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2의 고향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고비의 순간을 맞습니다. 이럴 때 중요한 것이 긍정적인 사고방식인데요. 오늘은 모든 것을 열린 마음으로 바라보고 자신의 생활을 즐기는 남한생활 9년차 탈북여성 이명희 씨의 이야기입니다.
함경남도 함흥이 고향인 이명희 씨는 서울에서 명문대학이라고 알려진 서울시내에 있는 대학 경영학과를 졸업한 여성입니다. 최근 언론 보도를 보면 남한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도 소위 말하는 일류대학을 나오고도 취업이 잘 안 된다는 말을 어렵지 않게 듣고 볼 수 있는데요. 이 씨는 아직까지 취업에 대한 고민을 심각하게 해본 적이 없다고 합니다.
이명희: 학교를 졸업하면 다 초년병이라서 걱정은 했지만 걱정만 해서 될 것이 아니어서 돈을 많이 받을 수 있는 회사보다는 경험을 쌓을 수 있는 회사를 고르다 보니까 마음이 좀 편했어요.
대학졸업한 지 2년이 지났지만 이 씨는 여전히 좋은 직업, 적성에 맞는 일을 찾아 방황이 아닌 도전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처음 일터는 누가 봐도 안정적인 직장이었는데도 말입니다.
이명희: 유통업이었는데 수입해서 국내 내수도 하지만 대만, 홍콩에 전자용품 파는 회사였는데 7개월 다녔어요. 여름에 이사를 가야 했는데 멀리서 출퇴근 하다가 다른 일을 찾아볼까 하고 영어학원 다니면서 2개월 쉬면서 공부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외식업체에 취직을 했습니다.
연봉 2400만 원 이상 미화로 하면 2만 달러가 넘게 받는 직장을 미련 없이 떠났고 두 번째 일했던 곳은 햄버거 즉 북한에서 말하는 고기겹빵을 만들어 파는 식품회사.
이명희: 4학년 2학기에 21학점 들으면서 한국에 충주에 친환경 햄버거 만드는 회사 투자 설명회를 하면서 외식업체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제가 와인을 모르기 때문에 큰 곳은 못가고 한식외식업체에 들어가서 현장에 3개월 일하다 본사 일을 했습니다. 거의 1년 넘게 일했는데 지금은 다시 퇴사하고 다른 레스토랑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보통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간 사회초년병일 일수록 직장은 많은 사람이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대기업을 희망합니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일단 월급이 많고 급여 이외에 직원에게 차려지는 복지혜택이 작은 회사보다는 다양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상식을 잘 아는 이명희 씨인데 직업 선택에 있어선 나름의 확실한 기준에 따라 움직입니다.
기자: 한 번 직장을 옮길 때마다 걱정은 없었습니까?
이명희: 네 맞아요. 회사를 옮기면서 두려움은 없었습니다. 퇴사하겠다고 맘먹었으면 퇴사 3개월 전부터 자금 관리도 잘하고 옮길 회사에 미리 여러 가지 상황을 점검하고 하니까 두려움은 없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좋은 대학을 졸업하면 대기업 들어가야 한다고 하는데 저는 좋은 곳 보다는 자유롭게 일하고 좋아하는 일을 찾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합니다. 30대 까지는 많은 경험을 하고 싶어요.
기자: 지금 다니는 레스토랑은 어떤 곳인가요?
이명희: 이탈리아 음식 파는 곳인데 들어간 지 얼마 안돼서 저도 공부하는 중입니다.
이 씨가 생각하는 직업은 남들이 말하는 돈 많이 주는 큰 회사가 아니고 일하면서 즐겁고 그런 경제활동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생활을 충분히 영유할 수 있는 곳입니다. 그래서 언론에서 고학력 실업자에 대한 얘기를 들으면 마땅치 않게 들리기도 합니다.
이명희: 저는 젓가락들 힘만 있으면 아무 곳이나 일단 들어가서 경험 쌓고 돈도 벌고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경험을 해봐야 자기가 뭘 할 수 있는지 알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실업이라고 하면 저는 그냥 슬퍼요. 실업자라고 집에서 몇 달씩 취업 준비를 하는 사람 보면 이해가 잘 안돼요.
대학 졸업하고 처음 직장생활을 할 때는 아침에 출근해 저녁이면 퇴근하고 주말은 쉬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주말에도 아는 분 회사에서 시간제 일을 하며 금전적으로 예전보다 줄어든 부분을 보충해야합니다. 그러면서도 이 씨는 자동차를 구입했는데요.
이명희: 저는 차를 산 이유가 29세 11월 지날 때 30세 될 때까지 저한테 선물한 적이 없더라고요. 바쁘게 일해서 친구들도 못 만나고 했는데 바쁜 사람일수록 차를 사서 시간 구애 받지 않고 어디든 다닐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반은 현금을 내고 반은 할부했어요. 차를 산 것에 무척 만족하고 있습니다.
어찌보면 안정적이고 편한 생활을 거부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들 정도지만 자신이 원하는 것이 너무도 확실하고 긍정적이어서 이 씨의 말을 듣는 사람까지 유쾌하게 만듭니다.
이명희: 우리나라에도 도와줄 사람이 많은데 외국에 갈 필요가 있겠나 생각해서 지금은 생활 때문에 봉사활동을 못하지만 지금 매달 1만원 씩 기부를 하고 있습니다. 이제 1년 됐어요.
한때 아프리카나 저개발 국가에 가서 봉사활동을 하겠다는 마음을 접고 생각을 바꾼 뒤에 시간이 없어 참여는 못하지만 작은 금액이지만 자신의 마음을 실천에 옮기고 있다며 수줍게 들려준 얘깁니다. 이렇게 남한생활을 하고 있는 올해 30세 이명희 씨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오늘도 행복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이명희: 결혼은 아직 모르겠고 커피숍을 차리고 싶어요.
기자: 왜 커피숍 이예요?
이명희: 제가 커피를 사랑하는 것은 아니지만 솔직히 여자는 커피숍에서 수다를 많이 떨거든요. 쉽게 할 수 있고 돈도 벌 수 있는 창업이라고 생각해요. 현재 구체적인 구상은 없지만 일반적인 가게가 아니고 좀 특별한 커피숍을 차리고 싶어요.
제2의 고향 오늘은 탈북여성 이명희 씨의 이야기를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