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을 바꾼 라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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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2의 고향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저희 RFA 자유아시아 방송에 채널을 고정하고 열심히 방송을 듣고 계신 여러분. 오늘은 또 어떤 이야기가 나올까 많이 기다리셨죠? 이 시간에는 여러분처럼 외부세계에서 전하는 라디오 방송을 10년간 듣고 탈북한 주경배 씨의 이야기 전해드립니다.

주경배: 안녕하십니까? 저는 극동방송 복음의 메아리 “북한인권 이야기”에 참여하고 있는 주경배 입니다.

탈북 방송인 주경배 씨가 남한에서 북한에 방송되는 프로그램에 참여해 하는 인사말입니다.

남한에 가서는 이렇게 정기적으로 대북방송에 참여하고 있는데요. 주 씨는 북한에서 있을 때 저희 RFA 자유아시아방송을 정말 걸탐스럽게 들었다고 합니다. 오늘부터 몇 차례에 나눠서 위험을 감수하면서 북한당국이 금지하는 외부세계 라디오방송을 듣던 경험 그리고 남한에서의 새로운 인생에 대해 전하겠습니다. 함경북도 회령 출신의 주 씨가 RFA 방송을 듣기 시작한 것은 저희 방송이 첫 송출을 할 무렵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기자: 당시 방송을 들었던 것이 몇 년이었나요?

주경배: 1997-8년부터 탈북 했을 2008년까지 쭉 애청자였습니다.

기자: 단파방송이 잘 들리게 하게 하기 위해 무슨 조치를 취했습니까?

주경배: 제가 그때 들을 당시 중국산 신바우라는 카세트식 라디오를 들었는데 중국산 신바우 제품이 특히 라디오가 잘나왔습니다. 라디오를 통제하기 때문에 채널을 고정하는데 보통 때는 단자를 뜯어 놨다가 들을 때면 그 단자를 끼워 듣곤 했죠. 많은 방송이 잡혔는데 그 당시는 KBS 사회교육방송 지금의 한민족방송이 나왔고 미국의 소리 VOA, 극동방송, RFA, SBS 등 여러 방송이 잡혔는데 특히 RFA가 그중 음질이 좋았습니다. 그리고 소식이 생생하기 때문에 많이 들었는데 전파가 잘 잡히지 않고 할 때는 전기선에 안테나를 연결하거나 또는 안테나를 입에 물거나 손에 쥐고 몸을 안테나로 쓰거나 했습니다. 흐린 날 기압이 낮은 날에는 라디오가 잘 들렸습니다. 전파장애가 있어도 RFA가 그중 잘 들렸기 때문에 많이 듣게 됐죠.

기자: 몸도 피곤하고요. 자정 무렵에 북한지역에 방송이 되는데 뭔가 듣고 싶은 얘기가 있었기 때문에 계속 들었을 텐데 어떤 소식이 흥미로웠나요?

주경배: 그때 RFA를 듣던 기억을 되새겨 보면 RFA하고 대담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RFA가 전하는 소식이 가장 생생했습니다. 제가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바깥세상을 보고 싶었고 탈출하려고 결심했기 때문에 가장 관심을 가진 것이 탈북자 문제였습니다. 탈북자들이 어떻게 탈북을 하고 탈북해서 생활을 어떻게 하며 탈북해서 북한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가? 미국에서 또 한국에서 북한을 어떻게 보고 탈북자 정책을 펴고 있는가? 이런 것에 관심을 갖고 충분히 소식을 들었고 또 RFA가 탈북자 문제뿐만 아니라 현재 국제정세, 북한의 정치 경제상황까지 전해줬습니다. 북한봉쇄, 지원 등 전반적으로 관심이 있었는데 가장 관심이 있었던 것은 탈북자 상황에 대해 많이 들었죠.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탈북들이 나가서 쓴 책들 연재물을 들었는데 지금 가장 생각나는 것이 장길수 소년이 쓴 눈물로 그린 무지개는 잊히질 않아요. 그리고 강철환 씨가 쓴 수용소의 노래, 이영국 씨의 나는 김정일의 경호원이었다. 이한영 김정일의 전 처조카가 쓴 대동강 로얄패밀리 이 책을 통해서 실제 내가 살고 있던 북한을 너무나 몰랐는데 북한 수뇌부, 김 씨 가족의 비행이나 가정생활에 대해 알게 돼서 너무 좋았습니다.

