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고향] 탈북자 한의학 박사 1호 박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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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2의 고향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남한으로 간 탈북자 중에는 한의사 즉 북한식 표현으로 동의사 3형제가 있습니다. 모두 남쪽에서 공부를 해서 한의사가 됐는데요. 3형제 중 맏형은 한의학 박사학위까지 취득했습니다. 오늘 소개하는 주인공, 바로 남한에서 탈북자 한의사 제 1호이며 박사 1호 이기도 한 묘향산 한의원원장 박수현 씨입니다.

박수현: 세상을 모르게 되면 이게 좋은지 나쁜지 이런 비교를 할 수 없습니다. 저도 북한에서 살 때는 북한이 최고의 세상이고 거기를 떠나면 죽는지 알았는데 다른 세계를 보니까 내가 제일 바닥에서 살았다는 것을 알았죠.

박수현 씨는 함경북도 경성군에 어려서부터 소문난 수재로 통했다고 했습니다. 청년이 돼서는 군복무시절 13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청진 의과대학 한의학 부를 다니기도 했지만 1993년 탈북해서 남한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남들보다 늦은 28살에 남한 사람도 하기 힘들다는 한의학을 공부해서 한의사가 됐습니다.

기자: 묘향산 한의원을 운영하신 지 올해로 11년이 됐네요.

박수현: 벌써 그렇게 됐습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간 것 같습니다.

기자: 환자들은 어떤 분들이 주로 오시나요? 연령층이 어떤가요?

박수현: 다양합니다. 아이들도 많이 데려오고요. 아이에게는 한약을 못 먹인다 알고 있는데

설명을 해드립니다. 약재가 다 우리가 먹는 양파, 도라지, 더덕, 잣, 은행 이런 먹는 음식이기 때문에 그런 음식으로 치료를 해주는 거다 이렇게 설명을 해드리거든요.

남한에 사는 탈북자 2만 명 시대가 된 지금은 탈북자 한의사가 얼핏 손꼽아도 십 여 명이 되지만 이 모두는 2001년 박수현 씨가 탈북자 한의사 제 1호가 된 이후 배출된 겁니다.

그리고 2009년에는 경원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습니다. 탈북자 한의학 박사 제 1호가 된겁니다.

박수현: 일단은 한국 사회 살아가면서 조금씩 눈에 보이니까 뭘 해야지 하고 정해서 한 것은 아닙니다. 처음 한국에 왔을 때 태평양 화장품에 들어가서 일할 때는 그때 상태에서 최선을 다했던 것이고 그 다음 일하면서 사람들을 만나고 생활 하면서 한국에서 살아가려면 공부를 좀 더 해서 적응을 하면 사회에 더 필요한 사람이 되겠다 해서 다시 도전하게 됐고 그래서 학교생활을 하게 됐고 한의사가 돼서는 환자들을 보면서 조금 더 공부를 해서 박사 학위를 따면 나한테도 좋고 환자 진료하는데도 도움이 되겠다 이런 생각으로 차근차근 하면서 하게 됐습니다.

기자: 한의사는 양방하고는 좀 다른데 환자를 대하는 신념은 어떤 것인가요?

박수현: 양방은 현대 의학 기술이 우선하겠지만 한의학은 민족의학이니까 원래 한국 사람은 정에 강합니다. 한의원은 어느 원장님이 잘 한다더라 친절하다 이런 소릴 듣고 오는 경우가 많다고 봅니다. 어떤 분은 한의학도 전문 분야로 나가야 한다고 말하는데 저는 그것이 아니고 환자를 대하는데 식구처럼 아니면 예전부터 알던 사람처럼 따뜻하게 대해주는 그런 심리적인 정신적인 안정면도 같이 중시하면서 환자 진료를 하고 있습니다.

기자: 소위 말하는 인텔리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잘 믿지 않는 편인데 어려움은 없습니까?

