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2의 고향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사람이 태어나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 수 있는 것은 축복받은 인생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북한에서는 꿈을 이룰 수 없었지만 남한에 가서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 수 있게 된 탈북자 북한학 박사 1호 김병욱 씨의 이야기를 전해 드립니다.
기자: 남한에서 박사학위를 받자면 학사, 석사를 마친 후 박사과정에 들어가는데 어떤 과정을 거쳤나요?
김병욱: 북한에서 6년 정도 과정을 한 사람은 남한에서 대학원 진학 자격을 줍니다. 저는 그것을 인정받아서 바로 대학원가서 석사와 박사 과정 하는 데 6년 반에 끝냈습니다.
기자: 석사 과정도 북한학이었나요?
김병욱: 그렇죠. 석사 과정은 북한 경제, 박사 과정은 통일 정책입니다. 논문도 석사 과정엔 과학기술 쪽이었고 박사 과정은 군사 쪽이었습니다.
기자: 박사 논문 제목이 ‘북한의 민방위 무력중심 지역방위 체제에 관연 연구’였는데 남한에서 박사 논문 쓰는데 어려움은 없었는지?
김병욱: 가장 어려운 것이 같은 단어지만 뜻이 다른 것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북한에서는 ‘새마을 운동을 벌린다’고 하지만 여기선 두 지점에 있는 것이 거리가 멀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 단어 해석도 북한은 민방위 무력이라고 하는데 여기선 민방위대라고 합니다. 상호 다릅니다. 여기 식으로 표현을 바꾸는 작업이 힘들었습니다. 북한연구에서도 선군정치, 미사일 문제 등은 여기 학자들이 많이 다뤄서 개념 정리를 해놨는데 제가 하는 분야는 개척을 하다 보니 어려웠죠.
기자: 남한에 탈북자가 2만 명 시대가 됐다고는 하지만 박사가 그리 많지 않은데 북한학 탈북자 박사 1호로 자부심이 대단하시겠습니다.
김병욱: 여기 탈북자 박사가 9명 됩니다. 저보다 앞에 다섯 분이 했습니다. 정치학, 영양학 박사 등인데 북한학 박사는 처음이죠. 문제가 뭐냐 하면 경쟁이 치열한 남한에서는 탈북자를 많이 써주지 않습니다. 박사 학위를 받고 나니 가장 기쁜 것이 뭐냐 하면 어디다 명함 내밀 때 떳떳한 겁니다. 직위가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명함에 나를 소개할 것이 없었는데 내 소개를 북한학 박사라고 할 수 있느니 좋죠.
기자: 북한에 있는 청취자들은 말투로 들어봐서는 북한사람이 분명하다 할 텐데 자신이 왜 탈북하게 됐는지 소개를 좀 해 주시죠.
김병욱: 저는 자신의 미래와 집에 가장이니까 두 가지가 다 생각이 되는데 굶어서 탈북한 것은 아니고 북한에서 토대가 좋지 않아 출세를 할 수 없었죠. 저는 북한에서 연구사업을 하면서 살고 싶었는데 행정 관료로 생활을 했고 또 자식 교육도 학교를 가도 사업에 동원이 될 뿐 공부를 못했습니다. 난 그래도 지금 옆집이 굶어도 밥은 먹일 수 있는데 우리 아이들이 크면 이 정도는 못 되겠구나 이런 생각을 해서 내려오게 됐죠.
기자: 10년 세월에 공부하는데 6년 반을 썼는데 경제생활은 어떻게 해결 하셨나요?
김병욱: 저희는 우리 집사람과 동시에 석 박사 과정을 했습니다. 지금 집사람이 박사 심사에 들어갔으니까 조금 있으면 부부박사 1호라고 또 방송에 나오겠는데 처음에 제가 극동문제연구소에 다니면서 좀 벌었고 그때 집사람이 산업은행에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집사람이 경제활동을 맡았습니다. 집사람이 고맙죠. 제가 한국에 와서 처음 배운 노래도 ‘백년의 약속’입니다. 그 노래 내용이 ‘세상이 힘들 때 너를 만나 잘해주지도 못하고 고맙다는 말도 못했다‘ 아주 노래 가사에 북한에서의 가부장적 측면들 그런 것도 반영해 주고 자책감도 말해주고...어떻게 이렇게 내 마음에 딱 들게 가사를 썼는지 그래서 내가 자주 부르는 노래입니다. 집사람이 고맙죠. 내가 항상 말하는 것이 탈북해서 동지지만 여기선 북한연구에 동지라고 하고 있습니다.
기자: 북에서 이루던 구성원이 그대로 남쪽으로 간 경우입니까?
김병욱: 그렇죠. 집사람과 아이 둘이 그대로 왔습니다.
기자: 남북한을 모두 경험하셨는데 남한생활 10년 중 행복을 느끼는 때는 어느 순간인가요?
김병욱: 늘 가장 기쁜 것이 저로선 대한민국에 와서 연구원 삶이 시작됐잖아요. 꿈을 이룬 겁니다. 북한에선 내가 박사 한다고는 꿈도 꾸지 못했죠. 내가 매일 꿈을 꾸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듭니다. 소원 성취했고 해서 고맙죠. 지금도 현실이 잘 믿어지지 않습니다. 또 가족도 잘되고 한 것이 상당히 기쁩니다.
기자: 앞으로의 계획은?
김병욱: 앞으로 제가 할 일은 북한도 알고 남한 학문도 배운 사람으로서 남한의 탈북자 정착에 관한 연구 그리고 북한 재건에 대한 연구 이런 것을 하고자 합니다.
제2의 고향 오늘은 탈북자 북한학 박사 김병욱 씨의 이야기를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