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이 되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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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2의 고향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걷는 자만이 앞으로 간다’ 이 말을 즐겨 쓰는 사람이 있습니다. 결코 포기 하지 말고 자신의 꿈을 향해 나가야 된다는 말인데요. 남한에 간 탈북여성 이영희 씨가 즐겨 쓰는 말입니다. 이 씨는 지금 남쪽에서 천으로 된 견본책을 만드는 에덴데코의 사장이 됐습니다. 오늘 이영희 씨의 이야기 전합니다.

이영희: 그때는 사람들이 굶어서 죽어 나가고 기본 배급이 딱 끊긴 상태였습니다.

평안북도 출신의 50대 중반 이영희 씨가 말하는 탈북 당시의 북한 상황입니다. 1998년 조금이라도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은 장사를 하거나 소토지가 있으면 그것을 경작해 살 수 있었지만 그나마도 상황이 안 되는 사람은 생명을 잇기도 힘든 어려운 시절이었습니다.

이 씨는 혼자 탈북해서 중국생활을 거쳐 2002년 남한에 갑니다.

이영희: 돈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었습니다. 이북 생활은 모든 것을 국가에서 지급해주니까 자본주의처럼 돈으로 주고 쌀을 사먹어야 하는 상황도 아니고 한마디로 저희는 거저 사는 것에 익숙해져있었죠. 일을 열심히 한다는 것은 당에 입당하기 위해 하는 것이지 돈을 벌어 잘살기 위한 것이 아니었거든요. 그래서 처음에는 남한정부가 돈을 주는 것이 당시에는 큰돈인지도 몰랐어요. 집도 줬지 정착금도 줬지 2년 동안 생활비 줬지 무상교육 해주지 학원도 컴퓨터, 요리 등도 본인만 희망하면 돈을 주면서 국가에서 공부를 시켰거든요.

2000년대 초, 탈북자가 사회적응교육시설을 나와 주택배정을 받으면 3만 달러 상당의 정착금을 줬습니다. 그런데 이 씨가 말한 것처럼 그 정착금을 받아 나온 탈북자들이 돈의 가치를 모르고 쓰다 보니 한순간 다 써버리고 힘들어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정착지원 법을 바꿔 현재는 정착금을 나눠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전이나 지금이나 같은 것은 탈북자에 대한 정부 지원은 5년 동안 이란 점입니다. 이 씨에 대한 지원 혜택도 5년이 되는 해에 끊기게 됩니다.

이영희: 당황했다기 보다는 모르니까 처음엔 남한 사회에 대해 모르니까 다니면서 보기도 하고 텔레비전도 보고 하면서 알아가잖아요. 지원금이 끊기고 돈을 다 쓰면서 뭔가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영희 씨는 현재 견본 책 생산제조 공장의 대표로 있습니다. 어떻게 갑자기 회사 사장님이 됐을까? 5년이란 시간을 어찌 보면 허성세월로 보내고 3년간 기술을 배웠다고 합니다.

기자: 에덴테코 대표가 되기 전에는 무슨 일을 하셨나요?

이영희: 처음에는 여기 사람들과 대화도 안 되고 사람만나기가 두렵고 이북에서 못 먹어서 도망 왔다. 그런 시선이 싫은 겁니다. 그래서 집에만 있고 그랬는데 교회에 다니면서 보니까 일할 생각을 못하고 선교를 해야겠다 싶었어요. 그런데 남한생활 5년이 됐는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는 겁니다. 그때야 정신이 들어 무슨 일을 할까 생각하다가 마침 친구가 탈북인권연대 대표를 해서 거기서 한 1년 일했습니다. 그 과정에 탈북여성 상담을 하는데 일자리 문제가 젤 걱정꺼리더라고요. 그러면서 한지공예 공장을 한 번 방문했는데 이거다 싶더라고요.

우연히 찾은 한지공장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게 된 이 씨는 그때부터 한우물만 팠습니다. 그때만 해도 탈북자 중에 한지를 다루는 기술자가 많지 않아 지역사회 단체가 이 씨에게 운영을 맡기는 기회도 찾아옵니다.

