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2의 고향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남한에 사는 탈북민들은 보통 의욕에 차있습니다. 그동안 북한에서 출신성분 때문에 제약받은 것에서 벗어나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다는 희망을 보기 때문입니다. 제약이란 것이 여러 가지 가 있을 수 있는데 그중 하나가 대학진학이 아닐가 싶습니다. 오늘은 박사 과정까지 열심히 한 번 도전을 해볼 것이라 말하는 함경북도 무산 출신의 김은희(가명) 씨의 이야기 전해드립니다.
김은희: 원래 어렸을 때부터 공부하고 싶었는데 출신성분 때문에 대학을 못 갔어요. 쭉 살면서 공부에 대한 한이 맺혀있었어요.
탈북해 중국에 살면서 남한행을 택한 이유 중 하나가 대학공부를 하기 위함이었다고 말하는 김 씨. 그가 탈북한 것은 지난 2004년입니다. 그리고 4년을 중국에서 숨어 살다가 남한행을 합니다.
김은희: 한국 오려고 생각한 것은 중국에서 2008년 올림픽이 있었잖아요. 그때 자꾸 신분증 검사도 심해지고 한번 북송된 경험도 있었어요. 그러니까 차라리 잡힐 걱정이 없는 한국 가는 것이 안 낫겠나 싶기도 하고 한국에 가서 내가 두 번째 인생을 살면서 공부를 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하자 결심하고 온 거예요.
남한에 도착했을 때는 43세였는데요. 중국에서 이미 자본주의 세상이 어떻게 돌아간다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에 북한에서 바로 남한행을 한 탈북자들에 비해 큰 충격은 없었답니다.
김은희: 한국에 와서 하나원에 있을 때는 사람들이 한국오면 천국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는데 저는 항상 나가 살아봐야 알겠지 이런 마음이었어요. 나와서도 신중하게 생각하고 행동했었어요. 돈도 내가 벌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구요. 중국에서 그런 것을 봤고
알기 때문에 자본주의에 대해 알고 왔었어요. 별로 환상적인 것은 없었어요.
이젠 중국에서 처럼 공안의 단속을 피해 숨어 살 이유도 없고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할 수 있는 환경은 만들어 졌는데 문제는 어디서 무엇부터 시작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김은희: 처음에 와서 핸드폰 만드는 회사에 갔어요. 프레스공을 했는데 6개월 만에 그 회사가 폐업을 했어요. 나와서 무슨일을 할까 생각하고 있는데 그때 아는 회사 같이 다니던 언니가 전화를 해서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지 않을래? 이러더라고요. 학원을 갔더니 실장님이 40대 초반이니까 간호조무사 자격증을 따라고 해서 1년 공부를 하면서 그해 9월에 대학 원서를 냈고 3월에 대학 입학을 했어요.
일단 기술이 없었기 때문에 취업하자면 자격증이 필요했고 김 씨는 간호원을 보조하는 조무사 자격증을 따고 취업합니다. 그리고 일하면서 대학을 다니는데요.
기자: 원하는 대학에 갔는데 실제 생활은 어땠나요?
김은희: 저는 재밌었어요. 적응도 잘해서 학교 친구도 많았고 학급이 4개였는데 아는 친구도 많고 교수님들과도 친하게 지냈고 학교 생활을 너무 재밌게 했었어요. 조금 어려운 것도 있었죠. 사회복지상담과 공부를 하는데 프로이드, 에릭슨 이러는 데 알아듣지를 못라겠더라고요. 1학년 1학기에는 뭐가 뭔지 모르고 그냥 따라갔어요. 교수님이 하라는데로만 했는데 2학기에 올라갔더니 들었던 이름이 또 나오는 거예요. 연속으로 들으니까 알겠더라고요. 4년을 계속 들었더니 그 사람들에 대해 이해를 하게된거죠. 공부는 그냥 듣고 복습하면 되는 것같아요.
기자: 학원 다닐 때는 자격증을 뭘 따신 겁니까?
