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2의 고향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남한에 간 탈북자들은 남한이 북한과 서로 다른 체제 때문에 힘들어하기도 하지만 북에 있는 가족과 친구들 생각에 속을 태우기도 합니다. 오늘은 남한 생활이 1년 반이 된다는 탈북여성 최영희(가명) 씨의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최영희: 제가 올 때는 2004년이었습니다. 이미 다 떠나가 버린 뒤에 저는 온 것입니다.
함경북도 출신여성 최영희 씨는 자신이 탈북 했을 당시는 이미 살길을 찾아 고향을 떠난 사람이 많았기 때문에 2000년 초나 또 그 이전, 북한에서 탈북자가 민족의 반역자로 주민들의 손가락질을 받았던 때와는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고 담담히 말합니다.
최영희: 지금도 끊임없이 오고 있지만 그냥 대담하게 오는 사람은 오고 못 오는 사람은 대담성이 없거나 국경연선은 농촌으로 시내 사람은 표가 나기 때문에 엄두를 못내는 겁니다. 나같이 잘 생기지 못한 사람도 시내 사람은 표가 난다고 해서 얼마나 남루한 옷을 입고 국경을 넘었는지 모릅니다.
최 씨는 고향 마을 사람의 열의 아홉은 현 상황을 벗어날 수만 있다면 도망치고 싶어 한다면서 심지어 자신이 힘들면 갈수 있는 사람이라도 살길을 찾아 떠나라고 권하는 지경이라고 했습니다.
최영희: 우선 첫째로 살기가 바쁘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텔레비전을 보면 미개한 나라도 있잖아도 그런데 그런 나라에도 자유는 있잖습니까? 그런 나라는 미개해서 그렇다 해도 우리 북한 사람은 미개하지 않습니다. 원래 영리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정치, 경제, 문화 모든 면에서 목조르기를 당하니까 숨이 막히는 거죠. 게다가 입는 것, 먹는 것 부족하고 언어에 자유도 없고 갈수록 악만 받치고 살기 바쁘고(힘들고)...
탈북해 중국에서 5년을 살다가 남한에 가서 이제 겨우 남쪽 생활이 눈에 익을 정도가 됐다는 최 씨. 그는 북한에서의 살아온 여성으로서의 삶은 외부 사람이 상상도 하기 힘든 그런 가시밭길이라고 했습니다.
최영희: 발전된 나라에 와보니까 쌀독에서 인심난다는 말이 있는데 북한은 여성이 국수 1kg을 얻기 위해 몸까지 받치는 여성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렇게 식량난에 허덕이고 있다는 겁니다.
기자: 남한 생활 1년 반이 됐는데 이제 적응이 됐나요? 어려운 점도 많을 것 같은데 점이 힘드세요?
최영희: 사생결단하고 여러 상처를 가지고 남한까지 왔잖아요. 결국 남이 알아주던 말든 나의 상처를 부끄럽게 여기지 말고 호탕하게 마음먹고 살면 되는데 너무 힘들게 살아와서 생각을 크게 못 한단 말입니다. 두 번째는 북한 여성이 남한에 오기까지 많은 사람이 인신매매 당했던 과거를 갖은 사람이 많기 때문에 꺼내놓고 말을 못한다는 겁니다. 물론 자랑할 것은 없지만 남한 사람과 소통이 안 된다는 겁니다. 그 다음 정착이 어려운 것이 북한에 있는 가족 때문입니다. 소식이 오기를 부모님이 어렵다는 것 또 동생이 국경을 오가다가 빚 문제 때문에 감옥에 가서 이제 못 나오게 됐다 이런 것으로 돈을 방조해 달라고 요청이 오면 그것을 먼저 해결해 주기 위해 모든 신경을 쓰는 겁니다.
남한에 간 탈북자들은 하나같이 돈을 많이 벌겠다들 말합니다. 그리고 제일 먼저 구입하는 것이 손전화기고 두 번째 갖고 싶은 것은 자가용이라는 조사 발표도 있습니다. 대부분은 정말 열심히 일하고 살면서 어려운 형편에도 최 씨가 말하는 것처럼 북한에 있는 가족에게 송금 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적어도 자신은 남한에서 먹는 걱정은 안하고 살지만 북한의 가족은 당장 오늘 먹을 식량이 없다는 절박한 이유 때문인데요.
최영희: 우리들의 상처는 더 말할 것도 없고 왜 그렇게 두고 온 가족이 생각이 나고 또 친구 생각이 나는지... 잘 생기고 통일이란 문제를 놓고 보면 애국 애족의 정신이 높은 사람들은 오지 못했다는 겁니다. 그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픈 겁니다. 오자는 마음은 있는데 국경연선에 접근을 못하고 있습니다. 먹는 것 없고, 정치에 시달리고 힘든 것으로 말하면 정치 감방에 있는 사람들은 더 말할 것도 없고 우리도 결국 그것보다 조금 나은 감방에 있다가 온 것과 같습니다. 사람이 그렇게 살다 죽는다는 것이 얼마나 억울합니까? 다 잘살자고 세상에 태어났는데...
이제야 알게 된 참 자유를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누릴 수 없다는 것을 떠올릴 때마나 최 씨는 슬퍼진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기자와 전화 통화 중에도 북한에 있는 친구들 생각에 울먹였던 최영희 씨. 최 씨를 잠시 진정 시키고 앞으로 남한에서 하고 싶은 일 또 미래의 계획은 무엇인지도 들어봤습니다.
최영희: 노동일은 이것저것 다해봤습니다. 중국에서는 농촌 일까지 해봤으니까요. 생각하기 나름인 것 같습니다. 나보다 나이 많은 분도 왔는데 내가 뭘 못하겠습니까? 나이는 생각하기 나름이라고 봅니다. 다시 차근차근 인정받으면서 다시 밑바닥에서 시작할 겁니다. 노동하면서 내 능력이 뭔지 알아가면서 다시 시작할 겁니다.
제2의 고향 오늘은 탈북여성 최영희 씨의 얘기를 전해드렸습니다. 진행에는 이진서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