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2의 고향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남한으로 간 탈북자들은 대부분 부자로 살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열심히들 일하는데요. 간혹 너무 무리하거나 지병이 겹쳐 뜻하지 않게 병원 신세를 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재봉사로 일하던 탈북자 박명수(가명) 씨는 최근 수술을 받았는데요. 남한에서의 병원 이용과 치료 박씨가 어떻게 해결했는지 전해드립니다.
함경남도에서 당일군으로 일하던 박 씨는 남한에서 재봉 일을 합니다. 이제 남한생활이 햇수로 10년이 돼가는 데요. 그동안 열심히 일한 탓에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을 모르고 지내고 있답니다. 기자는 지인을 통해 최근 박 씨가 수술을 받았다는 얘기를 듣고 어찌된 일인지 안부를 물었습니다.
박명수: 일요일이었는데 회사에서 갑자기 일할 것이 있다고 나오라고 해서 일을 좀 과도하게 했어요. 그리고 집에 와서는 저녁부터 좀 아프더라고요. 괜찮겠지 했는데 밤중에 너무 아프니까 집사람이 안 되겠다고 해서 차를 끌고 응급실에 갔어요. 아무래도 맹장 같으니 내일 다시 병원에 오라.
기자: 맹장은 늦게 발견하면 복막염이 되기 때문에 조치를 취해야 하는데 어떻게 내일 오라고 하죠?
박명수: 글쎄요. 거기서 말하는 것은 약을 주면서 경과를 보자고 했어요. 응급실은 전문의가 나오지 않고 담당이 나오니까 자기로서는 맹장 같은데 전문의가 나오면 다시 보자고 그런 것 같아요. 다음 날 전문분야 의사에게 가서 확진을 받은 거죠.
한국에 가서 제일 먼저 취득한 것이 운전면허증이라는 박 씨. 자정이 넘었는데 몸에 이상을 느끼고는 바로 차를 몰고 병원 응급실에 갑니다. 집하고 병원이 그리 멀지 않았기 때문에 직접운전을 해도 별 문제없겠다고 생각했다고 하는데요. 늘 있는 그런 일이 아니라 모든 것이 어설프기만 합니다.
박명수: 다음 날 아침밥을 약간 먹고 갔더니 검사를 못하니 오후에 다시 오라고 해서 점심을 안 먹고 4시경에 검사를 다 받고 입원을 했어요. 그리고 수술은 다음날 아침 10시에 수술을 했어요.
기자: 북한에서도 수술을 받은 경험이 있나요?
박명수: 제가 일생에 수술을 두 번 받았습니다. 2005년에 한국에 와서 담낭 수술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번이 두 번째입니다.
기자: 담낭 수술은 왜 받으셨나요?
박명수: 돌이 생기는 병이었는데 그때는 심하게 아프더라고요. 그때는 제가 운전을 안 할 때니까 택시를 불러서 병원에 가니까 저를 보더니 담낭 수술을 해야겠다고 그길로 입원을 시키더라고요. 아침에 갔는데 바로 오후에 수술했습니다.
기자: 수술 하면서 두렵거나 걱정은 없었나요?
박명수: 한 번 수술한 경험이 있으니까 그런 생각은 들지 않더라고요. 여기 분들도 말씀하시는데 북한에서 온 사람들이 의지가 강하다 3국을 거쳐 오자면 목숨을 걸어야 하니까 다른 사람에 비해 의지가 강하다고 하더라고요. 이번에 우리 회사 분들도 그렇게 아픈데 어떻게 운전을 해서 갔냐고 하더라고요. 몸이 아프고 수술을 하자고 하니까 다른 긴장감이라든가 겁이 난다든가 그런 생각은 없더라고요.
기자: 이번이 두 번째 수술이었으니까 주변을 돌아보는 여유도 있었을 텐데 어땠습니까?
박명수: 한국에서 병원치료는 북한에도 살았고 한국에 사니까 의료시설이나 의사들의 수준이 모든 것을 놓고 볼 때 확실히 자본주의 사회고 발전된 사회여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북한에 비해 우월하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북한에 있을때 이런 일을 당했으면 힘들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도 들더라고요.
박 씨는 병원에서 맹장 수술을 받고는 일주일 입원 치료를 받습니다. 병원에 오니 눈에 띄는 것은 온통 환자들뿐입니다. 아니 이렇게 아픈 사람이 많았던가? 평소에 건강한 편이었던 박명수 씨는 하루 빨리 집으로 가고픈 생각뿐이었는데 회복이 남들보다는 좀 더 더뎠습니다.
박명수: 수술하고 나서 가스가 빠지지 않았어요. 맹장은 가스가 빠져야 식사를 한다고 해요. 3일 동안 가스가 빠지지 않으니까 먹지 못하고 링거만 맞았어요. 3일 지나서 죽이 들어오는데 처음에는 두어 숟갈 먹으니까 먹기 힘들더라고요. 식사가 낙후하고 그런 것은 아닌데 수술하고 입맛도 없고 하니까 집에서 가져오는 밥을 조금씩 먹고 집에 와서 소고기도 먹고 영양보충을 하고 했어요.
보통 남들은 맹장 수술하고 하루나 이틀이면 방귀가 나온다는 데 박 씨는 4일째 몸이 가벼워진 겁니다.
박명수: 느낌이 좀 달라요. 속안이 시원하면서 편안한 감이 들더라고요. 처음 한 번은 살짝 나오더니 한 두 시간 지나니까 연속으로 나오면서 그때 가서야 살 것 같더라고요.
기자: 일주일 입원하시면서 돈에 대한 걱정은 없으셨나요?
박명수: 북한이탈주민은 몸에 중증질환이 있으면 기초생활수급자 조건을 주더라고요. 의료비는 전액 면제고 입원비가 하루 2만 5천원인데 일주일해서 한 40만원 나와서 내고 의료보험을 들어서 나온 돈으로 상쇄했어요.
누구는 그런 말을 합니다. 두 번씩이나 천당 문 앞까지 갔다가 왔는데 기분이 어떤가 하고 말합니다.
박명수: 글쎄 특별하게 어떻게 살겠다. 이런 생각 보다고 젊은 사람에 비해 내가 많은 신경을 써야겠구나. 그런 생각도 가지게 되고 아무래도 목숨을 걸고 자유를 찾아 이 땅까지 왔는데 내 몸은 내가 돌봐서 좋은 세상에서 오래 살아야겠다. 그런 생각은 많이 가지고 있어요.
제2의 고향 오늘은 맹장 수술을 받고 회복 중인 탈북자 박명수(가명) 씨의 이야기를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