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둥이 엄마의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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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2의 고향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사진은 기부행사에 참석한 서울의 한 쌍둥이 아기. 사진-연합뉴스 제공
사진은 기부행사에 참석한 서울의 한 쌍둥이 아기. 사진-연합뉴스 제공

북한에서는 식량부족으로 생존을 위협을 느껴 중국으로 탈북한 이들은 대부분 숨어 살다가 결국 남한으로 갑니다. 그리고 결혼해 아이를 낳고 가정의 행복을 만들어 가는데요. 오늘은 쌍둥이 엄마 탈북여성 이순영(가명)씨의 이야기입니다.

무산 출신으로 30대 후반인 이순영 씨는 2003년 탈북해 중국에서 4년 살다가 남한으로 갔습니다. 탈북과 강제북송 그리고 재탈북 이후 비로소 남쪽에 정착하게 된 겁니다. 그리고 남한에서 낳은 아이가 올해 6살입니다.

이순영: 아이들은 이제 3월에 초등학교 들어갑니다. 쌍둥인데 유치원에 9시 반까지 가면 영어, 국어 공부를 무료로 해주고 밥도 주니까 편리하죠.

탈북했을 당시만 해도 왜 그렇게 중국으로 가고 싶었는지 북한 땅에서만 5번을 잡혀 노동단련대도 갔고 고생도 많이 했습니다. 그래도 운이 좋아 중국에서는 한 번 북송을 당하기는 했어도 흑룡강성에 있는 시골마을 식당에서 일하며 먹고 사는 데는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지금 남한 생활하고는 또 다른 세상이 중국입니다.

이순영: 중국에선 잡혀 나가는 일만 없으면 마음이 편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선 스트레스를 좀 받습니다. 너나 할 것 없이 다 바쁘게 살고 잘살자 하니까 왠지 답답한 면이 있어요. 중국에선 농촌에서 숨어 다녀야 했던 것이 힘들었지만 가족이 모여살고 다른 것은 편했는데 여기선 처음 적응할 때 마음고생 좀 했는데 5년이 되니까 이제 적응이 됐습니다. 처음에는 열심히 살자고 돈 벌 생각에 좋기만 했는데 여기 사람들 사는 모습을 보니까 맘이 쓰이더라고요. 북한사람이니까 남한 사람이 한발 뛰면 우린 열 발자국 뛰어서라도 일어서야겠죠.

새로운 세상인 남한에선 열심히 일하면 금방 부자가 될 것 같았는데 왠지 돈이 모이질 않습니다. 손전화기도 있고 집에는 텔레비전에 밥가마, 세탁기가 모두 전기로 돌아가니 매달 월말이면 전기 사용료에 전화비 그리고 아파트 관리비 등 물어야할 공과금이 줄줄이 있기 때문입니다. 공짜가 없는 남한생활 하지만 간섭이 없고 자유로움이 좋습니다.

이순영: 남쪽은 내가 노력한 만큼 돈이 들어오고 어디든 가고 싶으면 갈 수 있고 어디 얽매이지 않은 생활을 하니 좋죠. 내가 부산 가서 살자면 부산가고 직장도 맘에 안 들면 다른 직장으로 옮겨 가고. 거기선 한 달 벌어 하루 살기도 힘든데 여기선 하루 벌어 두 달 너끈히 살죠.

기자: 너무 좋은 말한 하는데요. 하루 벌어 두 달 산다면 청취자는 탈북자가 다 부자라고 생각할 수 있잖습니까?

이순영: 실제 그래요. 북한에 있을 때 한 달 월급이 1,800원인데 그 돈으로 하루 먹을 식량인 쌀을 사기도 힘들어요. 그런데 여기는 잘 먹으니까 계속 명절 같아요. 이번에 설에 탈북자들이 모여 그런 말을 했어요.

기자: 남한에 가서는 어떤 일을 해보셨나요?

이순영: 휴대폰 조립회사도 다니고 미용실 일도 해보고 식당일도 해봤습니다. 또 상담해주는 일도 하고요. 북한에서 하는 일보다 남한에서 하는 일이 생각하기 나름이지만 수입을 생각한다면 너무 좋죠. 마음도 편안하고요.

남한생활 5년이 지나면서 자신을 끊임없이 주위 사람들과 비교하지 않게 되면서 마음의 평온을 찾습니다. 그리고는 돈이 많아서 부자가 아니라 사랑하는 귀염둥이 아들이 둘이나 있어 세상에 부러울 것이 하나 없는 마음의 부자가 됩니다.

이순영: 돈이 많으면 많은 데로 푹푹 쓰고 적게 벌면 거기 맞춰 쓰고 하니까 괜찮습니다. 우리는 북한 사람이다 보니 여기 잘 사는 사람을 어떻게 따라가겠어요. 우린 저소득층이라고 나라에서 많이 무료로 가르쳐 줍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밥도 먹여주고 아이를 봐줘요. 맞벌이 부부는 아이들을 거기 맡깁니다. 내가 마음만 먹으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난 지금 아이 키우느라 일을 못하는데 그래도 나름대로 아이들 유치원 보내고 아르바이트도 하고 좋습니다.

다른 탈북자들은 좀 나이를 먹어도 대학에 진학해 다시 공부를 하거나 직장을 잡아 일을 하는데 어린 아들 뒷바라지에 자기 시간을 낸다는 것은 엄두를 못 냅니다. 늦게 본 아이기에 어느 정도 성정할 때 까지는 모든 정성을 아들에게만 쏟겠다는 마음뿐입니다.

이순영: 계획은 큰 게 없고 아이들이 있으니까 그런데 내 가게를 갖고 싶습니다. 그런데 친구들을 보니까 가게 한다고 아이들 맡기고 돈 버니까 아이들하고 멀어지고 안 좋더라고요. 그래서 아이들 키우는 것에 모든 것을 쏟고 있어요.

기자: 길게 보면 어떤 꿈이 있을 것 아닙니까?

이순영: 아이들이 어느 정도 크면 남 밑에서 일하기보다 내 미용실을 차려서 일하고 싶어요. 젊은 사람들에게는 돈을 받고 어르신들에겐 무료로 해줄 수도 있잖아요. 내가 병이 나서 앓지 않고 즐겁게 아이들 키워야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내가 너무 돈을 벌려고 하면 병이 나는 겁니다. 내게 있는 재간을 나누면서 살고 주면서 살면 더 좋더라는 거죠. 아이들에게 영향도 좋게 가고요. 그러니까 큰돈을 바라지 않고 밥벌이만 하면서 베풀면서 살자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2의 고향 오늘은 쌍둥이 엄마 탈북여성 이순영(가명)씨의 이야기를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