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2의 고향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고난의 행군 시절엔 많은 북한 주민이 먹고 살기 위해 두만강을 넘었지만 2000년대에 들어서는 그 이유도 다양해 졌습니다. 오늘은 아들의 미래를 위해 탈북하게 됐다는 남한생활 2년차인 탈북여성 강미숙(가명) 씨의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강미숙: 내 마음이 얼굴에 딱 나타난다고 해요. 너무 좋아한다는 것이 그러니 난 행복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죠.
그냥 행복하고 모든 것에 감사하다는 강미숙 씨는 함경북도 무산 출신입니다. 북한에서는 시 체육단 소속 운동선수였는데요. 지난 2004년 탈북 했습니다.
강미숙: 탈북하게 된 동기는 첫째는 아버지 고향인 경상남도에 한 번 가보고 싶었고 두 번째는 아들 때문입니다. 북한에서는 아무리 공부를 잘해도 학교에서 요구하는 돈을 낼 수 없으면 안 되는 겁니다. 내가 힘드니까 잘 먹이지도 못하고요. 그러다 보니 배우고 싶은 것도 못 배우고 해서 제가 한이 맺힌 거죠.
아들이 열두 살 되던 해에 강 씨는 ‘엄마가 돈을 벌어오면 꼭 훌륭하게 키워 줄 테니 기다리고 있어라’ 아들과 약속 하고 혼자 두만강을 넘습니다.
강미숙: 그땐 날 팔아먹던 어떻게 하던 중국에 보내달라고 해서 대련에 갔고 식당에서 1년 반을 일했습니다. 그때 항상 좋은 음식 남은 것을 보면 북한에서 굶고 있을 아들 생각에 잠을 못 잤습니다. 북한에 돈을 보낸다고 해도 다 갈 수도 없고 해서 돈을 들여서 아들을 14살 때 데려왔습니다. 아들이 배우질 못하고 내 옆에서 식당일 하면서 컸습니다. 어렸을 때는 신분증 보잔 말을 안했는데 아이가 키가 크고 하니까 신분증을 보자고 하기 시작한 겁니다. 그래서 불안해서 한국에 오게 됐죠. 한국 가야만 당당하게 공부할 수 있다고 하니까 아들도 가자고 하는 겁니다.
중국에서 햇수로 6년 식당일을 하면서 먹고 사는 데는 문제가 없었는데 신분 문제가 해결이 안돼서 한국으로 갑니다. 탈북 당시 소년이었던 아들이 이젠 청년이 됐습니다.
강미숙: 20살 때 고등학교 1학년에 들어갔습니다. 학급 아이들이 키는 다 큰데 나이는 어리고, 22살 고등학교 3학년이 됐는데 학급아이들은 19살 인거죠. 제일 자랑 하고 싶은 것이 아들입니다. 일반 탈북자 아이들이 일반 학교에서 잘 적응을 못하는데 아들이 잘 하고 있으니까 더 바랄 것이 없는 거죠. 아들 꿈이 경찰입니다. 대한민국 학교에서도 1-2등 하는 아이들이 가는 경찰대학인데 너무 학습능력 차이가 나니까 고민 중에 있는 거죠. 처음에는 거의 꼴찌를 하다가 이제는 많이 나아졌는데 아직까지는 공부가 좀 딸리니까 힘들어하죠.
기자: 보통 아이들이 대안학교를 가는데 어떻게 일반 학교엘 갔나요?
강미숙: 하나원에 있을 때 담임선생님이 일반 학교 가도 되겠다 해서 간 겁니다. 진학해서는 교장 선생님이 1년을 지켜보다 너무 잘 하고 있다며 언제든 어려움이 있으면 찾아오라고 하고 지금은 선생님들도 믿고 학습반장도 시키고 그럽니다.
보통 탈북자가 남한에 가면 한 3년 정도는 살아야 자본주의 사회에 적응이 된다고 하는데 강 씨는 초기정착교육 시설인 하나원을 나서며 바로 취업을 합니다.
강미숙: 먼저 식당일부터 했습니다. 주방에서 설거지도 하고 했습니다. 팁도 주는 적이 있었는데 제 말투를 보고는 손에 만원을 쥐고 있다가 나중에 천원을 주는 겁니다. 받지는 않았는데 서러워서 화장실에 가서 많이 울었습니다. 그래서 접대원 보다 요리를 배워 주방장이 되자고 결심하고 자격증도 따고 했는데 그때 춘천 하나센터에서 사회적기업으로 막국수 집을 차린 겁니다. 1년을 했는데 일하면서도 즐겁지가 않은 겁니다. 내 꿈이 식당일이 아니었던 거예요.
강 씨가 말한 팁이란 손님이 접대원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기 위해 가격 이외 일정 금액을 주는 것인데요. 남한 사람이었더라면 10불 정도를 받을 수 있었는데 말투를 듣고 중국 조선족줄 알고는 1달러 정도 주더란 겁니다. 강 씨는 그것을 차별이라고 느꼈는데요. 이제 다니던 직장을 나와 자기 꿈을 실현하기 위해 대학에 진학을 준비 중입니다.
강미숙: 제가 항상 북한에 있을 때부터 사람과 소통하는 일을 좋아했어요. 내가 관료주의적인 면이 있어요. 그런데 교육을 받으면서 많이 바뀌었죠. 내가 마음을 먼저 열고 다스리려고 해선 안 된다 이런 맘을 먹으면서 얼마나 내 마음이 편해졌는지 몰라요. 그리고 나이 탓 하지 말고 모르는 것이 있으면 배워라 마흔 다섯인데 아직 늦지 않았다 생각하고 내가 좋아하고 주위에 힘든 사람을 도울 수 있는 그런 일을 하기 위해 지금 공부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에 감사하고 행복하다는 말하는 강미숙 씨 그는 항상 웃고 있기에 그를 보는 사람들이 자주 묻습니다. 뭐가 그렇게 좋냐고 말입니다.
강미숙: 우선 아들이 정착을 잘하고 있고 내가 낙심하지 않고 꿈을 이룰 수 있게 이 나이에 배울 수 있다는 것이 좋습니다. 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행복합니다. 또 신랑이 한국 분인데 나한테 너무 편안하게 잘해주고 아들도 같은 남자라고 아빠한테 자기 고민 다 말하고 하는 모습이 좋고요. 처음에는 내가 행복한 사람이다 하면서 마음의 위로로 삼았는데 지금은 진짜 행복을 느끼고 있잖아요. 그러니까 진짜 감사한 마음입니다.
제2의 고향, 오늘은 탈북여성 강미숙(가명)씨의 이야기를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