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고향] 3시간 자도 너무 행복해요

0:00 / 0:00

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2의 고향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보통 사람은 7시간 정도는 푹 자야 건강하게 생활할 수 있다고들 합니다. 그런데 하루 3시간 정도 자면서 누구보다 즐겁게 생활 하는 탈북여성이 있습니다. 바로 황해도 출신의 이수련(가명) 씨가 그 주인공인데요. 오늘은 3시간을 자도 행복하다는 이수련 씨의 이야기 전해드립니다.

이수련: 제가 40년 동안 살면서 한일 중에 제일 잘한 일이 있으면 남편과 한국 온 것 그리고 두 번째는 대학 간 것. 내가 생각해도 뿌듯해요.

이수련 씨는 남한 가족의 연락을 받고 탈북한 후 45일 만에 남한에 도착했습니다. 국경을 넘어 라오스와 태국 등 제 3국을 경유했지만 차를 타고 이동하는 것 빼고는 기억이 없기 때문에 남한 생활이 외지에서의 첫 정착지가 되는 겁니다. 나이 40살에 새로운 출발입니다.

이수련: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고 또 하면 그 결과가 바로 나오니까 너무 재밌습니다. 공부하면 바로 자격증 나오고 하니까 모든 것이 너무 재밌습니다. 욕심이 많아서 대학 갔다가 간호학원 갔다가 마치면 밤 10시가 됩니다. 그리고는 일하러 가는 겁니다. 새벽 2-3시까지 하고 집에 와서 씻고, 자고 아침에는 학교가고 그렇게 했습니다.

기자: 그럼 몇 시간을 자는 겁니까?

이수련: 많이 자면 4시간 아니면 2시간도 자고 그래도.

기자: 사람이 매일 그렇게 자고 어떻게 살 수 있습니까?

이수련: 제가 북한에 있을 때도 늘 그렇게 자고 또 밤을 세운날도 여기보다 많을 겁니다. 그렇게 벌어먹었습니다. 거기선 그렇게 안하면 굶어죽어요. 노력을 안 하면 가족이 굶어 죽어요. 가족의 생사, 가족의 명줄을 잇기 위해서는 그냥 내가 잠을 포기해야 하는 거예요. 자고 싶은 대로 다 자면 굶어죽어요.

기자: 남한에서도 밤잠을 안자면서 해야 되는 급한 사정이 있습니까?

이수련: 그런 것은 아니 예요. 먹을 것도 충분히 있고 그런데 내가 북에서 40년을 살았잖아요. 그 세월이 너무 너무 허무하게 지나간 거예요. 그래서 그 40년 허무하게 지나간 것을 여기 와서 보충하려고요.

굶지 않기 위해서 또는 누군가의 지시나 강요에 의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하고 싶은 공부를 하고 일을 하면 보수를 받을 수 있어 돈 버는 재미에 자는 시간도 아깝다는 이수련 씨. 남한에 가자마자 2년제 전문대학 사회복지학과에 입학했고 졸업을 하기도 전에 노인요양원에 취직이 됐습니다.

이수련: 혼자서 식사나 화장실을 갈 수 없는 노인이 집에 계시면 그 가족들이 힘들잖아요. 그러니까 이런 어르신을 사회가 맡아서 가족이 하는 일을 요양원에서 해주는 겁니다. 돈을 내야하지만 아마 가족과 함께 생활할 때도 그만한 돈은 들어갈 겁니다.

기자: 매일 일하기가 힘드시겠어요.

이수련: 혼자 하는 일이 아니고 빨래는 세탁기가 하고 뜨거운 물 다 나오고. 어르신들이 사용하는 귀저기도 천으로 빨아 쓰는 것이 아니라 일회용으로 한 번 쓰고 버리잖아요. 하는 것 자체가 편해요. 한국에는 모든 시설이 안 돼 있으면 고용을 못하게 돼 있잖아요.

