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2의 고향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우스개 소리 중에 일이 잘되면 내가 잘해서 된 것이고 안 되면 조상탓 이란 말이 있습니다.
오늘 소개할 여성은 하는 일마다 잘돼서 남한생활 2년 만에 자기 소유의 화장품 가게를 하면서 집도 큰 아파트로 옮겼는데요. 그를 아는 주위 사람들은 복권 맞은 거라고들 부러워한답니다. 오늘은 탈북여성 김유경(가명) 씨의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양강도 혜산 시에 살다가 2009년 탈북한 김유경 씨. 호기심이 많은 사람입니다.
김유경: 밤에 한국영화 보고 녹음기 듣고 하는데 방송이 잡히더라고요. 똑같은 우리말이니까 잡아서 한참 들었어요. 여기는 아시아 방송입니다. 자유아시아방송입니다. 어디서 하는 방송인지 모르고 방송 틀다가 그런 것이 나오니까...
북한에서 장사를 했던 김 씨는 외부세계 방송을 들으면 처벌 받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세상 돌아가는 일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장사를 하면서 중국행을 하게 됩니다.
김유경: 나진선봉에 가야만 물건이 많기 때문에 무조건 거기서 물건을 가져다 파는 장사를 했는데 거기서 남는 이문을 먹고 했는데 장사밑천이 떨어졌어요. 그때는 남한제품이란 걸 쓸 수가 없고 전부 중국제였죠. 북한에서 얼굴에 바르는 피야스(BB크림), 향수, 립스틱을 쿠엉이라고 거기선 했는데...
처음에는 무엇이든 돈이 되는 생활용품은 다 팔았지만 부피도 작고 돈이 되는 화장품만 취급했습니다. 김 씨는 종자돈 마련을 위해 중국에 갔던 것이 그만 운명을 갈라놨습니다. 그렇게 중국에서 지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마음은 북한을 떠났습니다.
김유경: 저는 중국에 있으면서 한국 드라마를 많이 봐서 한국에 그냥 가고 싶었어요. 인권이 보장되고 자유가 있는 세상에 가서 잘살고 싶은 생각이 많았어요. 다시 고향에 가서 잘 자신이 없어지더라고요. 부모 형제가 있는 그리운 고향이라 가고는 싶은데 지금껏 살아온 것을 생각하니 너무 고생스러웠고 자신이 없어지고 다른 세상을 보니까 돌아가 잘 살 자신이 없는 거예요.
중국에 사는 동안 인터넷을 통해 넓은 세상을 봐 버린 김 씨는 다시 고향으로 갈 수가 없었던 겁니다.
김유경: 몰랐을 때는 그것이 억압인줄 몰랐는데 다른 세상을 보니까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기자: 중국에 있으면서 인터넷을 통해 그런 생각을 했단 거죠?
김유경: 네, 중국에 있으면서 처음 몇 년은 고향에 가고 싶었어요. 추억이 있고 하니까요. 그런데 3년 지나니까 고향이라고 가도 내 인생을 거기서 꽃피울 수 있는 체제가 아니란 생각이 드니까 생각이 바뀐 거죠.
김 씨는 중국에서 남한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고 했습니다. 돈 벌어 고향으로 가겠다고 했는데 이제는 정말 영영 돌아갈 수 없는 상황이 되었으니 자신의 처지가 가엽게도 느껴졌고 가족들 모습이 떠올라 울기만 했습니다. 그런데 참 사람 마음이란 간사하죠?
김유경: 눈물을 흘리면서 도착한 것이 인천공항인데 도착하니까 내가 생각했던 것과 완전히 다르게 고향에 온 것 같더라고요. 말도 통하고요. 중국에 갔을 때는 말도 안통하고 해서 눈물도 나고 고향에 가고 싶었는데 인천에 내리니까 친근감이 들더라고요. 한민족이고 그래서 그런지 경계했던 마음은 사라지고 그저 감사합니다. 이런 마음이 들고 행운아라는 생각을 했어요.
처음 지방에 임대아파트를 배정 받은 김 씨는 좋은 세상에 왔으니 이제 열심히 살아서 성공한 사람이 되자 즉 부자가 되자고 맘먹고 할 수 있는 일을 찾습니다.
김유경: 제봉 일을 했기 때문에 가까운 곳에 공장이 있어서 공장에서 진짜 열심히 일하면서 거기 있는 사장님들이랑 어울려서 일했어요. 제봉공장에 다니다가 서울에 와서 작은 방에서 월세로 살다가 정부에서 준 집을 받았습니다. 지금은 서울 집에서 살면서 공부도 하고 알바도 하고요.
기자: 알바는 뭐하세요?
김유경: 화장품 가게하고 있어요. 북한에서도 화장품을 팔았잖아요. 그래서 여기서 조그만 화장품 가게를 꾸렸어요. 낮에는 화장품 가게 있고 저녁에는 학교 갔다가 화장품 가게 들렸다가 퇴근하고 이러고 있어요.
남한정부에서 임대주택도 주고 생활비 지원도 하지만 장사하라고 장사밑천을 주진 않는데 김 씨는 아파트 전세금을 뽑아서 자기 가게를 차립니다.
김유경: 지금도 모르겠는데 보이지 않는 좋은 사람들이 힘을 주는 구나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모르는 것이 있으면 다 물어봤어요. 가게하고 싶은데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임대주택 반납하고 1천 만 원을 받아서 그 돈으로 가게를 시작했어요. 그래서 벌어서 오늘 이정도로 올라왔어요. 단 하루도 쉬지 않고 너무 힘들었어요. 그 과정이 힘들었어요. 왜냐하면 한국 사회를 모르는 상태에서 도전을 했는데 한국 사람들은 사회를 너무 잘 알아서 도전을 못하더라고요. 실패를 걱정하니까요. 그런데 난 그런 것을 모르니까 용감했던 거죠. 그리고 난 잘되게 하기 위해서 노력했죠.
지금 생각해도 아찔한 한데요 정말 잘됐으니 망정이지 그나마 정부에서 준 임대아파트까지 날아갈 뻔 했습니다. 그런데 그건 운이 좋았다고만 말할 수 없는 것이 김 씨 나름대로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김유경: 저는 여러 가지 방면으로 연구를 했어요. 이 가게를 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연구를 했어요. 그리고 저는 계속 책을 봤어요. 어떤 것을 내가 할 수 있을까? 내가 여기 와서 잘살지 못하면 온 의미가 없다 난 남보다 잘 살아서 고향 사람도 도와야 하니까 나는 무조건 잘살아야지 하고 성공한 사람들의 책을 많이 봤어요.
좋은 일이 생기면 꼬리를 이어 생기는지 얼마 전에는 결혼한 여성만 참가하는 미인선발 대회에서 특별상까지 받았습니다. 그래서 주변사람들이 김 씨를 보면 뭘 해도 일이 잘된다고 복권 맞은 여성이라 하는 가 봅니다.
김유경: 나도 한국의 당당한 한 사람이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요. 뜻밖에 나가서 좋은 상을 받아서 좋고 앞으로도 건너올 때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잘 살아서 남을 돕는 사람이 돼야겠다.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제2의 고향 오늘은 탈북여성 김유경(가명) 씨의 이야기를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