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2의 고향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모든 꿈은 이뤄진다. 우리가 그 꿈을 향할 용기만 가지고 있다면" 어떻습니까? 멋지게 들리지 않습니까? 어떤 목표를 설정하고 그것을 이루기까지는 많은 시간의 인내와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 과정에서 실패를 경험하기도 하는데요. 그 순간 주저앉지 말고 우뚝 일어선다면 분명 당신 앞에는 달콤한 성공이란 열매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오늘은 50대 탈북여성 허수경(가명) 씨의 이야기 전해드립니다.
허수경: 저는 "미 피부건강샵 원장 허수경"입니다. 1년 7개월 동안 시험을 쳐서 12번만에 합격했습니다.
함경북도 출신의 허 씨는 11번을 떨어지고 피부미용 국가자격증을 받았습니다. 남한생활 3년만에 허 씨가 원하는 것을 손에 쥔 겁니다. 그간 마음 고생이 여간 심했던 것이 아닙니다.
허수경: 제가 발족심 발관리를 한 20년 했는데 자격증을 따니까 뭘 할 수 있는가 하면 발족심도 할 수 있고 얼굴경락 피부 관리도 하고 마사지도 할 수 있어요. 이것은 자격증이 없으면 할 수가 없고 더 중요하게는 신랑 비자문제를 해결하자니까 사업장을 내야 했고 그러자니 절실히 필요했거든요.
허 씨의 피부건강샵은 얼굴부터 발까지 피부관리를 해주는 일을 하는 영업장인데 운영하자면 국가자격증이 있어야만 업소 허가가 나옵니다. 북한출신 허 씨는 피부미용 자격증을 따는 데 남한에서 태어난 사람보다 어려움울 겪습니다.
허수경: 여기서 국가 자격증을 딸 때 제일 힘든 것이 북한에 있을 땐 화장에 대해 잘 몰랐거든요. 그저 크림 바르고 분바르고… 썬크림이 뭔지도 몰랐어요. 우리는 피아스크 이렇게 말했는데 여기 와서 이것을 시작하면서 보니까 화장품에 대해 알아야지, 손님의 피부가 지성인가 건성인가 뭐 이런 것도 모르고 시작했거든요. 그러니까 그에 대한 공부를 해야지. 또 제일 힘든 것은 외래어를 쓰니까 내가 북한에서 쓰던 말하고 같은 민족이라도 말이 너무 다르니까 그것이 제일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오늘 가서 쓰고 나왔는데 다음번에 가서는 같은 말인데 말을 외래어로 바꾸니까 힘들었고요. 실기시험을 칠때도 나이가 50살 넘어 오니까 젊은 아이들 따라가자니까 너무 힘들었어요. 제 손동작도 아무래도 늦고
시험보는 데는 비용도 따르게 됩니다. 한번 떨어질 때마다 날아가는 응시료도 아깝지만 또 시험을 준비하자면 학원엘 계속 다녀야 하니까 시간도 필요하죠. 무엇보다 힘들었던 것은 이번엔 합격하겠지 하는 희망이 사라질 때 느끼는 절망감이었습니다. 하지만 12번째 시험은 달랐습니다.
허수경: 2월 1일 아침 9시에 발표하는데 사실은 가슴이 두근거려서 기다리면서도 신랑에게는 말도 못했어요. 또 떨어졌을까봐서요. 9시가 돼서 봤는데 합격이라고 해서 환성을 지르고 춤이라도 칠줄 알았는데 정작 합격이란 두 글자를 보니까 눈물이 솟구쳐서 둘이 붙잡고 울었어요. 우리 학원 선생님께 전화를 하니까 선생님이 울어요. 비록 12번만에 합격을 했지만 제가 거기서 느낀 것이 내가 제 2의 인생을 살면서 나한테 좋은 분들이 많구나. 그것에 힘들 얻었어요. 사실 이번에 시험을 안 치려고도 했어요.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야간 학원에 다녔어요. 열심히 공부해서 이번에는 최고 점수를 받고 보니까 눈물이 나면서 다리맥이 다 풀리고 그다음에 느낀 것이 나만 노력하면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구나.
허 씨를 가장 가까이서 응원했던 남편 윤병철 씨는 아내가 거듭 시험에 떨어지자 말도 안되는 원망의 대상이 되기도 했는데요.
