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2의 고향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북한출신 주민이 남한으로 가서 좋다고 말하는 것은 많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마음대로 어디든 갈 수 있는 이동의 자유가 보장된 것이고 또 편리한 생활에 만족감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오늘은 남한 생활 1년이 되는 김미화(가명) 씨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김미화: 여기 있다가 북한에 다시가 살라고 하면 못살 것 같습니다.
해가 바뀌면서 이제 스물세 살이 된 김미화 씨가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고향에 대해 갖고 있는 기억은 그리 좋은 기억이 아닙니다. 불과 2년 전만 해도 이맘때가 가장 견디기 힘든 시기였습니다.
김미화: 전 전거리 교화소에서 나오자마자 3개월 있다가 왔습니다. 그때 김정은이 당 창건 뭐 이러면서 굉장했지요. 제가 있는 곳은 여기로 말하면 시골이었습니다. 함경북도는 지대가 높아서 아주 춥습니다. 여기 와 보니까 추운 것도 없고 날씨가 차이가 나고요.
그 어느 해보다 매서운 추위가 이어지고 있는 북한에 있었으면 어떤 생활을 하고 있었을까 잠시 북한에서의 겨울나기 얘기를 시작으로 현재 남한에서의 생활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봅니다. 먼저 김 씨가 살던 시골마을 겨울 땔감 사정은?
김미화: 추울 때는 시내가 시골보다 못합니다. 시골은 나무를 해서 떼니까 낫죠.
기자: 한번 나무를 하면 얼마나 합니까?
김미화: 소달구지를 끌고 가자면 어디서 얼마만큼 나무를 하는지 재료값을 냅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하는 사람은 별로 없죠. 그냥 지게를 지고 가던가. 끈으로 묶어서 끌고 갈 정도씩 합니다.
이제 남한에서 맞는 겨울인데요. 같은 겨울이지만 북한에서와는 사정은 너무 다릅니다.
기자: 겨울 따뜻하게 보내고 계십니까?
김미화: 네, 걱정 없이 잘 지내고 있습니다.
기자: 집에 온도는 어느 정도나 해놓고 사세요?
김미화: 여름처럼 반팔입고 있습니다. 애기가 있으니까 춥게 하면 자꾸 감기가 와서 26도 정도 맞춰놓고 삽니다. 아이 때문에 건조해서 가습기도 썼지만 요즘 가습기가 건강에 나쁘다고 해서 소량에 물을 떠놓고 있습니다.
기자: 1년이 지났는데 남북한 생활 비교를 좀 해주세요.
김미화: 아무래도 차이가 많습니다. 자유가 우선이고요.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좋고요. 또 은행에 가서 자기가 쓰고 싶은 만큼 돈도 찾고 저축하는 것도 좋고 물도 쓰고 싶은 데로 나오니 좋고 전기가 항상 들어오니까 그것도 좋습니다. 제일 좋은 것은 전기입니다. 전기가 들어오니까 기계도 작동하고 텔레비전도 볼 수 있고 좋습니다.
기자: 전기가 들어와서 자는 시간이 북한보다 늦어졌을 것 같은데요.
김미화: 북한에 있을 때는 어두워지면 그냥 잤는데 여기서는 텔레비전도 보고 하니까 늦어졌죠. 북한에 있을 때는 텔레비전 보는 것은 생각도 못하고 밥 가마도 못 썼거든요. 여기서는 세탁기도 쓰고 일체 전기로 하니까 좋습니다.
기자: 자는 시간이 늦어져서 아침에도 일어나기 힘들잖습니까?
김미화: 보통 북한에서는 빠르면 9시 늦어도 10시에는 잤는데 여기서는 드라마 끝나는 시간이 11시거든요. 늦을 때는 12시에도 자고...
기자: 사람이 불규칙하게 되는 것도 있잖습니까?
김미화: 네, 생각이 없어지니까... 여기 오니까 너무 편해서 생각이 점점 없어지는 것 같습니다. 북한 생각이 없어집니다. 생활력 강하게 북한에서 살다가 남한에서 긴장을 풀고 편하게 사니까 약해진 것 같습니다.
지금 김미화 씨는 먼저 남한으로 탈북해간 언니 가족과 살고 있습니다. 자신 앞으로 배정된 임대 아파트가 있지만 북한에서 당한 고초로 건강을 헤쳐 언니 집에 살면서 건강회복에 안간힘을 쓰는 중입니다.
김미화: 북한에 있을 땐 있었는지 없었는지도 몰랐는데 여기 와서 검사를 해보니까 당 수치가 높아서 당료로 진단을 받았습니다. 언제부터 당뇨가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막 식은땀이 나고 물을 많이 먹었습니다. 그리고 밥도 잘 못 먹고 하니까 피곤하고... 북한에서는 그런 증상이 없었는데 전거리 교화소를 갔다 오면서부터 그런 증상이 나타났습니다. 교화소에서는 소금을 못 먹습니다. 교화소에 들어와 3개월 만에 영양실조가 와서 죽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남한에 오면서 꿈도 많았고 하고 싶은 것도 많았지만 왠지 모르게 힘이 없었고 갑자기 쓰러지는 일까지 자꾸 생겨 병원입원까지 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1년째 병원을 오가며 생활하고 있습니다.
김미화: 많이 좋아졌습니다. 처음에는 당뇨가 심해 인슐린 주사를 맞았는데 지금은 먹는 약으로 하고 있습니다. 현미밥, 두부, 채소를 많이 먹고 있습니다. 혈당 체크기로 밥 먹고 검사하고 하루에 못해도 3번은 제가 수치를 확인합니다. 친구들이 다 혼자 사는데 그 친구들이 왜 학원을 안다니냐고 해서 몸 치료하고 다닌다고 했는데 지금껏 다니질 못하고 있습니다. 당뇨는 어느 순간에 저혈당이 돼서 병원에 실려 갈지 모르니까 관리 잘하라고 의사 선생님이 그랬는데 왜 이런 병에 걸렸는지 모르겠습니다.
남한에서 20대 초반의 나이면 보통 대학을 다니는 사람이 많습니다. 물론 일찌감치 기술을 배워 취업을 하거나 직장 생활을 하는 친구들도 있습니다. 김 씨와 같은 또래로 남한의 탈북자 사회적응교육시설인 하나원에서 만난 친구들은 이제 대부분 대학진학을 위해 학원에서 공부를 하거나 직장생활을 하는데 김 씨는 병원만 왔다 갔다 하고 있습니다. 답답한 것도 많습니다. 하지만 우선 건강을 되찾고 그 다음 대학에도 꼭 가겠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꿈이 있기 때문입니다.
김미화: 남한에 와서 여기 부자처럼 될 것이라 기대는 안하지만 같은 북한 출신보다는 잘살고 싶습니다. 이왕이면 잘산다는 말 듣고 싶습니다. 잘 살 겁니다.
제2의 고향 오늘은 탈북여성 김미화(가명) 씨의 이야기를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