이수련 씨가 고향인 북한을 떠난 것은 단순히 먹고 살기 힘들어 또는 잘살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이미 북에서는 모든 것을 잃었고 더 이상 그곳에선 버틸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수련: 한 인간이 한 사회 구성원으로 태어났으면 그 사회에서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 있다면 그 사람이 공부하고 싶어 하면 공부하는 것이 차려지고 또 무엇인가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그런 것을 할 수 있는 그런 기회가 마련되고 길이 열리고 하는 것이 사회가 그 인간에게 주는 선물이 아닐까요? 그런데 내가 40년 산 그 사회에서는 난 그런 선물을 받을 대상조차 안 되더라고요. 자식을 낳아서 금이야 옥이야 하고 키우고 싶어도 의술이 안 됐어요. 자식을 둘이 잃었습니다. 하나는 연탄가스 사고로 죽고, 하나는 결핵성 뇌막염으로 죽었어요. 그런데 한국에 와보니까 연탄가스를 마시려고 해도 어디 쓰는 곳이 없어요. 제가 사회복지 공부를 하면서 장애인 시설을 많이 가봤습니다. 가서 그 아이들을 볼 때마다 우리 아이도 이 사회에서 태어났으면 저 아이들만큼 살 수 있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큰아이는 한 돌 20일 만에 둘째는 두 돌 만에 잃었습니다.

이수련: 제가 한국에서 2년 살았는데 이 사회에서 내게 너무 많은 선물을 줬습니다. 40년 북에 살았던 것보다 2년의 결과가 너무 크고 행복합니다. 남편도 여기서 중장비를 꼭 하고 싶다고 했는데 지금 자격증을 따서 지금은 중장비 기사로 일합니다. 일이 힘들지 않는가 하고 묻는데 나로선 내 일생 제일 편한 일이거든요.

기자: 북한에서 40년 살았다고 했는데 꿈은 어떤 것이었나요?

이수련: 저는 정치 일꾼이 되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당일꾼. 그런데 아무리 공부를 열심히 해도 안 되더라고요.

기자: 남한에서의 꿈은 뭡니까?

이수련: 사회복지 공부를 한 것도 지난 40년은 나를 위해 했다면 이제부터라도 나도 누구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이 행복했습니다. 지금은 요양원에서 일하지만 통일이 되면 북한에도 우리 요양원 같은 훌륭한 시설 또 우리 아이들이 잠든 자그마한 야산에 북한 아이들도 행복하게 놀 수 있는 아동놀이 시설이나 놀이터를 잘 해놓고 싶습니다. 북한 아이들도 여기 아이들처럼 배고픔이란 것은 모르게...우유도 골라서 먹고 북한도 빨리 그렇게 됐으면 좋겠어요.

기자: 한국에서도 새벽까지 일했다고 했는데 어떤 일이었나요?

이수련: 편의점 일도 하고 학원 안 가는 날은 식당일 하고요

기자: 그렇게 공부하고 일하고 새벽까지 일하면 가정생활이 없잖아요?

이수련: 그래도 재밌습니다. 남편하고 저하고 한주에 한 번씩 봐요. 남편은 야간에 일하고 저는 주간에 하니까요. 제가 들어오면 남편이 출근하고 그래요. 한주에 한 번씩 남편을 만나도 둘이같이 차 몰고 공원에 데이트도 가고 식당에 가서 둘이 먹고도 오고. 북에서는 아무리 매일 봐도 먹을 것 없고 돈이 없으니까 마주 앉으면 싸움만 해요. 우리는 지금 매일 봐도 싸울 일이 없을 겁니다. 너무 행복해요. 지금은 집에 냉장고에 먹을 것을 사놔도 없어지지도 않아요.

기자: 그래도 한집에 살면서 그렇게 못 본다면 오래 할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이수련: 아무리 오래 걸려도 둘이 전화가 있잖아요. 북한이면 전화가 없으니까 남편이 어디 있는지 길이 없는데 여기선 보고 싶으면 영상통화하고 목소리 듣고 싶으면 언제든 전화하면 되고 집에 들어오면 남편이 나가면서 청소도 해놓고 나가고 난 들어왔다가 나가면서 남편 식사 준비해놓고 나가고 북한에 있을 때는 요리가 할 줄 알면 뭐 합니까 감이 있어야 하죠. 그런데 여긴 아니 예요. 재료는 많은데 무슨 요리를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제2의 고향, 오늘은 남한 생활이 2년차인 탈북여성 이수련(가명) 씨의 이야기를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사이방송 이진서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