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2의 고향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법이라도 하면 형법, 민법, 국제법 등 그 종류만 해도 너무 다양해서 한마디로 법이 무엇이라 말하기 힘듭니다. 하지만 간단히 생각해보면 서로 상반되는 양측의 분쟁을 원활히 해결하는데 그 목적이 있는 것이라고 한다면 어떨까요? 남한생활 2년차가 되는 탈북자 홍은희, 이영국(가명) 씨 부부는 남한의 법이 참 어렵다고 말합니다. 오늘은 이 씨 부부의 이야기를 전해 드립니다.
홍은희, 이영국 씨는 둘 다 탈북해서 중국에서 수년간 생활하다가 남한에 간 경우로 탈북 이후 생활도 비슷하고 나이도 20대로 서로 통하는 것이 많았습니다. 이들은 남한의 사회적응교육시설인 하나원에서 만나 사랑을 키웠고 몇 개월간의 교재 후 결혼해서 이듬해에는 아들도 낳았습니다.
홍 씨는 결혼과 출산이라는 과정을 남한입국 1년 만에 모두 경험하면서 사회생활을 하기 보다는 아이를 키우는데 힘썼기 때문에 남한생활이 딱히 뭐라고 설명하기 힘들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통제가 없는 생활이 좋다는 점은 분명하게 말합니다.
홍은희: 제가 만족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자유입니다. 자기가 한만큼 벌 수 있으니까 그것이 만족스러워요. 북한에서는 하기 싫은 것도 단체로 가는 것이 있습니다. 어디서 도로공사를 하면 사람들 불러서 다 같이 가고 안가면 안 되고 한데 한국은 자기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안할 수도 있고 돈 벌면 자기가 다 갖잖아요. 북한은 그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남한에서는 자유에는 책임이 따르게 되고 그중에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원리 즉 번만큼 쓸 수 있다 하는 문제도 자연스레 알게 됐습니다.
홍은희: 한국은 돈이 없으면 못살잖아요. 그런 것을 자주 느끼곤 합니다. 신랑 혼자 벌어서 우리 셋이 사는데 사회적으로 돌아가는 것을 보면 쉽지 않습니다. 여기 한국은 버는 것에 비해 쓰는 것이 많습니다. 월세부터 시작해서 우선 가정생활 하는데 식비가 비쌉니다. 중국과 대비를 하면 차이가 엄청납니다.
이제 5개월 된 아이가 홍 씨와의 전화 통화를 길게 하지 못하게 보챘기에 이번에는 남편 이영국 씨와 대화를 이어갑니다. 그가 처음 꺼낸 남한생활의 소감은 남한 법이 참 어렵다는 겁니다.
이영국: 하면 잘살 수 있다는 생각은 들어도 북한에서 살 때보다 너무 힘듭니다. 다른 것은 모르겠는데 내가 벌어 내가 사는 것은 둘째 문제고 한국 사회의 법이 너무 힘들게 느껴집니다.
기자: 남한의 법이 힘들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요?
이영국: 내가 운전 일을 해서 그런지 모르겠는데 항상 긴장합니다. 한국 사회는 사람이 차를 피해가는 것이 아니고 차가 사람을 피해가야 하니까 여기선 하루 종일 그런 생각에 고통을 느낀다고요. 여기는 사람이 차를 무서워하지 않는 그런 세상입니다.
기자: 남한에 차가 너무 많고 골목길도 많기 때문에 사실 차가 좁은 길로 들어설 때는 인도와 도로의 구분이 없어 그런 것도 있지 않겠습니까?
이영국: 벨소리를 울려도 그냥 못들은 척하고 그냥 지나갑니다. 여기선 자기를 다쳐놓으면 돈을 받는 거잖아요. 팔다리를 못 쓰면 일생 돈을 받으니까. 병원에 누워 있으면 돈이 들어오니까. 사람이 잘못해서 사고가 나도 운전자 잘못으로 합니다. 법이 그래요. 여기는 운전 일을 못할 사회입니다.
기자: 북한이나 중국에서 운전과 관련된 일을 했나요?
이영국: 중국에서 좀 해봤는데 거기는 신호도 없고 운전기사가 판단해서 다니니까 괜찮았었는데 여기선 신호가 있고 차가 너무 많다 보니까 혼란스럽고 여기와선 운전하기가 너무 어렵더라고요. 게다가 사람이 차를 무서워 안하니까
이영국 씨는 2007년 탈북해 중국에서 3년간 살다가 남한에 갔습니다. 새벽에 신문배달도 하고 가정의 경제를 꾸려가기 위해 무척 애를 썼다고 본인 스스로도 말하고 있습니다.
이영국: 고생고생 다해봤는데 제 입에서 저도 힘들다고 할 정도로 힘듭니다. 북한에선 육체적으로 힘든 것을 느꼈는데 여기선 누가 뭐라고 안 해도 정신적으로 힘들더라고요. 우선 북한에 있는 부모님 생각에 그런 것 같습니다. 정신적으로 아무리 힘들어도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은데 부모님 생각이 마음에 쌓이다 보니까 나머지 생각이 귀찮아지고 그런가봅니다.
기자: 남한에서 어떻게 살고자한다. 뭐 이런 앞으로의 계획이 있을 텐데요.
이영국: 정확한 계획은 세우지 못했지만 여기서 가족을 이뤘으니까 마지막까지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결심은 있습니다.
기자: 지금 운전 일을 한다고 했는데 수입은 괜찮습니까?
이영국: 한 달 월급을 받는 것이 아니라 시급을 받습니다.
기자: 북한에 청취자들은 한달에 얼마나 버는지 수입을 궁금해 하실텐데. 얼마나 되는지 물어봐도 될까요?
이영국: 열심히 한다면 200만원은 받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제가 몸이 좀 불편해서 시급일을 하고 있습니다. 처음에 시급 일을 하기로 했는데 회사에서 고용지원금을 받으려고 3개월 지나니까 고용지원센터에 신고를 했습니다. 구청에서 확인하는 전화가 와서 일했다고 했더니 6개월간 받았던 240만원에 대해 1년에 거쳐 공제한다고 하더라고요. 이해는 하면서도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참고로 남한 돈 200만원이면 1800달러 정도가 됩니다. 이영국 씨가 말한 부분을 다시 정리하자면 남한 정부는 기업이나 회사가 탈북자를 고용하면 일정기간 탈북자에게 지급되는 월급의 반을 지원해줍니다. 그런데 만약 이런 사실이 관청에 보고되면 일하지 않는 사람이 구청에서 받게 되는 기초생계비를 받을 수 없게 됩니다. 그래서 이 씨는 애초에 서류상에는 일한 기록이 남지 않도록 요청을 했는데 회사에서 나중에 약속을 지키지 않고 구청에 보고해 일하면서 구청에서 받은 지원금을 물어내게 됐다는 얘깁니다. 이 씨는 남한의 탈북자지원 관련 법 규정을 잘 몰랐고 일을 당하고서야 제대로 알게 됐다고 했습니다.
집에 퇴근해서 아이 볼 때가 제일 행복하다고 말하는 이영국 씨. 이제 그 어떤 법 규정을 들이대도 가정의 행복 그리고 아들의 미래는 자신이 지킨다는 마음으로 살겠다고 합니다.
이영국: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잘살아야겠다는 생각은 첫째로드는 것이고 지금 상태에서는 아이만 보고 사는 것 같습니다. 북한에서 힘들었기 때문에 자식은 여기 와서 낳은 것이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제2의 고향 오늘은 탈북자 홍은희 이영국(가명) 부부의 이야기를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