전공하고 있어요. 북한을 좀 더 연구하고 북한에 대해 전문가가 되기 위해 공부를 하고 있는데요. 앞으로 통일 전문가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특별할 것도 없지만 그렇다고 누구나 걷는 평범한 삶이라고 말하기 힘들게 시간을 쪼개가며 자신의 미래를 채워가고 있는 황금희 씨. 그는 벽돌을 하나하나 쌓아서 종국에는 멋진 집이 완성되는 것처럼 오늘을 만들어가고 있답니다.

황금희: 직장인들이 꿈꾸는 것이 다 동일하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먼저 개인적으로는 좀 더 많은 월급을 받고 싶어요. 그리고 최종 목표는 직장에서 최고 경영자가 되는 것이 저의 꿈입니다.

제2의 고향 오늘은 박사과정을 공부하는 회사원 황금희(가명) 씨의 이야기를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