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2의 고향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옛말에 우물 안 개구리란 말이 있습니다. 좁은 식견과 답답함을 지적하는 말인데요. 개구리는 어느 날 우물 밖으로 나오면서 이전에 알던 세상과 비교할 수 없는 넓은 또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오늘은 외부에서 전하는 라디오 방송을 10년간 듣고 탈북해 남한에 정착한 주경배 씨의 이야기 마지막 편을 전해드립니다.
함경북도 회령 출신의 주경배 씨는 1997년경부터 그가 탈북한 2008년까지 쭉 라디오 방송을 듣던 RFA 애청자였습니다. 여러분도 알겠지만 북한에서 외부 라디오 방송을 듣는 것은 신변안전을 담보하지 못하는 의험한 일입니다.
주경배: 이런 저런 위기의 순간이 있었지만 그래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동네에 25세대가 있었는데 거기서 저를 통해 전파되거나 자체로 녹음기 카세트식 라디오를 놓고 방송을 들은 세대가 저를 빼고 다섯 세대가 더 들었거든요. 거의 다섯 집에 한집이 외부 방송을 들었다고 봐야죠.
기자: 거의 10년을 들었고 외부정세도 알고 남한에서 탈북자에게 정착금도 준다 이런 것을 알았는데 왜 그리 시간이 오래 걸리셨어요?
주경배: 제가 10년 동안 3번 중국에 건너갔습니다. 라디오를 듣고 탈북을 결심하고 저기가면 길이 있다고 생각하고 넘어갔다가 한국이나 미국에 가는 선을 못 찾아서 실패하고 가족 때문에 준비 시간도 걸리고 해서 4번째 성공했습니다.
그렇게 중국과 동남아를 거쳐 2008년 봄 주 씨는 남한입국에 성공합니다.
기자: 남한은 자본주의 사회로 경쟁해야하고 공짜가 없는 사회입니다. 힘들었던 것은 어떤 겁니까?
주경배: 처음에는 가족 생각에 힘들었습니다. 3년 3회에 걸쳐 가족이 왔는데 가족이 헤어져 있는 시간이 아팠습니다. 배가고파 왔는데 먹어지질 않았습니다. 매일 진수성찬인데 먹질 못했습니다. 그리고 가족이 헤어져 있으니까 정말 밤새 악몽에 시달렸습니다. 지금까지 속아서 개처럼 살아온 것에 대한 분노, 또 지금도 그 땅에서 고통 받고 있을 식구들 그리고 친척, 형제, 이웃들을 생각하면 계속 눈물이 났습니다. 그것이 힘들었습니다.
청취자 여러분은 북한 당국이 알려주는 자본주의 남한에 대해 어떻게 알고 계십니까? 직접 경험을 한 주 씨는 이렇게 말합니다.
주경배: 일단은 여기는 먹는 걱정을 안 합니다. 먹는 문제가 완벽하게 해결됐습니다. 대신 자발적으로 일어나서 더 행복하기 위해 할 일이 정말 많습니다. 여기는 노동이 신사적이고
북한처럼 비 오나, 눈 오나, 바람 부나 들판에 나가 헤매고 하지 않고 자기만 부지런하면 너무 잘 먹고 행복하고 고향 형제를 도울 수 있습니다. 여기 있는 탈북자분들이 벌어서는 자기가 누리지 않고 다 고향 형제를 위해 보냅니다. 자본주의라고 해서 이기주의적이고 자기만 아는 세상이 아니란 것. 여기에 더 인정이 많고 배려가 있고 쌀독에서 인심난다는 말이 이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탈북자는 남한에 가서 지역사회에 정착하기 전 처음 3개월간 사회적응교육시설인 하나원을 통해 자본주의 전반에 대해 듣습니다. 대개 시장경제원리 그리고 법 등에 대해 듣게 되는데요. 기본은 법을 지키면서 열심히 일해 살아야 한다는 것 즉 노력한 만큼 자기 것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아닐까 싶은데요.
