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인정받고 싶다

0:00 / 0:00

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2의 고향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많은 수의 탈북자는 남한에 간 이유가 배고픔 때문이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남한에 가서는 그동안 모르고 살던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한다고 하는데요. 남한생활이 7년차가 되는 탈북여성은 오늘도 어떻게 하면 좀 더 가치 있는 삶을 살 수 있을까 고민한다고 합니다. 경북대학교 재학생 정은지(가명) 씨의 이야기 전해드립니다.

정 씨가 탈북한 것은 북한에서 수많은 사람이 굶어 죽어간 1998년입니다. 그리고 탈북해 중국 생활을 거쳐 남한에 갔을 때는 그의 나의 20대 후반 입니다. 남한에 가서는 처음 목표가 잘 먹고 부자가 되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정은지: 처음에는 한국은 자본주의 사회라 돈이 최고라는 얘기를 많이 들어서 무조건 닥치는 대로 일했습니다. 식당일도 하고 카드 회사에 가서 카드 발급하는 일도 하고 했습니다.

기자: 그래서 돈을 많이 벌었습니까?

정은지: 아니요.

기자: 열심히 일하면 돈을 벌고 일한만큼 받는 것은 맞는데 현실은 어떻던가요?

정은지: 현실은 참담하죠. 북한사람이 와서 저 같은 사람은 말처럼 새로운 곳에서 시작하는 새터민인데 솔직히 정착금이 우리 미래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니까 뭔가 해야 하긴 한데 나이는 많고 이 땅에 세워 놓은 기반은 없고 하니까 많이 힘들죠. 하지만 잘아보자는 마음은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돈을 벌먼 안 먹고 안 쓰는 것에 집착했던 것 같고요. 안 먹고 안 쓰면 부자가 되는 줄 알았는데 그렇진 않은 것 같아요.

정 씨는 자신이 누리는 것에 대한 비용을 지불해야한다는 것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겁니다. 전기료나 물 값 등 공과금을 내야하고 손전화기 사용료에 아파트 관리비 등 한 달에 자동으로 나가는 돈이 만만치 않습니다.

단순 육체노동이나 시간제 일로 버는 수입으로는 정 씨가 원하는 부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겁니다. 그리고 가장 힘들었던 것이 남들과 자신의 처지를 비교하면서 느끼게 되는 상대적 빈곤감입니다.

기자: 현실이 보이기 시작한 계기가 있었을 텐데요.

정은지: 네, 있었죠. 살다보니까 항상 허리띠를 졸라매고 지원이 없이 살아야 하니까 마음의 여유가 없어지더라고요. 그러니까 사람이 위축되고 그러다 보니까 대인관계도 안 되고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하는 거예요. 그러다보니까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고 이렇게 사는 것이 아니구나. 또 주위를 돌아보니까 한국 사람들은 즐기면서 잘 사는 것 같아요. 그런데 우리는 마음의 여유가 없고 한국 사람들처럼 살아보자고 경쟁하듯 너무 서둘렀던 것 같아요.

기자: 마음의 여유를 말씀하셨는데요. 북한주민이 탈북하는 가장 큰 이유가 먹는 문제 때문인데 남한에 가서 그 문제는 해결됐을 텐데 이제 마음의 여유가 없어졌군요.

정은지: 네, 마음의 여유가 없어진 거죠. 중국에 살 때는 지금처럼 이렇게 마음이 힘들지 않았어요. 중국에서 8년 정도 살았는데 그때는 살겠다는 욕망이 지금보다 더 높았던 것 같아요. 북한에서 못 먹고 살다가 중국이란 땅에 오니까 그 땅이 낙원 같았어요. 사람이 이렇게 사는 세상도 있었구나 하는 것을 20대 초반에 느꼈던 거예요. 사는데 항상 강제북송 때문에 위험감에 살긴 해도 먹고 사는데 너무 행복했던 거예요. 한국에서는 먹을거리 걱정 없고 북한에서처럼 밥을 걱정하고 하진 않는데 대신 정신적인 공허함이 북한이나 중국보다 남한에서 더 큰 것 같아요.

