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고향] 서른 아홉살 늦깍이 탈북대학생의 향학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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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2의 고향’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교육과 관련해 자주 인용되는 말이 있습니다. 맹모삼천지교. 맹자의 어머니가 아들을 가르치기 위해 세 번이나 이사한 것을 이르는 말입니다. 보통 자녀교육에 쏟는 부모의 열정은 남한이나 북한이나 별 차이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런데 새로운 것을 배운다는 것은 나이를 떠나 누구에게나 즐거운 일인가 봅니다. 오늘은 서른아홉 살 나이에 대학에 들어간 탈북여성 황은선(가명) 씨의 이야기입니다.

황은선: 공부라는 것이 욕심이 있으니까 그런지 밤을 새워도 뭐라도 보고 싶고 하고 싶고 그렇더라고요.

고난의 행군 시절 먹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탈북을 했고 중국에서 조선족 남편을 만나 아이까지 낳았지만 불안한 신분 때문에 8년 전 남한 행을 택한 황은선 씨. 그리고 중국에 남겨두고 온 딸아이를 데려오기까지 적잖은 마음고생 탓에 없던 병까지 생겨 정상적인 생활이 어려워보였습니다. 그런데 기자가 오랜만에 연락을 해보니 대학에 진학했다는 겁니다. 그 이유는 아이를 위해서 또 자신의 미래를 위해서라고 하는데요.

황은선: 하는데 아이가 어느 순간부터 학원을 다니면서 ‘엄마 이런 것 모르지?’ 이런 말을 하는 겁니다. 그래 느꼈습니다. 아, 이게 아니구나. 엄마가 배워야겠구나. 늦었지만 내가 배워야 나중에 떳떳한 엄마가 되고 아이에게도 우리 엄마는 대학을 나왔다 이런 자랑거리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이제는 한국에 온지 8년이 됐는데 지금껏 아이 돌보는데 시간을 썼다면 이제는 이 사회에 발붙이고 살아야겠는데…처음에 남한에 와서는 중국에 있는 아이를 데려오기 위해서 식당에서 하루 13시간씩 일을 했었거든요. 그때 한편으로 안타까웠던 것이 배우지 못하니까 이런 일밖에 못하는 구나 그런 생각을 많이 했거든요.

남한 정부는 고등학교 졸업한 후 5년 안에 그리고 만 35세 이전에 탈북자가 대학에 간다고 하면 국립대학의 경우 학비 전액을 지원하고, 사립대학은 학비의 절반을 정부가 내줍니다. 그런데 남한입국 8년 만에 그것도 마흔이 다돼서 대학에 갔다면 그 비싼 등록금 문제는 어떻게 해결했는지 들어봤습니다.

황은선: 공부하기로 결심을 했으니까 당장 하고 싶어서 미치겠더라고요. 학교에 가니까 통일부에 알아보니까 지원이 안 된다 내 돈으로 370만 원을 내야 하는데 학교에서 대출을 받아 충당을 하라고 했습니다. 안 되겠다 싶어서 통일부에 다시 전화를 했습니다. 아이가 없이 사는 사람은 오자마자 학교를 다닐 수 있지만 아이를 정착 시킨 다음에 부모가 공부를 해야 하는데 방법을 알려 달라. 5년 동안 공부를 해서 혜택을 받았으면 모르겠지만 입국한지 8년이 지나 학교에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달라고 세 번 전화를 했습니다. 그러니까 학력인증서를 대구시 교육청에 가서 받아 학교에 제출하면 심사 후 학비 지원이 된다고 하더라고요.

황 씨는 남한 입국 때 조사기관에서 북한에서는 고등학교를 졸업했다고 해서 그렇게 기록이 됐지만 학력인정을 교육청에서 받지 않았기 때문에 실제 남한생활은 8년이지만 고등학교 졸업 후 5년 이라는 조건에 맞아 학자금 지원의 혜택을 받을 수 있었던 겁니다.

포기하지 않고 방법을 찾던 황 씨는 결국 학자금 문제를 해결했고 올해 초 대구에 있는 2년제 영진전문대학에 입학했습니다. 어렵게 들어간 대학이지만 학교생활은 황 씨에게 새로운 희망이요 즐거움 그 자체입니다.