박수현: 그런 사람들이 더 잘 믿습니다. 병에 대해 한방적으로 설명을 합니다. 예를 들어 도라지가 있는데 이것을 먹어서 당신의 살과 피와 뼈가 된다. 음식을 먹고 살이 되고 병이 나고 그런 것이지 다른 것이 아니라고 설명을 해주면 환자가 그게 맞는다고 하면서 더 잘 믿습니다. 살짝살짝 깨우쳐주는 것이죠.

박수현 씨는 동생 두 명이 남한에 오자 공부를 도와 한의사가 되도록 했습니다. 남한 생활을 먼저 한 형의 조언으로 동생들도 형의 뒤를 밟았습니다. 두 동생 모두 시험에 두 번씩 떨어지면서 좌절도 했지만 박수현 씨는 그 동생들이 그 고비를 잘 넘길 수 있도록 힘을 보탰습니다. 남한으로 간 3형제는 공부하는 것이 천성일까?

기자: 청진 의학부 한의학부 다닐 때 동네에서 수재로 소문이 났고 동생 두 명도 한의사로 만들었잖아요? 공부하는 비결이 있습니까?

박수현: 그런 것은 없습니다. 이것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한 것입니다. 하다가 안 되면 딴 것을 해야지 그것이 아니고 안 하면 죽는다는 마음으로 외골수로 생각하고 하니까 된 겁니다.

기자: 한의원 운영하면서 공부를 하셨는데 이것 아니면 안 된다 그건 무슨 말인가요?

박수현: 한의사 공부는 그렇게 했고 박사학위 받은 것은 환자들이 더 잘 믿어주니까 믿으면 치료 효과가 좋아지니까 그렇게 했습니다. 한의학은 믿음의 의학이기 때문에 환자가 와서 저 사람이 원장님이구나 하는 것보다 한의학 박사다 하면 상대방의 믿음이 더 커지죠.

기자: 미국 하버드 대학에 가서 교수가 되는 것이 다음 목표다 이런 말을 했는데요.

박수현: 하버드 대학교 교수는 아니고요. 하버드 대학 공부도 한 번 하고 싶다는 얘기를 했습니다.

기자: 공부하는 것을 좋아하십니까?

박수현: 공부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고 천릿길도 한걸음부터이듯 하나하나 한다 그런 마음이죠.

기자: 동생들에게도 그런 말을 해줬나요?

박수현: 그렇죠. 동생들에게도 하루아침에 전부 이룰 수가 없다 여기 사람들도 시험에 떨어지고 하는데 공부 체계가 다른 세계에서 왔기 때문에 시간이 걸린다고 했습니다.

최선을 다해라 생각하기 탓이다 마음을 편히 먹으라고 말해줬습니다.

북한에서처럼 묘향산 한의원을 찾는 남한 환자들이 못 먹어서 질병에 걸려 오는 환자는 없습니다. 오히려 예뻐지려고 먹지 않고 북한식 표현으로 몸깍기를 너무해 건강을 해친 사람은 있을지 모르지만 말입니다. 박수현 씨는 남한사람이나 북한주민이나 모두 건강하게 살기 위해 꼭 지켜야 하는 건강비결 3대 원칙이 있다고 했습니다.

박수현: 일단 잠이 보약이라고 했기 때문에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것이 제일 중요하고 그 다음에 내 몸을 이루는 것은 음식이기 때문에 내 상태에 맞는 음식을 먹는 것이 중요합니다. 무슨 음식이 좋다고 하면 그 음식이 내 몸에 맞는지 안 맞는지 따져보고 먹는 것이 중요하고요. 그리고 운동을 해야 합니다. 운동은 밥 먹듯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오늘에 안주하지 않고 항상 새로운 목표를 세워놓고 생활한다. 이것이 박수현 씨의 인생철학입니다. 그리고 오늘 이 순간은 현실에 충실하면서 행복합니다.

박수현: 저는 한의사니까 환자들 진료하는 것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내가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제2의 고향 오늘은 탈북자 한의학 박사 1호 박수현 씨의 이야기를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