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하는 것이 행복해요

부산지역 만학도의 산실, 부경보건고등학교 성인 여중과 여고생 어머니들의 졸업식 모습.
부산지역 만학도의 산실, 부경보건고등학교 성인 여중과 여고생 어머니들의 졸업식 모습. (사진-연합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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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2의 고향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공부하는데 늦은 나이가 어디 있냐며 새로 시작한 대학 공부에

열심인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49살 탈북여성 이명심(가명) 씨입니다. 낮에는 가죽신발생산

공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대학수업을 받는 이 씨의 이야기입니다.

이명심: 제가 한국에 살아보니까 자기만 열심히 하면 얼마든지 잘 살수 있다는 것 이걸

말하고 싶습니다.

함경북도 출신으로 2006년 탈북한 이명심 씨는 북한에서는 장마당을 돌면서 곡물을 팔아 가족을 부양한 평범한 가정의 여성입니다.

이명심: 저는 농촌에 출가해 아들을 낳고 살았는데 아무리 나가 농촌 일을 해도 인민군대 지원하고 나라에 바친다고 하면서 농산물을 전부 나라에서 가져갑니다. 1인당 배급을 주는 것이 겨우 50kg-70kg밖에는 안됩니다. 제가 10년 동안을 어렵게 살았습니다. 아들이 하나인데 학교에 보내면 교복은 물론 아이가 축구를 좋아했는데 운동복을 사주자 해도 어려웠습니다.

농촌에서 살면 가난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소토지에서 수확한 옥수수를 밑천삼아 회령과 청진을 돌면서 장사를 합니다. 그 때 이 씨가 장마당에서 경험한 것은 도시

생활이 농촌보다 어렵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명심: 옥수수 300kg을 가지고 시내 나가서 팔면 옥수수 500kg로 늘어납니다. 돈을

벌어서 아이 옷을 사주고 잘살자고 했는데 너무 힘들었습니다. 겨울에도 여관엘 못가고

비닐박막을 하고 자고 따뜻한 물을 사먹자고 해도 너무 비싸서 안 먹고 어렵게 돈을

벌었습니다.

좀 더 큰돈을 벌기 위해 도강을 결심합니다. 그리고 4년을 중국에서 식당 일을 해보지만 결국 신변안전이 보장되지 않아 2009년 다시 남한 행을 하게 됩니다. 잘살아 보자고 간

한국이지만 처음 텅 빈 아파트에 도착했을 때는 혼자라는 생각에 설렘보다는 눈물이 앞을 가렸습니다.

이명심: 내가 앞으로 돈을 많이 벌어 잘살아야겠는데 한국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겠는지 그 생각이 제일 먼저 들더라고요. 한 3일은 집에 있으면서 고민을 하던 끝에 다른 사람이 어찌 보든 내가 잘하면 되겠지 맘먹고 취직했습니다. 사장님은 저를 따뜻하게 대해줬는데 같이 일하는 분들은 제 말투를 보고 중국에서 왔는가? 하더라고요. 이북에서도 봉제공장을 한 4년 다녔는데 거기는 견본이라고 하는데 여긴 샘플이라고 하고 여기서는 외래어를 많이 써서 일주일은 말을 잘 못 알아듣겠더라고요.

처음 직장은 운동복을 만드는 회사였는데 이 씨가 일을 시작한지 2년쯤 됐을 때 회사가

망해 다른 직업을 찾게 됩니다. 두 번째 직업이 대형 상점에서 청소 하는 일. 이 씨는

청소 일을 하고부터 남한 사람들의 다양한 삶의 모습에 눈을 뜨게 됩니다.

이명심: 일을 하면서 생각한 것이 한국에서 제가 아무리 못 벌어도 월 100만원을 받는데

그 돈이면 2개월은 살 수 있더라고요. 공과금 30만원 내고 먹는 것이 20만 원정도 되니까

그렇게 되더라고요. 이북은 하루나가 벌어선 하루 살기가 힘들었는데 여기선 두 달을 살 수 있으니까 생활 차이가 많이 나죠. 한국 주민들이 밀차에다 음식을 한가득 사 가는 것을

보고 옷을 사서 입어보고 하는 모습을 보니까 너무 행복해 보이더라고요. 북한에서는

일하고 밤에 집에 가서 손빨래해서 입고하는데 여긴 안 그러니까 자기만 열심히 하면 큰돈은 못 벌어도 자기 먹고 사는 것은 얼마든지 누릴 수 있잖아요.

이 씨는 지난해 대학에 진학했습니다. 낮에는 직장에 다니고 밤에는 집에 가서 컴퓨터

인터넷으로 공부를 하는 사이버대학 사회복지학과 2학년입니다. 북한에서도 대학을 다니지 못한 이 씨에게 남쪽에서의 대학공부는 새로운 꿈을 심어 줬다고 합니다.

기자: 주변에서 나이 50이 돼서 무슨 대학을 가는가 하는 말도 들었을 것 같은데요?

이명심: 사회복지사 공부해서 자격증을 취득한 들 어디에 써먹을 것인가? 지금 젊은 사람들도 대학 안가고 회사 취직해서 돈을 버는데 무슨 공부냐 그랬습니다. 그런데 몇몇 분들이 먼저 시작을 해보자 해서 작년에 시작했습니다. 정말 과제도 힘들고 인터넷 사용법도 잘 모르고 그래서 친구들에게 도움을 청해서 공부했습니다. 그렇게 하다보니까 후배들이 우릴 보고 자기들도 하겠다고 해서 올해 12명이 입학해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기자: 대학을 다녀서 어떤 것이 좋습니까?

이명심: 공부를 하니까 배움에 대해 알게 되고 사람이 변합니다.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기고 꿈을 가지게 됩니다.

같이 공부하는 탈북자 10여명과 무궁화 봉사단을 만들어 주말이면 양로원이나 장애인 시설 등을 방문해 노래도 하고 연극도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 씨는 북한에서는 먹고 살기 위해 살았다면 지금 남한에서는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자신의 능력을 개발하는 인생을 살고 있다고 했습니다.

이명심: 북한에서는 옥수수 밭에서 일하고 여자들이 산에가 땔감을 줍고 하지만 한국에선 하루에 점심시간까지 9시간만 일하면 그 외 시간은 공부도 하고 봉사도 하고 이렇게 사는 것이 행복한 삶이다 생각하고 후배들에게 본보기가 되기 위해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제2의 고향 오늘은 탈북여성 이명심(가명)씨의 이야기를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