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고향] 자유로운 영혼을 그린다-탈북 대학생 이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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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2의 고향’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남한에 간 탈북 청년들은 제각기 자신의 목표를 설정해 놓고 그것을 향해 열심히들 살고 있습니다. 그중에는 이 세상 행복을 화폭에 담아내고 싶어 하는 청년도 있습니다. 현재 남한 홍익대학교 산업디자인 학과에 다니는 스물여섯 살 이슬 씨가 그 주인공입니다. 졸업 후 기회가 된다면 외국으로 유학을 가겠다고 말하는 탈북 대학생 이슬 씨를 서울에서 만나 그의 인생관을 들어봅니다.

기자: 청취자는 남한에서 그림을 그리는 친구가 누군지 궁금해 할 텐데 자기소개를 부탁합니다.

이슬: 제 고향은 함경남도 함흥이고 고등학교 졸업 즈음해 청진으로 가서 한 10년 살다 2006년에 남한에 온 이슬입니다. 홍익대학교에 다니고 있는데 꿈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있습니다.

기자: 어떻게 산업디자인 학과를 선택했나요?

이슬: 할아버지와 외삼촌들이 전부 도예작가였습니다. 그래서 그림도 그리고 도자기도 많이 만지고 보아 왔는데 여기 와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이 그림 그리는 것이란 것을 알고 주변 사람 얘기도 많이 듣고 나서 좀 더 많은 공부를 하고 싶어서 산업디자인과를 택했습니다.

기자: 청취자들은 산업디자인이 생소하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부연 설명을 좀 해주시죠.

이슬: 디자인이라고 하면 북한식으로 하면 도안쯤 될 겁니다. 할아버지도 공예자기 도안이라고 얘기하고 건축 도안이란 말을 쓰는데 여기서는 영어식으로 디자인이라고 하는데 북한 말로 도안이라고 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 같습니다.

기자: 본인에게 예술이란 뭔가요?

이슬: 예술이란 친구인 것 같습니다. 평생 떨어지려야 떨어질 수 없는…그 어떤 쓰고, 달고, 외로움, 행복, 즐거움 그런 것을 전부 공유할 수 있는 친구와 같은 것이 예술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자: 그림을 그린다. 예술을 한다 이런 것이 배고픈 사람에게는 배부른 자의 사치나 취미로 들릴 수도 있을 텐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슬: 물론 그럴 수도 있지만 현실적으로 볼 때 예술이라고 하면 또 그런 것을 선택했다고 하면 대부분 배고파서 어떻게 하냐 경제적인 문제는 어떻게 극복할 것이냐고 말을 하는데 물론 배고플 수도 있지만 배고파도 즐겁게 살 수 있으면 좋잖아요. 배고픈 것을 외면하고 싶어서 다른 것을 선택했다고 하면 어떻게 즐겁게 살 수 있을지 걱정이 되고 내가 즐거울 수 있다면 배고픈 것도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그림을 선택했습니다.

기자: 북한에서부터 그림을 그렸고 예술가 집안에서 자랐는데 남북한의 예술의 차이는 뭐라 보는가?

이슬: 북한의 예술은 정치적 성격이 짙고 사실주의에 정치적 이념이 섞여 있어야 하는데 남한에 오니까 그 범위가 너무 넓어서 끝이 어딘지 모를 정도입니다. 그만큼 내가 예술을 보는 그 눈높이가 넓어진 것이죠. 여기서는 내 눈으로 직접 볼 수 없는 미지의 세계까지도 표현할 수 있는 그런 것이 예술이란 것을 깨달았습니다.

기자: 지금 사랑하는 여인이 있는 것으로 아는데 본인이 하는 일을 잘 이해해 주나요?

이슬: 이해하기 굉장히 어려워합니다. 가끔 싸우기도 하는데 여자 친구는 그림을 그려서 어떻게 먹고 살겠냐 이런 식으로 너무 현실적인데 나는 다르니까 충돌이 좀 있습니다.

기자: 보통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작품에 담는데 이슬 씨가 많이 그리는 것은 어떤 것인가요?

이슬: 수리개, 여기서는 솔개라고 하는데 하늘, 자유의 상징이 수리개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용기 있게 하늘을 날아다니는, 한계를 넘어 날아다니는 그런 이미지가 있어서 저도 그런 모습을 닮고 싶은 이유에서 많이 그리고 있습니다.

기자: 졸업 후 유학을 가려는 이유는 특별히 있는지?

이슬: 대한민국에서 대학을 졸업하면 어느 정도 지식과 안목이 쌓이겠지만 21세기 이 땅은 그저 한 조각에 불구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유럽이나 다른 나라에 도 가게 되면 저랑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할 수 있고 내가 지금 있는 이 땅이 얼마나 작은지 세계가 얼마나 넓은지 느끼고 싶어서 …

기자: 10년이나 20년 후 이슬 씨의 모습은?

이슬: 가끔은 유명해 질 것인가 아니면 부자가 될 것인가 아니면 빈곤자가 될 것인가?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그런데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분명한 것은 지금보다는 여유가 있고 좀 더 하고 싶은 일을 열정적으로 하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고 한 가정의 든든한 가장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기자: 분단국가에 살고 그리운 친구와 서신연락 조차할 수 없는 현실에 살고 있는데 북에 있는 친구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어떤 것인가?

이슬: 보고 싶은 친구들아 너무 보고 싶다. 꿈속에서도 너희들 생각을 한다. 북한에는 이릴 적 동무인 짜개바지 친구가 있는데 너무 보고 싶습니다. 여기 함께 있었으면 같이 꿈을 향해 열심히 살아볼 수 있었을 텐데 나 혼자 왔고 친구를 두고 온 생각에 가끔은 술 한잔에 취한 채 그런 감정에 젖어 있을 때도 있는데 언젠가는 다시 만날 날을 그리면서 아직까지 너와 함께 찍은 사진, 그 사진 속에 웃고 있는 그 모습대로 건강한 모습으로 만났으면 좋겠다.

‘제2의 고향’ 오늘은 남한의 홍익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 재학생인 이슬 씨를 만나 그의 인생관에 대해 들어 봤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