김은희: 학원에서는 간호조무사 자격을 땄고 나중에 요양보호사 자격증은 한 번에 땄어요. 대학 졸업하니까 사회복지사 자격증, 보육교사 자격증, 심리상담사 자격증, 레크레이션 지도사 자격증도 있고 민간자격증은 많은데 다 외우지는 못하겠어요.
기자: 남한생활 9년 중 대학 4년 학원에서 2년을 보냈는데 대학 졸업하고는 생활이 달라졌나요?
김은희: 크게 다른 것은 모르겠어요. 왜냐하면 자격증 가지고 취업했는데 그 자격증을 다 못 써먹더라고요. 현실하고는 좀 다르더라고요. 자격증 따고 공부하는 것도 내가 하고 싶으니까 했지 돈을 벌자고 했으면 안됐겠다 이런 생각도 들었어요.
사회복지상담과를 졸업하고 김 씨는 취업에 폭도 예전 보다 넓어졌답니다.
김은희: 이번에 취업을 했는데 가정집에 가서 하는 가정보육교사를 하고 있어요. 하루에 몇 시간씩 하는데 재밌어요.
기자: 하는 일에 대해 간단히 소개를 해주실까요?
김은희: 사회복지사 자격증, 보육교사 2급 아니면 교사 자격증이 있는 분이 가정방문을 해서 직장다니는 엄마들이 아이 어린이집 갔다와서 엄마 퇴근할 때까지 비는 시간이 있는데 그런 아이들을 집에서 보는 거예요.
하루 두 집정도 다니면 근무 시간은 8시간이 됩니다. 그리고 매달 보수를 받는데요. 김 씨는 땀흘린만큼 대가를 받아 자기가 사고 싶은 것을 장만하고 대부분은 저축한답니다.
김은희: 처음에 와서 아무것도 없잖아요. 월급타서 컴퓨터 사고 냉장고 사고 가구 사고요. 그리고 나머지는 저금하고요. 한국분들은 노후 준비가 돼 있는데 우리는 시작이니까 알아서 노후 준비하는데 긴장하죠.
남한생활이 순탄해 보이지만 항상 긴장한다고 하는데요. 그 이유는 북한에서 살 때와 사는 방식이 틀려졌기 때문입니다.
김은희: 뭐가 힘든가하면 내가 직장을 그만두면 내가 어떻게 살지 이런 생각을 북한이나 중국에서는 안 해봤는데 여기선 걱정이 많이 되요. 가끔은 내가 왜 이런 걱정을 하고 있지 오늘이라도 나가서 알바라도 하면 먹고 사는 데 지장이 없는데 왜 이런 걱정을 하고 있지 이렇게 생각하는데 회사를 다니면 4대 보험 걱정을 안하는데 회사를 나오면 내가 전부 알아서 해야하고 세금내고 먹고 살자니 걱정이 되니까 빨리 취업하게 되고 이렇게 되더라고요.
맑은 영혼을 가진 아이들을 좋아하는 김은희씨. 보육교사로 일하면서 어쩌면 자신이 원했던 하지만 갖을 수 없었던 꿈을 아이들을 통해 만들어가는지 모르겠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김은희: 맞아요. 그렇게 살아요. 내가 부지런하고 하면 살 수 있죠. 그런데 한가지 목표는 있어요. 지금 당장은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에 공부는 못하고 있지만 60살이 되고 일을 손에 놓으면 대학원을 다닐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기 때문에 돈을 버는 것은 8년만 벌면 되고 그 다음은 대학원을 가서 박사까지 해야죠. 어릴 때 9살이었는데 아버지와 한 약속이었어요. 대학가서 나는 아버지처럼 그런 사람이 될꺼야 그런 약속을 지키고 싶고요.
직장에서는 신속정확하게 일하는 부지런한 여성으로 인정받고 있답니다. 그리고 김 씨는 앞으로도 자신이 원하는 공부를 계속 할 것이라는 계획을 세우고 앞만 보며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김은희: 지금까지는 딱 계획이란 것이 하는 일을 하면서 8년은 돈을 벌고 2-3월 달에 제주도 여행을 가려고 생각하고 있어요.
제2의 고향 오늘은 무산 출신의 김은희(가명) 씨의 이야기를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