윤병철: 시험장에 갈 때마다 가슴이 터지는 것 같았어요. 또 가슴아플 일이 또 생기는가 하고요. 나는 딱 보니까 이번에도 안 된다고 했거든요. 그러니까 이 사람이 말하는 것이 내가 안된다고 하니까 일이 안된데요. 그래서 자기가 떨어졌데요. 실력은 괜찮은데 자꾸 안되거든요. 내가 속으로 그랬어요. 너는 또 안된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하늘도 이 부부의 마음을 저버리진 않았습니다. 그래서 허 씨가 시험을 모두 통과해 합격자 발표가 났을 때 그 기쁨은 배가 됐습니다.
윤병철: 이 사람은 좋아서 우는데 나는 좋아 우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 무거운 것이 확 떨어지는 것 같았어요. 내가 팍 주저 앉았어요. 이 사람은 나한테 안기는 데 나는 속에서 무거운 것이 툭 떨어지는 느낌이 오더란 말입니다.
허 씨 부부가 이토록 좋아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단순히 피부미용실을 정식으로 운영할 수 있게 돼서만은 아닙니다. 중국에서 도움을 줬던 조선족 남편의 신분문제가 해결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허수경: 이런저런 고비를 다 넘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보니까 여기까지 온데는 신랑의 도움이 많아요. 이 사람이 중국 조선족이거든요. 중국에서 자기 혼자 먹고 살 수 있는데 나를 만나서 나한테 힘을 주고 하느라고 여기다 집도 3층 건물 크지 않은 15평 건물이지만 내 이름으로 해놓고 저를 옆에서 지켜주는데 우리 소득이 없다고 이사람 비자가 안 나와요. 결혼 등기를 2014년 12월 4일 했고 같이 살고 있는데도 우리는 결혼비자가 안 나와서 신랑을 중국에 가서 비자를 받아서 다시 한국에 들어오라고 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저희에게는 절실이 요구되는 것이 내가 간판을 걸고 사업장을 냈으면 소득금이 들어가겠는데 그 자격증을 주지 않다보니까 제가 사업장을 낼 수 없었거든요.
86점을 맞고 합격한 피부미용 국가자격증 시험. 필기를 보고 실기시험을 보는 데 그 성적이 둘 다 각각 60점 이상이 돼야 합격입니다. 그동안 11한번이나 떨어졌던 사연 좀 들어볼까요?
허수경: 실기는 우리 모델을 데려가서 해야합니다. 화장한 것을 지우고 얼굴 관리를 합니다. 눈썹 정리하고 팔 다리 관리를 하면서 제모를 하고요. 그러니까 모델은 다리 털이 있어야 해요. 그리고 눈썹 문신을 안한사람을 찾자니 하늘에 별따기 같았습니다. 모델 한번 쓸때마다 돈 5만원을 주고 했어요. 처음에는 제가 너무 몰라서 제일 처음 모델은 우리 신랑 데려갔었어요. 여자를 데려가야 하는 것을 모르고 남자도 되는줄 알고 다리에 털이 있는 사람이면 되는 줄 알고 신랑을 곱게 화장을 시켜서 데려갔었어요. 학원 선생님이 보니까 화장을 했는데 차림은 남자 반바지에 반팔을 입었으니까 남자입니까? 여자입니까 이렇게까지 했어요.
합격자 발표가 있던 날 그리고 그 한주간 허 씨는 남한에서의 또하나 기록을 세우게 됩니다.
허수경: 그길로 2월 1일 발표한 날로 그날 한국인력공단에 찾아갔어요. 그날 자격증을 받은 것은 모든 분들이 그래요. 합격 당일에 자격증을 받은 사람은 처음이라는 거예요. 저는 그것을 받아쥐고 또 구청에 가서 면허증을 신청하고 사업자 등록을 하자니 신체검사를 해야된데요. 병원가서 신체검사를 하고는 일주일 있다가 7일 신체검사 합격증을 가지고 구청에 가서 면허증 발급하고 영업신고 내고 세무서 가서 사업자 등록을 했어요. 그러고나니까 나도 한국 국민이 맞구나 그런 생각이 들고 나도 이땅에서 열심히 노력하면 얼마든지 살 수 있구나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허 씨는 지난 2월 18일 "미 피부건강샵" 간판을 내걸고 많은 지인의 축하 속에서 개업식을 가졌습니다. 그동안 속상해서 흘린 눈물이 낙동강을 넘는다 했는데 이번에 합격하고는 뜨거운 눈물을 흘린 것이 그 보다 더 많은 것 같다고 했습니다.
허수경: 우리가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하는 것이 쉽겠는가? 돈도 벌지만 봉사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벌고 해서 통일이 되기를 앉아서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내가 뭔가 할 수 있는 것이 뭔가를 생각해보겠어요..
제2의 고향 오늘은 피부미용실을 운영하는 탈북민 허수경(가명) 씨의 이야기를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입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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