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몰라서 팔려 간 거죠

한 탈북여성이 튜브를 이용해 두만강을 건너고 있다.
한 탈북여성이 튜브를 이용해 두만강을 건너고 있다. (AFP PHO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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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2의 고향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남한에 사는 탈북자 성비율을 보면 70 퍼센트가 여성입니다. 그래서 탈북자의 남한정착 이야기도 여성이 주인공인 경우가 많은데요. 오늘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중국으로 인신매매를 당해 마음고생을 한 후에 남한에서 새로운 삶을 사는 탈북여성 정현(가명)씨의 이야기 전해드립니다.

정현: 그 나이 먹도록 집에서 네다 보면 두만강 너머 중국이 보였는데 그렇게 보면서도 물이 키 높이로 있는 줄 알았지 그렇게 얕은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함경북도가 고향인 정현 씨는 중국과 연선지역에 살면서 평범한 직장생활을 합니다. 첫 번째 국경을 넘게 된 것은 1996년이었는데요. 당시는 살기가 너무 힘들어 친구들과 돈을 모아 중국에서 온 물건을 장마당에 가서 팔아 감자, 강냉이도 바꿔오고 하다가 시간나면 출근하는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그날도 정현 씨는 친구들과 통근차를 기다리는데 어떤 남자가 말을 걸어온 겁니다.

정현: 돈을 벌지 않겠는가? 해서 무슨 돈이요 했더니 무역회사인데 거기 가서 관리사업을 해주면 된다고요. 호기심도 많았고 하루 벌어먹고 사는 처지였으니까 넘어갔죠. 우리가 물었죠. 집에 휴가 받고 올수도 있고 돈 벌면 올 수 있는가 하니까 된다는 거죠. 그래서 저하고 친구 둘이 회사에 휴가를 받고 보름만 벌고 오자 했죠. 우리는 평생 두만강 근처에서 살면서도 두만강이 그렇게 얕은 줄 몰랐어요. 물을 건너는데 두만강인줄 모르고

무슨 물을 건너요 하니까 두만강 물이 아니고 우리가 물을 길어 먹는 곳인데 돌아가면 길이 머니까 간다는 거예요. 오직 돈 벌겠다는 생각만 있다 보니 의심을 안 했죠.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자신이 건넜던 강은 두만강이었고 불법 도강을 한 겁니다. 26살 정현 씨는 너무 순진했던 겁니다. 그리고 일주일 중국 땅에 있으면서도 자신이 있는 곳이 북한인 줄 알았다는 겁니다.

기자: 일주일이나 있었는데 어딘지 몰랐습니까?

정현: 몰랐어요. 일주일동안 먹고 자고 먹고 자고 했어요. 일은 왜 안 시키는가? 했더니

좋은 데 보내겠으니 식사나 잘하라고 하면서 너무 잘 주니까 웃고 떠들고 하면서 딴 세상이라고 하면서 지낸 겁니다.

더 기가 막힌 일은 그 이후 벌어지는 데요. 일주일 만에 나타난 낯선 남자는 남편이 되고 이제 정 씨의 또 누군가의 손에 이끌려 점점 고향과는 멀어지게 되는 겁니다. 그런데도 아직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미련을 버리지 못합니다.

정현: 회사 가는 것이 아니라 남자 분들을 하나씩 붙여준 것이 신랑이었거든요. 저희를 팔아버린 거죠. 가다가 중간 중간에 내리게 했는데 왜 그런가? 했더니 잡업반이 틀리다는 거예요. 그래도 믿었어요. 차를 타고 가다가 제일 마지막에 내렸는데 며느리 온다고 친척들이 잔뜩 와 있는 거예요. 조선족이었는데 왜 회사가 아니고 집에 왔는가 하니까 그때서야 너는 나의 아내라고 하는 거예요.

그나마 중국에서라도 결혼해서 잘 살면 좋으련만 6개월 만에 동네주민의 신고로 중국공안한테 체포돼 강제북송을 당합니다. 그 후 다시 재 탈북과 북송을 거쳐 네 번째 탈북해 남한에 갑니다.

정현: 정말 하나원 있을 때는 기대가 많았어요. 그런데 집 배정받고 집에 들어오는 순간 무너졌어요. 집에 들어오니 아무것도 없고 한국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데 어떻게 혼자 살아갈까? 1월이었는데 집도 춥고 앞이 캄캄 했어요. 그러다가 일주일 만에 한국에 먼저 나온 탈북자들이 찾아왔더라고요. 문을 열어주니까 가스불이 있는데 왜 난방도 안 넣고 있는가 하는 거예요. 나는 그것도 몰랐어요. 아이들이 난방도 틀어놓고 그릇도 가져다주고 하는 거예요. 한국은 정말 내가 처음에는 오해도 했지만 서로 이해하면서 사는구나 하고 그때부터 힘을 내서 살아야지 했죠. 그런데 그때 맥을 놔서 그런지 그때부터 몸이 아픈 거예요.

정 씨는 여성과 질환으로 수술을 받고 다리는 발목 관절이 안 좋아서 그리고 목도 디스크로 정상 활동을 못해 수술을 받습니다. 그야말로 정씨의 몸은 움직이는 병원이랄까? 온갖 만성질환은 다 가지고 사는 듯 아프기만 했습니다. 그중에서 제일 골치는 두통입니다. 시도 때도 없이 지끈거리고 거리에 불자동차가 경적을 울리며 지나가도 가슴은 쿵딱 거리면서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내립니다. 이게 다 중국에서 강제북송을 당하면서 생긴 병인데 병명은 신경쇠약증 또는 고문 트라우마. 약으로도 고칠 수 없었던 마음의 병은 중국에서 딸아이와 아들을 데려오면서 좋아집니다.

정현: 아이들이 온 다음부터 몸이 아파도 혼자서 아이 둘을 키우니까 수술을 안 받았어요. 내가 아프면 아이들은 누가 돌보나 해서 정신 차리고 힘들어도 학교도 다니고 있어요. 아들은 작년에 데려왔는데 앞으로 자격증을 따서 돈 벌어서 아이들 공부시키자고 해요. 딸이 많이 도와줘요. 절반은 딸이 살림하는 거나 같아요.

북한에선 교사가 되고 싶었다는 정현 씨. 남한에선 열심히 일해야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고 자유경쟁을 하는 곳이라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신이 알아서 해야 한다며 몸이 좀 아파도 바쁘게 삽니다. 요즘 정현 씨는 사회복지를 공부하면서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야간대학을 다닙니다.

정현: 한국에 오지 않았다면 어떻게 공부를 하겠어요. 북한에 있었으면 하루라도 먹고 살겠다고 정신없이 돌아다니겠는데 늦게나마 한국에 와서 공부하고 하니 좋은 거예요. 가구 공장에 가면 가구 닦는 일이 있어요. 가구도 닦고 관리도 하고요. 또 식당가서 주방일도 하고 저는 봉사활동을 하는데 돈은 없지만 내가 좋아하는 노래 한 곡이라고 장애인이나 노인 분들에게 불러 드리는 것이 좋은 거예요. 이제 내 인생은 다 산 것이고 자식들 생각해서 공부 시키고 살길을 찾아야 하잖아요. 좋은 환경에서 잘해서 살아야죠. 늦었지만 공부도 많이 하고 좋은 직업 찾아 아이들과 함께 잘 살자고 노력합니다.

제2의 고향 오늘은 탈북여성 정현(가명)씨의 이야기를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