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고향] 남한 목욕탕 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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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2의 고향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남한으로 가서 새로운 환경에 살게 된 북한주민은 남한 사람에게는 평범한 것이 신기하게 보이기도 하고 대단한 것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오늘은 남한생활이 3년째 되는 탈북여성 최은경(가명) 씨의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남한에 간 탈북자들은 올해 겨울이 유난히 춥고 눈도 많이 왔지만 북한에서 경험한 추위에 비교하면 추운 것도 아니라고 말합니다. 북한에서는 땔감을 하기 위해 먼 길을 나서야했고 집안에 들어가도 아랫목만 따뜻했지 위풍이 심해 방엔 항상 냉기가 돌았기 때문에 겨울이란 항상 춥고 황량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생각이 남한생활을 하면서 바뀌게 되고 모든 것이 좋기만 합니다.

최은경: 당연히 좋죠. 인간이 인간 세상에서 사는 가 싶죠. 내가 이런 세상에 오지 못했다면 한생이 얼마나 억울했을까? 그 땅에서 아무것도 보지도 못하고 누리지 못하고 죽는다고 생각하면 원통하기 짝이 없죠.

우선 남한생활에서 느끼는 겨울은 어딜 가나 추위와 싸울 필요가 없고 마음껏 씻을 수 있어서 좋습니다. 또 말로 표현하기 힘든 큰 변화 중 하나가 뜨거운 물을 마음껏 쓸 수 있다는 겁니다.

최은경: 정말 여기 온 사람은 복 받은 인생입니다. 입는 것, 먹는 것, 온수, 난방 다 되고요. 정말 놀라운 것은 더운 물이 나오는 겁니다. 북한 사람들은 이 추운 겨울에도 찬물로 목욕을 합니다. 건강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목욕탕 시설이란 것이 작은 방이 있는데 불을 계속 피웁니다. 목욕탕 실은 찬물이 나오고요. 물탱크에는 찬물이 가득 찼는데 자기가 씻고 싶은 부분을 막 씻는 겁니다. 덜덜 떨면서 닭살이 돼서 씻다가 한증탕에 쏙 들어가죠. 냄새나는 사람들끼리 오글오글 있는데 몸을 녹이고 또 나와서는 씻고 또 더운물에 쏙 들어가는 겁니다. 그렇게 들락날락 하면서 씻는 겁니다.

외부 세계에 알려진 평양의 창광원과 같은 공동 욕탕, 남한에서는 대중목욕탕 이라고 하죠. 사실 요즘 남한에서 목욕탕에 간다고 말하면 좀 시대에 뒤 떨어진 사람처럼 취급을 받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개인 가정들마다 간단히 서서 목욕을 할 수 있는 시설이 돼있어서 예전처럼 때를 밀기 위해 목욕탕을 찾는 일이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대신 목욕탕은 커다란 탕에 뜨거운 물에 담겨있고 한켠에 뜨거운 김이 나오는 작은 방이 있는 곳이 아니라 싸우나 또는 찜질방이라고 해서 몸도 씻고 휴식을 취하면서 간단한 식사도 제공 되는 곳으로 인식됩니다. 이런 시설이 최 씨에게는 마냥 신기한 겁니다.

최은경: 난 한국에 와서 목욕탕에 가서 너무 좋아서 아이들처럼 콩당콩당 뛴 겁니다. 그러니까 거기 있던 아이들이 웃고 난리가 났습니다. 온통 웃음바다가 됐죠.

기자: 뭐가 그렇게 좋으셨나요?

최은경: 북한에선 먹고 사는 걱정으로 비누를 사느니 쌀을 사고 이렇단 말입니다. 여기선 비누나 샴푸는 눈에 풍년 아닙니까? 그러니까 사람 마음이 넉넉하단 말입니다.