기자: 북한에서 태어나 교육받은 내용과 달라서 방송 내용이 거짓이나 비방으로 생각될 수도 있을 텐데 방송에 대한 신뢰는 어떻게 했습니까?

주경배: 북한에서 여러 가지 상황, 교육, 문제들을 다방면으로 섭취를 한다면 천천히 신뢰를 쌓겠는데 그러질 못하고 RFA 방송만 무조건 듣다 보니까 저울질을 못하겠더라고요. 지금 돌아보면 내 경험 과거 때문에 그런지 감각적으로, 본능적으로 그냥 믿어지더라고요. 우리가 착각할 수 있는 것이 북한에서 교육을 받았는데 미국에서 하는 방송을 믿을까? 의심을 하는데 저는 동의 안합니다. 실제 북한 당국이 하는 소릴 몇 십 년을 들었지만 외부소식과 RFA방송에서 하는 말이 맞구나 이런 것을 느꼈습니다. 개인 견해를 섞어 말하고 싶은 것은 RFA는 다른 방송처럼 예술적으로 포장하고 가공하고 보탬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냉정하고 정확히 뉴스를 보도하고 상황을 알린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무의식적으로 거기서 살아오는 과정에 북한 당국이 하는 말이 사실이고 정치가 몸에 와 닿았으면 제가 부정을 했겠는데 아니었기에 RFA가 하는 이야기가 사실이구나 하고 무조건 믿게 되더라고요.

기자: 처음부터 그랬나요? 아니면 시간이 어느 정도 경과 하고 믿게 됐나요?

주경배: 처음 듣는 순간부터 저는 집중이 되더라고요. 그리고 여기 온 사람 말을 듣고 통계자료도 보고 하면 RFA를 많이 듣던데 음질이 괜찮은 것도 있지만 사실 그대로를 말해서 많이 들었던 것 같아요. VOA는 북한당국에 대한 미국의 입장이나 세계의 입장을 분석해서 이야기 하거든요. 그런데 제 지금 기억으로는 RFA는 사실 분석을 피하고 그대로 전하거든요.

기자: 외부방송을 듣다가 발각되면 처벌을 받는 다고 알고 있는데 그런 위험을 감수하면서 방송을 듣게 됐습니까? 방송을 접하게 된 계기가 있었을 텐데요.

주경배: 제가 그 땅에서 태어나 살면서 고난의 행군이라는 그 안에서의 집단행방불명, 자라는 자식들을 보면서 이런 식으로 더는 살 수 없다 이런 막연한 부정 속에서 여기서 벗어나야겠다. 아이들이라도 여기서 공부시킬 수 없다 해서 국경지역으로 옮겨갔는데 그때 탈북한다는 결심이 확고하진 않았습니다. 그냥 벗어나야 한단 생각은 있는데 방법도 몰랐고 아는 데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갈급한 마음에 친구 집에 갔다가 북한에서 봉인하지 않은 라디오를 듣는 것을 보고 저걸 꼭 구입해야겠다고 맘먹고 처음으로 제가 장사해서 번 돈을 가지고 무조건 친구 집에 가서 번 돈을 확 던지고 중고였지만 새것 값을 쳐주고 빼앗다 시피 해서 가져왔죠. 지금 생각하면 갈급한 때문에 벗어나고자 하는 동경으로 라디오에 대한 관심을 갖지 않았겠는가 싶습니다. 그런데 처음 듣는 순간부터 얼마나 마음에 흘러들고 영혼을 자극하는 지 사실 아무생각도 없었습니다. 사실 라디오를 안 들었을 때는 옆에서 충고하는 소리도 들리고 잡히면 정치범수용소 간다. 이런 생각을 했지만 정작 라디오를 들을 때는 그런 두려움이 전혀 생각되지 않았습니다. 물론 조심은 했죠. 하지만 거기에 몰입하니까 두려움이 전혀 없었습니다. 지금 여기 와서 편안해 지니까 이렇게 분석을 하는데 그 갈급함이 그 어떤 배고픔보다 나를 이끈 것 같습니다.

제2의 고향 탈북 방송인 주경배 씨의 이야기를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