이영희: 한지공예 사업을 3년 하면서 대표로 있었는데 6개월 했습니다. 처음 자리를 수락하면서 탈북자들은 상처를 많이 받으니까 제가 전적으로 운영을 맡겠다고 하고 일을 했는데 남한 아줌마들도 교육시켜보고 하면서 자신감을 얻게 됐어요.

기술이 있다고 해서 다 회사를 차려 사장이 될 수는 없는 건데요. 이 씨가 이렇게 종업원 7명 이상의 생산 공장을 운영하게 된 것은 정부의 지원이 뒷받침 됐기 때문입니다.

이영희: 지금은 회사를 설립한지 1년이 됐는데 이번 6월이면 만 1년입니다. 저희가 자본금이 없기 때문에 나라에서 직원 월급을 줍니다. 저희 회사는 7명에 대한 월급을 정부지원금으로 합니다.

기자: 남한 사람도 회사를 차리고 운영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닌데요. 제일 어려운 점은 어떤 것인가요?

이영희: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사람 상대하는 겁니다. 남한 사람이든 북한 사람이든 같은 것 같은데 시키는 것만 열심히 해서 돈을 받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은 들어와서 일을 열심히 하는데 그렇지 않고 편하고, 급여가 높고 이런 기대를 하고 온 사람은 일하다 나가고 하니까 그것이 제일 어렵습니다.

기자: 만들어 놓은 상품 판매하고 새로운 거래처를 찾는 데는 어려움이 없습니까?

이영희: 그것은 저희가 모든 것을 주문 받아서 임가공 하기 때문에 걱정이 없습니다. 기획사에서 물건을 만들어 달라고 하면 그대로 만들어 내기만 하면 됩니다.

기자: 물량 주문이 끊이지 않고 계속 들어오는 군요?

이영희: 성수기 비수기가 있는데 견본 책은 봄과 가을이고 상자는 명절이 있는 때 몰리는데 한가한 때는 자투리 천을 가지고 방석을 만듭니다. 그래서 불우이웃도 돕고 노인정에 기부도 하고 합니다.

기자: 사회적기업의 대표이기 때문에 항상 소외된 계층을 항상 생각하는 군요.

이영희: 그렇게 하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저희가 남한에 와서 집도 받고 정착금도 받았고 공부하고 싶으면 학비 지원도 되지 그러니까 본인만 맘을 먹으면 뭐든 할 수 있다고 봅니다. 저도 받기만 하지 말고 받았으니까 빚을 갚아야 하잖아요.

이 대표는 자신의 공장에서 일하는 탈북자들이 모두 잘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자신보다 늦게 남한생활을 시작한 탈북자들에게 모범이 되는 선배가 되고자 노력합니다.

이영희: 보고 배운 대로 일정 기간이 지난다음 어느 정도 괘도에 올라서면 나가서 근무자들이 공장을 세우고 그러면 계속 공장이 늘어날 건데 해보니까 쉽지 않다는 것도 깨달게 됐죠. 이제는 생각을 좀 바꿨습니다. 열심히 일한 사람은 그만한 대가를 받고 ...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영희 씨가 좋아하는 글귀인 걷는 자만이 앞으로 나아간다 이 말도 같은 맥락입니다. 이영희 씨는 두 번의 기회를 다 잡았습니다. 첫 번째는 자활공동체 대표로 경영 수업을 쌓은 것이고 두 번째는 자신의 회사인 에덴테코를 운영하게 된 것입니다. 이 씨는 남한생활이 자유가 있어 좋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행복하게 살고자 하는 사람에게 이런 말을 들려줍니다.

이영희: 벽돌을 쌓듯 하나하나 이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이와 상관없이 바쁘다 생각하지 말고 지금이 기회다고 맘먹으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제2의 고향 오늘은 탈북여성 이영희 씨의 이야기를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