집체적으로 외국인 관광객이나 또는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 만든 시설이 아니라 일반인 누구나가 큰돈을 들이지 않고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이 집 주변에 다양하게 있기 때문에 최 씨는 좋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비록 임대주택의 작은 아파트지만 북한과 비교하면서 자신이 행복한 세상에서 사는 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는 거죠.

현재 최 씨가 사는 곳은 아파트 2층인데 이 2층도 걸어 올라가지 않고 승강기를 타고 오르내립니다. 그리고 방의 온도 역시 건강을 위해 너무 덥지 않게 자동으로 맞춰 놓고 지내고 있습니다.

최은경: 그냥 20도로 맞추고 거기다 또 전기장판도 놓고 지글지글 뒹굴면서 내가 정말 극락세계에 왔구나 이러면서도 지금 북한에선 힘들게 살겠지? 이런 생각이 피뜩피뜩 나는 겁니다. 이렇게 추운 날 고난의 행군 때는 아우성치면서 죽었다면 이제는 실실 죽어 나자빠진단 말이지.

실내온도가 20도면 어느 정도인지 다른 사람들은 보통 이런 겨울. 몇 도에 맞춰놓고 지내는지도 들어봅니다.

최은경: 다른 아이들 집에 가면 다 반팔입고 삽니다. 여름 옷 입고 있습니다. 그런 것을 보면서 정말 좋은 세상에 살고 있다. 빨리 건강을 되찾아 일을 해야겠다. 그런 생각을 하죠. 그리고 가끔가다가 아들이나 부모님 생각을 합니다. 얼마나 힘들까? 사람이 먹는 것도 힘든데 이 추위를 어떻게 이겨낼까 이런 생각을 하면...

기자: 3년 정도 사셨으니까 경쟁사회에서 살려면 어떻게 해야겠다. 이런 생각도 나름 하셨을 것 같습니다.

최은경: 네 그래요. 물론 나이 어린 사람과는 좀 다르지만 내가 몸만 안 아프면 아직 일할 수 있습니다. 북한에서는 늙어서 새롭고 희망적인 것을 말하거나 뒷받침하는 것이 없고 절망에 빠지게 됩니다. 강제로 조직 체계에서 살뿐인데 여기는 내가 건강하기만 하면 자기 목표를 세우고 할 수 있다는 겁니다. 나이 먹어서 할 수 있는 것도 많더라고요.

탈북과정에서 건강을 돌보지 못해 얻은 병으로 남한에 간 이후 쭉 신병치료를 하고 있는 최 씨. 하루 빨리 남들처럼 편하게 걷고 뛰기도 하면서 땀을 흘리고 싶어 합니다. 조금만 걸어도 숨이 차고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 있어도 체할까봐 마음껏 먹을 수 없는 고통은 정말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쉽게 상상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건강 문제로 일하고 싶어도 엄두를 내지 못하는 최 씨. 자신이 사는 아파트 주변 공원을 걷거나 탈북자들이 하는 행사에 자주 참여를 합니다. 힘들어도 자꾸 몸을 움직이려고 하는데요. 아침에 눈을 뜨고 보는 하루가 매일처럼 새롭게 느껴지고 감사한 마음이 들고 또 동시에 북한을 생각하면 마음이 저려온다고 합니다.

최은경: 운동하는 사람 옆에 가기도 하고 특히 어르신들이 운동하는 모자를 쓰고 다니는 것을 보면 북한과 비교가 많이 됩니다. 내 주위가 얼마나 풍족한가를 보면서 내가 시인이 아닌데도 남북한 차이점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됩니다. 공원이나 놀이터, 건물을 보면서 자꾸 대한민국의 발전상을 보면서 어째 북한은 저렇게 아름다운 향토가 망가지는가 그런 것이 아까운 겁니다. 나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겁니다. 나는 편안한 직업을 바라지 않습니다. 꾸준히 일할 수 있는 것에 보람을 느끼면서 만족합니다.

제2의 고향 오늘은 탈북여성 최은경(가명) 씨의 이야기를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