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2의 고향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운명은 결정되어 있는게 아니다. 운명은 바꿀수 있는 것이며 운명을 바꾸는 것은 바로 자신의 몫이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3만명이란 탈북민이 자신이 선택해서 남한에 가서는 제 2의 인생을 살고 있는데요. 오늘 소개할 사람은 사람의 운명을 본다는 탈북민 석소연 씨입니다.
석소연: 저는 무당, 무속인 이란 것은 아니고 영적으로 사람의 앞날을 보는 겁니다. 그래서 다른 무속인들은 신들의 형상을 모셨는데 저는 법당에서 부처님을 모시는 겁니다,.
담배 연기를 피워놓고 그 연기를 통해 사람의 미래를 본다는 석소연 씨. 올해 서강대 심리학과에 입학한 석 씨는 대학 새내기이면서 딸아이를 돌보는 엄마이고 철학관을 운영하는 대표로 1인 3역을 하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런 현재의 모습은 지난 2005년 석 씨의 운명을 바꾸게 하는 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석소연: 아빠가 간부를 해서 평민들 보다 조금 높은 생활을 했어요. 그러다 보니까 세계에 대한 눈을 떴고 일단 중국 방송도 보고 일본서 오는 재일교포, 러시아에서 오는 교포를 만나면서 세계 돌아가는 것을 알았어요. 또 외국에서 들어오는 물품을 90년대부터 썼는데 외화상점에서 사서 썼죠. 그러다 보니까 북한에 자유가 없고 생활이 불편하구나 하는 것을 알았죠.
기자: 탈북하게 된 결정적인 사건이 있었나요?
석소연: 사건은 아빠가 간부를 하다가 모함을 당해서 하루 아침에 자릴 빼앗기고 해임이 돼서는 뇌출혈로 쓰러졌어요. 그래서 우리는 하루아침에 알거지가 됐고 집안이 풍비박산 난거죠.
아버지가 뇌출혈로 쓰러졌다가 기적적으로 3개월 만에 회복이 되면서 자신에게는 영적이 능력이 왔다고 말하는 석 씨. 한국에 도착하면서 새로운 생활을 하게 됩니다.
석소연: 일단 먹는 것은 너무 흔하니까 먹고 사는 것은 걱정을 안했고 자본주의고 경쟁사회다 보니까 너무 긴박하게 살아가고 있어 인간미가 없다는 것이 힘들었어요. 북한에서는 있던 없던 죽 한릇도 나눠 먹고 했는데 여기는 경쟁사회라서 누구 다른 사람 처다 안보고 혼자 살아가야 하는 것이 힘들었어요.
마음이 편하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남한사회 적응이란 해결이 되는 문제였겠지만 마음의 여유가 없었고 조급증에 시달려야 했죠.
석소연: 살면 살수록 더 힘들어요. 처음에 왔을 때 모르고 살때가 편했고 지금은 이 경쟁사회에서 이 사람들을 누르거나 이겨서 가야한다고 하니까 그 스트레스가 아주 많아요.
기자: 예를 들어 예전에 몰랐는데 이제 보이는 것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석소연: 보이는 것이 경쟁시대 그리고 사람들의 편견이요. 뭘 경쟁 하려고 해도 너는 북한에서 왔기 때문에 지식이 없다. 상대방을 알면서 얘기를 하면 받아들이겠는데 여기 사람들은 사람 정면에 두고 북한에서 왔기 때문에 뭐를 아는가 배워야 한다 수준이 낮다 이렇게 말한단 말입니다.
겨우 걸음마를 띤 딸과 함께 시작했던 남한생활. 여자는 약할지 몰라도 어머니는 강하다고 석 씨는 사람들의 무리 속으로 뛰어들어서 사회를 알아가기 시작합니다.
석소연: 애를 위해서 애를 유치원도 보내고 생활해야 하니까 알바라도 조금씩 나가고요. 여긴 도로가 발전하고 해서 어디가 어딘지 몰라서 알아두고 처음에 식당 알바를 시간당 6천원 받고 했어요
기자: 알바라는 것이 어떤 일이었나요?