하루 세 끼 끼니 걱정은 없습니다. 오히려 어떤 맛있는 음식을 해먹을까 고민이었고 법을 어기는 일을 하지 않는 이상 잡혀갈 걱정도 없지만 늘 마음 한구석 허전하고 불안했다는 겁니다.

정은지: 사람 마음이 간사해서 그렇지 않을까요? 비교해보면 한국에서 사는 것이 북한이나 중국에서 사는 것보다 많이 행복한 것은 맞아요. 그런데 그 이면에는 항상 경쟁하면서 살아야 하잖아요. 남한사람과 살다보면 괴리감이 느껴지는데 항상 그 사람들을 따라가려고 노력하다보니까 그것 때문에 힘든 것 같아요.

기자: 단순 노동만 하다가는 안 되겠다 다르게 살아야겠다고 결심하고 한 것은 뭔가요?

정은지: 그래서 대학에 진학했어요. 저희가 하나원에 있을 때는 여러 얘기를 듣다 보니까 한국사회는 돈만 있으면 잘살 수 있다 이런 말이 많았어요. 저희는 솔직히 자본주의 사회에 대해 잘 모르잖아요. 그때 판단한 것이 돈을 벌겠다였죠. 그런데 얼마큼 벌어야 한국사람 중산층이 되겠는가? 힘들겠구나. 이런 것을 살다가 느끼게 된 거죠. 처음에는 열심히 일하고 안 먹고 안 쓰고 저축하면 한국 사람과 같이 어느 정도 수준이 되겠다 싶었는데 3년 정도 살아보니까 그게 아닌 거예요. 그래서 난 대학에 가야겠다. 공부해서 온전한 직장에 다니면서 인생에 가치를 두고 살아야겠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거예요.

기자: 지금 대학에서 하는 전공은 어떤 건가요?

정은지: 중국어 하고 있어요.

기자: 앞으로 중국과 관련된 무역이나 중국과 관련된 일을 생각하면서 공부하는 군요.

정은지: 처음에는 그런 생각을 했는데요. 학교에서 공부하다 보면 나이어린 아이들과 같이 공부하는데 정말 잘해요. 지금 한국에 취업이 굉장히 어렵잖아요. 처음에는 중소기업 정도는 들어가 일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고 지금도 대학 4학년인데 취업을 안 하겠다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나이가 있고 하니까 이 사람들과 경쟁을 하려면 좀 더 전문가 적인 그런 것을 갖춰야 되지 않겠는가? 이런 생각을 해요.

가치 있는 인생이란 뭘 말하는 걸까? 인간의 기본적인 먹고 입고 잠자리 문제들이 해결이 되니 좀 더 철학적인 문제에 생각이 미치게 됩니다.

정은지: 저는 욕심인지는 모르겠는데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 욕심이 있는데 그 가치관 속에는 도덕적인 것도 있고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경제적인 것도 있잖아요. 한국의 중상층 까지는 못가도 영세민보다는 더 나은 삶을 살고 싶은 거죠.

정은지 씨는 이제 정말 행복하게 살고 싶고 그런 인생을 위해 애쓸 것이라고 말합니다.

정은지: 제가 생각하는 행복은 자신이 생각하는 가치 있는 일이죠. 돈을 떠나서 인정받고 싶어요. 뭔가를 해서 일이 좋고 스스로 보람을 찾을 수 있는 내 자신을 위해서 또 사회를 위한 그런 일이요. 솔직히 북한에서는 먹지 못해서 장사도 해봤고 달리는 기차에도 올라봤었고 중국에서 말도 안 통하는데 열심히 일했죠. 그때는 정말 먹고 살기 위해 살았어요. 목숨을 유지하기 위해서요. 그런데 이제는 먹고 사는 것을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정말 사람답게 살고 있구나. 이런 것을 느끼고 싶어요.

제2의 고향 오늘은 탈북여성 정은지(가명) 씨의 이야기를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