주경배: 저는 들어와서 내가 코를 땅에 대는 법부터 배운다고 생각하고 직업을 선택했습니다. 제일 처음 선택한 직업이 직업소개소를 통했는데 아무 일이나 하겠다고 하니까 사장이 데려간 곳이 음식점이었습니다. 북한에서 어디 남자가 음식을 하고 접대를 하고 이런 것을 해봤습니까? 북한에서는 접대라고 하는데 그런 일도 해보고 또 노동건설 현장에서 일당으로 일을 했습니다. 한 달 일하면 북한에서 1년 먹을 식량을 벌고도 남거든요. 그리고 가족을 데려 오기 위해선 돈을 벌어야 하니까 주야로 13시간씩 일했습니다. 원래는 정해진 시간만 일하면 되거든요. 그런데 더 벌기 위해서 일했습니다. 그리고 철문을 만들고 창문을 만드는 샤시 전문 철가공소에 들어가서 일도 배워보고 또 밤에는 다른 일을 하면서 살았습니다.
일단은 잘 먹으니까 덜 힘들고 그리고 더 잘살아야겠다는 생각, 고향에 있는 자식들에게 돈을 보내야 한다는 생각에 힘든 줄 몰랐고 또 짬짬이 대학공부도 하고 상담공부도 했습니다. 그리고 처는 와서 북한에서 그렇게 하고 싶어 하던 봉제를 했는데 남한에서 수준이 낮은 일이라고 해서 음식 하는 것을 배웠습니다. 음식점에 가서 한 달 일하면 북한에서 1년 식량을 벌거든요. 저는 처가 대학생이 되리라고는 생각을 못했는데 최근에는 일하면서 대학공부를 해서 전문대학 졸업증을 자기고 사회봉사 단체에 들어가서 육체노동을 안 하고 일하고 있습니다.
주경배 씨는 남한 생활에서 가장 기뻤던 날 중 하나가 승합차를 구입한 날을 꼽습니다. 북에 있는 가족을 데려 오느라 정신없이 살다가 남한에 입국해 4년 동안 모은 돈으로 차를 구입합니다.
주경배: 북한에서는 정말 자기 달구지도 없이 살았는데 여기 오니까 모두 자동차를 끌고 다니더라고요. 그래서 차가 욕심이 나서 밑돈을 5천 달러 정도를 내니까 할부로 차를 내주더라고요. 우리 식구가 많으니까 작은 차는 안 되겠고 또 욕심이 나는 차가 큰 차여서 지금 11인승짜리 북한에서 농구방이라고 하는 승합차를 샀습니다. 북한에서 그 차가 도당에 한 대가 있을까 하는 그 차를 타고 이달까지 할부를 다 갚고 이제 제 차가 됐습니다.
2008년 남한에서 다시 태어난 주경배 씨. 이제 식구도 늘었답니다.
주경배: 저는 자식이 3명인데 큰딸이 부산 청년하고 결혼을 해서 일주일 전에 손자가 태어나서 할아버지가 됐습니다.
아들, 딸은 모두 대학생이 됐고 주 씨 자신과 아내도 열심히 직장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주 씨는 극동방송에 나가 탈북자가 북한에 전하는 남한생활도 방송을 하고 있는데요. 여러분에게 꼭 이 말을 전하고 싶다고 하네요.
주경배: 북한 형제들에게 꿈을 꾸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꿈이 크면 조각도 크다는 말이 있더라고요. 실제 어느 사람이 이산가족이 되겠다고 탈북하고 싶겠습니까? 국제사회가 돕는다고 많은 사람들이 응원한다고 미국, 영국, 프랑스 다 당신들을 응원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걸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지만 같은 동네사람으로 말하니까 형제로 말하니 믿으라고 권고하고 싶습니다. 꿈을 꾸라고요.
항상 감사한 마음으로 살고 있다는 주경배 씨. 외부세계에서 전하는 라디오 방송이 자신의 삶을 바꾼 만큼 자신도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하면서 살겠다고 합니다.
주경배: 지금 탈북자들은 밤중에 깨어나 무슨 꿈을 꾸었나 하면 고향 꿈을 꾼다고 합니다. 저는 고향 가는 꿈을 꿉니다. 저의 계획은 많은 일을 할 수 있지만 탈북자분들을 돕고 서로 격려하고 고향에 이런 자유를 전하는 것입니다.
제2의 고향 탈북 방송인 주경배 씨의 이야기를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