석소연: 식당에서 홀써빙을 했어요. 일은 이북 사람이 잘하잖아요. 생활력이 강해서요. 일은 할만 했는데 북한 사투리 때문에 사람들이 자꾸 어디서 왔는가 물어보는 것이 힘들더라고요.
식당에서 시간제 일을 한달 정도 하다가 이건 아니다 하는 생각에 바로 철학관 문을 엽니다. 잠시 자신이 가지고 있는 능력을 잊었다가 마음껏 발휘하기 시작하는데요. 그러면서 마음의 안정을 찾게 됩니다.
석소연: 먹고 사는 데는 아무 지장이없고요. 영통철학관에서 점사를 맘대로 볼 수 있는 것이 좋아요. 북한에서는 무서워서 간판을 내걸수도 없고 소문을 낼 수도 없어요. 아는 사람이 찾아와서 가만히 보지만 여기는 광고도 낼 수 있고 내가 이런 것을 한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이야기 할수 있는것, 그리고 또 자유스러운 것이요. 내가 마음대로 비행기 타고 가고 싶은데 가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당당히 하면서 누군가와도 차별 받지 않고 사는 것이 좋아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할지 확신이 서질 않아 불안하고 힘들었는데 원하는 일을 마음껏 할수 있고 경제적인 문제가 해결이 되니 걱정이 사라집니다.
기자: 남쪽 사람들은 찾아와 물어보는 것이 북한에서와 비슷하던가요?
석소연: 완전히 달라요. 북한에서는 먹고 사는 것 그리고 상대에게 위협을 당할지 안당할지 그리고 오늘 무역나가는데 거래가 성공할 것인지 이런 것이었는데 남한에서는 결혼에 대한 것이 많아요. 결혼은 언제할지 대상자가 언제쯤 나타날지를 많이 물어보더라고요. 그리고 승진요. 내가 경제적 능력이 있겠나 이런 거요.
북한에서는 점사를 보다가 잡혀갈까 몰래 했지만 남한에선 오히려 사람들에게 알리는 광고를 하면서 시간을 쪼개 씁니다. 그러면 자칫 점사를 보려 찾아오는 사람을 상대하기 위해 하루종일 철학관을 지키면서 얽매인 생활을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한데요.
석소연: 아니요. 이것은 예약제로 하기 때문에 아무 때나 사람이 찾아오고 하진 않아요. 예약 시간이 아니면 기도하기도 하고 시간에 얽매이진 않아요
기자: 철학관에는 하루 몇시간이나 계십니까?
석소연: 저는 아침 9시부터 3시 까지만 손님을 봅니다. 주 5일만 보고요. 제 일정에 맞춰서 손님을 보지 손님 일정에 맞추지는 않습니다.
기자: 여가 시간은 어떻게 보내세요
석소연: 주로 오후 3시 이후에는 애와 놀고 그 나머지 시간은 제 볼일도 보고 운동도 하고요. 주말에는 애와 놀러 다니고요.
운명이 바뀐 석 씨에게 현재의 생활에 만족한가 행복한가라는 질문을 던져봅니다.
석소연: 내가 지금 북한에 있었으면 점사를 마음대로 못할텐데 여기서 편하게 살면서 마음대로 하고 싶은 것하면서 사고 싶은 것 마음대로 사고 쓰고 싶은 것 마음대로 쓰는 것이 제일 좋아요. 먹고 사는 데는 아무 지장없는 것이 최고 좋아요.
대학에서 심리학을 공부하고 있는 석소연 씨. 사람의 운명은 정해져 있지 않고 변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지금 대학에서 공부하는 것은 훗날 자신이 해야할 일을 위한 것이라고 하네요.
석소연: 통일이 되면 북한에 종교적인 것을 많이 알려주고 싶고 남한 사람에게도 북한 토속 신앙을 알려주는 그런 역할을 하고 싶어요.
제2의 고향 오늘은 석소연 씨의 이야기를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