황은선: 들어가니까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내가 장학금도 타야겠다! 일단 건성건성 해서는 안 되겠다. 이런 마음이 자연스레 생기더라고요. 의욕이 막 생기고 나이가 있는 사람들이 만학도 동아리를 만들었습니다. 제가 부회장인데 열성적으로 우리가 하니까 사회복지과 교수님도 그렇고 학교에서도 인정을 해주는 편입니다.

남한에서는 대구를 떠나 산적이 없고 항상 집 주변을 벗어날 일이 없었던 황 씨. 아이가 학교를 다니고부터 학부모 회의에도 참석을 하고 점차 그 생활영역을 넓혀갑니다. 하지만 다람쥐 쳇바퀴 돌듯 매일 같은 일상입니다. 학부모들을 만나도 아이 공부 문제만 얘기 했고 특별히 다른 얘기꺼리를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새로 시작한 대학 생활은 황 씨를 전혀 다른 사람으로 바꿔버렸습니다.

황은선: 학교생활도 재밌고 주변에 제가 아프고 하면 걱정해 주고 하는 사람도 많고… 사람들 속에서 성장해 가야한다는 사실을 느끼게 되더라고요. 난 나이가 많다 이런 것은 느끼질 못 하고 있습니다. 나이가 많다고 뒤로 물러서고 그런 것은 없습니다. 과제물이 많은데 학생들 앞에서 발표를 하고 해도 한 번도 탈북자니까 자신이 없다 그런 생각은 해본 적 없습니다. 사람들도 잘한다고 하고요.

사회복지란 누구나 행복을 누릴 권리와 존엄성이 있다는 이상과 그 이상을 지향하는 것이며 대학에서 배우는 주제는 남을 돕는 행위 입니다. 즉 어떻게 법 테두리 안에서 남을 도울 수 있는지 배우는 겁니다. 지금껏 주위의 도움만 받던 황 씨가 대학에서 제일 공부하고 싶던 분야입니다.

황은선: 제가 사회복지과를 택한 이유도 받은 것만큼은 아니라도 돌려줄 수 있는 상황이 돼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배워서 줄 수 있는 사람이 돼야하지 않겠는가. 사회복지를 공부해서 탈북자도 계속 느는데 더불어서 받을 줄도 알고 줄 수도 있는 사람이 돼야하지 않겠는가 생각을 해서 작년 6월부터 자원봉사활동도 하고 있습니다.

황 씨가 입학한 대학에는 지금 같은 공부를 하는 탈북자가 5명 있습니다. 처음에는 서먹서먹했지만 먼저 자기소개를 하고 다가서서 마음의 문을 여니 주변 사람들이 모두 황 씨를 좋아하게 됐다고 했습니다. 뒤늦은 나이에 시작한 공부가 어렵게 느껴질 법도 한데 그것은 황 씨에겐 틀린 말 입니다.

황은선: 컴퓨터를 전혀 몰랐습니다. 과제물이 나오니까 숙제를 하면서부터 복지관에 가서 복지사에게 배워서 하는데 어떤 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약 공부가 어렵다면 내가 한국은 어떻게 왔을까? 한국에 올 용기면 내가 뭘 못하겠는가? 과제물이나 어려운 일이 있으면 이런 것이 어렵다면 내가 왜 한국에 왔나? 이 까짓것 왜 내가 못하나 이런 생각을 많이 합니다.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아침 9시부터 1시까지 수요일은 오후 4시까지. 이것이 황 씨의 수업 시간입니다. 예전에는 이런 저럼 마음의 걱정으로 밤잠을 이루지 못 했지만 이제는 학교 과제물을 하고 머리맡에 쌓아둔 책을 보기 위해 잠을 설칩니다. 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건강하고 밝은 모습으로 황 씨는 미래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황은선: 제가 생각하는 행복은 가꿔가는 것, 만들어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지금껏 살면서 행복을 모르고 살았는데 지금은 너무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만족스럽게 이렇게 사는 것이 행복이 아닐까요?

‘제2의 고향’ 오늘은 탈북여성 황은선 씨의 남한 생활에 대해 들어봤습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