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2의 고향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한국 국토해양부에 따르면 2011년 자동차 등록 대수는 1천 800만대가 넘습니다. 이것은 2년 전 통계입니다. 이를 단순한 인구대비 자동차 수로 말하면 남한 사람 3명당 1명꼴로 차가 있다는 겁니다. 차가 많다 보니 남한에 사는 탈북자 중에는 자동차와 연관된 일을 하는 분도 있는데요. 오늘은 실내 세차장을 운영하는 남한생활 5년차 탈북여성 이영미(가명) 씨의 이야기입니다.
함경남도 출신으로 올해 55세의 이영미 씨는 탈북 전에는 무역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뜻하지 않은 일로 해서 고향을 떠나게 됩니다.
이영미: 고난의 행군 때라 기차가 함흥에서 무산까지 보름을 갔습니다. 기차가 가다가 전기가 없어 서고 8시간이면 갈 곳을 15일을 갔습니다. 그러다 보니 대반하고 약속한 날을 지키지 못했어요.
사업을 하기 위해 주변사람들에게 돈을 빌려야 했고 일이 틀어지면서 이 씨는 화교인 대반을 만나기 위해 중국으로 건너갑니다. 하지만 그 넓은 중국에서 김 서방 찾기지 결국 한 달만에 사람 찾기를 포기 하고 남들에게 얻어 쓴 빚을 갚기 위해 중국에서 돈벌이를 시작합니다. 하지만 열심히 일한다고 해도 불법 신분으로 생각처럼 됐겠습니까? 결국 중국 생활 8개월 만에 남한에 행을 택했고 성공합니다.
이영미: 남한 생활이 힘들었죠. 처음에 나왔을 때는 돈을 4만원 가지고 나왔습니다. 브로커 비용을 주다 보니 4만원밖에 없었습니다. 남한의 아무 것도 없는 빈집에 와서 몇 달은 눈물을 흘리고 다녔습니다. 집에 오고 다음날 형사가 날 불렀는데 600원 이란 돈이 없어서 걸어서 경찰서에 갔습니다. 그때 마을버스가 600원 할 때입니다.
탈북자는 남한에서 사회정착교육 시설인 하나원을 나설 때 정착금과 생활용품 예를 들어 밥가마(전기밥솥), 가스 골로(가스레인지) 등을 받아 나옵니다. 그런데 이 씨가 말한 4만 원 미화로 하면 40달러가 안 되는 돈만 손에 쥐고 사회에 첫발을 내딛었다. 이해하기가 좀 힘들지 않습니까? 여기엔 또 사연이 있습니다.
이영미: 250만원 브로커 비용을 계좌이체를 하고 제가 몇 달 동안 연락이 없으니까 잘 못된 줄 알도 북한에 있는 언니가 중국 연선으로 와서 전화를 했습니다. 그때 언니가 연선까지 오자면 북한에서 기차표, 여행증명서 다 만들어 와야 하는데 돈이 많이 들죠. 빈손으로 보낼 수 없잖아요. 하나원에서 친구의 돈을 중국 돈으로 3천원 만들어 언니에게 보내줬습니다. 한국 돈으로 하면 36만원입니다. 그래서 남은 14만원을 가지고 하나원을 나온 거죠. 임대아파트에 와서는 집 열쇠를 받으면서 10만원을 보증금 내고 4만원으로 시작한 겁니다.
처음 3년은 몸도 아프고 걱정이 많아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고생하자고 남한에 온 것이 아닌데 자유로운 세상에서 열심히 살면 언젠가는 좋은 날이 오지 않겠는가 하는 마음을 먹으면서 또 다시 인생의 반전이 이뤄집니다.
이영미: 외로움을 많이 타고 적십자 도움이 언니들과 가깝게 지내게 됐습니다. 봉사자들이 집에 와서 김치 사주고 생일이면 챙겨주고 또 형사님도 잘해주고 했는데 먹고 살자면 일을 해야 하는데 나이가 있으니까 취직이 힘들잖아요. 그래도 남자들만 일하는 박스공장이란 곳에 가서 일도 해봤고...
북한에 있는 아들을 데려와야 한다는 생각. 아들을 데려오기 위해서는 돈을 벌어야 한다는 마음이 들면서부터 몸을 아프게 하고 밤잠을 설치며 악몽에 시달리게 했던 모든 것들이 한순간 사라집니다.
이영미: 아들을 데려오려고 2011년 북한하고 연계해서 데려왔습니다. 아들이 북한 국경을 무사히 넘었다는 말을 듣는 순간 아팠던 심장이 저절로 편해졌고 마음이 가벼워졌습니다.
마음의 안정을 찾게 되면서 이 씨의 남한생활은 순풍에 돛을 단 배처럼 술술 풀리기 시작합니다. 현재 이 씨가 운영한다는 실내 세차장 얘기를 들어볼까요?
이영미: 20층 되는 건물에 공장, 사무실, 학원 등에 다니는 분들이 차를 세워 놓고 저녁에 타고 가는데 한 200대 되는데 우리 세차실 회원에 가입하면 차번호를 기억했다가 세차해 줍니다.
현재 이 씨 부부가 관리하는 자동차는 70여대가 됩니다. .
이영미: 낡은 차는 세차를 안 하고 비싼 차를 모는 사람만 차를 닦죠.
기자: 세차 하는데 얼마나 받습니까?
이영미: 한 달 7만 원입니다. 이런 사람은 월말에 돈을 주고 보름에 한 번 닦는 사람은 전화를 하면 1만원을 받고 내부까지 하고 큰 차는 2만 원 왁스를 칠해서 윤기를 내줍니다.
자기 사업체를 운영하면서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겨 요즘은 어려운 탈북자를 돕는 봉사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습니다. 남한생활 5년. 남들은 뭐라고 말할지 몰라도 이 씨는 남한 정착에 성공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게 됐다며 모든 것에 감사한 마음이라고 합니다.
이영미: 건강하고 하루 일과를 규칙적으로 살면서 작은 것에도 감사함을 느끼면서 삽니다. 김치 한포기를 가져다 줘도 옛날에는 당연한 것으로 알았는데 지금은 김치 한포기를 받아도 감사한 마음으로 받습니다. 난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왜 행복한가 하면 난 사랑하는 아들을 데려왔습니다. 새 가정을 이뤘습니다. 지금 내가 사는 집은 비록 14평 임대 아파트지만 김치냉장고 놓고 전부 새 가구에 깨끗하고 아름답게 해놓고 삽니다. 이게 전부가 아닙니다. 마음이 편안해 졌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생각하는 꿈을 전부 이뤘습니다. 사업장도 만들었습니다. 한 달 월수입이 400만 원정도입니다. 욕심을 내지 않습니다. 우리는 아침 7시 출근해서 저녁 5시면 퇴근합니다. 집이 한강 옆인데 1시간씩 자전거 타기도 하고 배드민턴도 치고, 토요일은 등산도 가고, 일요일이면 교회 갑니다. 지금 만족스럽습니다.
제2의 고향 오늘은 남한에서 실내 세차장을 운영하는 탈북여성 이영미(가명) 씨의 이야기를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