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시인 이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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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2의 고향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살면서 세상이 아름답다고 느낄 때가 많습니다. 열심히 일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길게 느리워진 저녁노을을 보면서 또 아이들이 물가에서 해맑은 모습으로 물장구를 치는 모습을 볼 때도 마음의 평화를 느끼죠. 그런데 그런 마음을 시로 전하는 이가 있습니다. 오늘은 한국시인협회를 통해 등단 한 탈북시인 이가연 씨의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이가연: 남자친구도 있고 화장도 하고 쇼핑도 가고 놀러도 가고 다합니다.

얼핏 들어보면 너무도 평범한 남한 젊은이의 말입니다. 하지만 이가연 씨는 황해도 시골마을에서 살다가 2011년 한국으로 갔는데요. 서울에 정착한지 3년이지만 아직은 커피 맛이 익숙하지가 않다고 말하는 이 씨.

이가연: 저는 탈북 동기가 한이 많았던 것 같아요. 첫째는 대학에 가고 싶었는데 가난 때문에 대학에 못 갔던 것. 두 번째는 제 동생이 대학에 입학 허가를 받고도 못 갔어요. 세 번째는 엄마가 갑자기 아팠어요. 그래서 정말 돈이 필요했고 그 돈 때문에 고향을 떠나게 됐어요.

지난 2010년 탈북해서 중국을 거쳐 제3국을 경유해 한국에 도착합니다. 탈북도 위험했지만 열 달이나 걸렸던 긴 여정이 쉽지만은 않았는데요. 비행기에서 내리는 순간 긴장이 풀리면서 감정이 폭발하고 맙니다.

이가연: 정말 울음부터 나오더라고요. 인천공항에 도착했는데 억장이 무너지는 심정이었어요. 우리가 북한 지옥에서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비행기에서 내리려고 하는데 인천공항이 너무 환한 거예요. 깜짝 놀랐어요. 이렇게 전기를 낭비하는구나 했더니 국정원 선생님이 한국은 사람인권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밤에 가다 사고가 나지 않게 보호해 주는 거라고 하시더라고요. 인천공항에 내리자마자 빛에서 꽃이 피고 새가 난다는 글이 떠오르면서 나도 빛이 있어야 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감동을 했어요.

현재 국제팬클럽에서 탈북시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가연 씨는 감성이 풍부해서인지 아니면 세상을 아름답게 볼 수 있는 눈을 가져서인지 기자와 전화통화를 하는 중에도 고맙다, 감사하다 이런 단어를 많이 썼는데요. 저한테 그런 것이 아니라 오늘의 자신이 있게 도움을 준 주변의 모든 사람들에게 마음을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가연: 저는 혼자 왔잖아요. 그래서 어떻게 살아갈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왜냐하면 하나원에서는 밥 먹을 걱정을 안했는데 나와서는 앞이 캄캄했어요. 그런데 감사 했던 것이 내가 밥 먹을 수 있어서 감사했고 내가 편히 잘 수 있는 곳이 있어 감사했어요. 북한에서는 쌀밥 한번 실컷 먹어 보는 것이 소원이었어요. 그리고 비가 새는 그런 초가집에서 살았는데 지금은 아파트에서 살고 있거든요. 북한에서는 더운 물로 씻는 것은 상상할 수가 없었는데 더운물로 샤워할 수 있는 것이 행복했고 북한에서는 시키는 일만 하면 됐었는데 남쪽에 가서는 자신이 선택하고 노력해 성취하는 기쁨이 있다고 말하는 이 씨. 그는 아울러 현재 자신이 누리는 행복을 함께 나눌 수 없어 고향에 있는 가족이나 친구들에 대한 미안함을 느낀다고 했습니다.

기자: 방송을 듣는 사람들은 시골에 살면서 당 간부 자식도 아닌데 한국에서 집도 주고 대학도 보내주는가 하는 의문을 가질 것 같은데요.

이가연: 일단 한민족이라는 틀을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아요. 그리고 여기는 사람을 먼저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회다보니까 우리를 품어주는 것 같습니다. 내 친구들이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했으니까 믿기 힘들겠지만 한국은 인권을 중시한다는 말을 해주고 싶어요.

북한에서 고등중학교를 졸업하고 이가연 씨는 남쪽에 가서 대학생이 됩니다. 1년 정도의 준비기간이 걸렸는데요.

이가연: 봉사를 하면서 남한 이야기를 만들었어요. 한국 정부에서는 탈북자에게 공부할 수 있도록 기회를 줘요. 특별전형이라는 기회인데 탈북자들이 한 1천 명 서울 수도권 명문 대학에서 공부를 하고 있어요. 70 퍼센트는 수도권에서 공부하고 있는데 북한으로 하면 평양에서 공부하고 있는 것과 같거든요. 다른 친구들은 학원을 다니거나 하는데 저는 북한에서 시골에서 살면서 공부를 제대로 못했기 때문에 경쟁력이 떨어져서 다른 방법을 찾았고 봉사를 하면서 내가 느낀 점과 꿈을 가졌다는 것을 자기 소개서에 써서 원하는 대학에 진학하게 됐습니다.

기자: 어떤 봉사를 하셨어요?

이가연: 북한식으로 봉사를 설명하면 나눔이라고 하면 될 텐데 어려운 장애인, 노약자를 도와주는 거예요. 저는 돈은 없으니까 육체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장애인 봉사를 했고요.

오는 9월에는 한국에 정착하면서 경험한 이야기들과 북한의 인권에 대한 글 80편을 묶어서 시집을 출판한다는 계획도 가지고 있습니다. 이가연 씨의 시한 편 들어볼까요?

이가연: 초등학교 때 친구가 갑자기 없어졌어요. 저녁때까지 같이 공부를 했는데 다음날 없어진 거예요. 지금 생각해 보면 정치범 수용소로 가지 않았을까 생각하는데요. 그 친구를 생각하면서 썼던 글이에요.

딱친구

서해바다 수평선 너머 저 멀리 보이는 벌거벗은 산 쓰러져 가는 울타리
푸른 바다 바라보며 맑은 하늘 바라보며 초등학교 명숙이를 떠올린다.

고등학교 길가에 외줄로 서 있는 감나무에서 붉은 감을 파먹으며 바구니에 웃음을 흘리던 명숙이...

지금쯤 감나무를 떠나 제 주어진 보금자리를 만들었을까 그때 그 웃음이 오늘 나를 환하게 해주는데

감꽃 같은 아이 몇 명이나 낳았을까?

남한정착생활에 큰 어려움 없이 자신의 길을 개척해가고 있는 이가연 씨는 대학에서도 인정받은 우등생입니다.

탈북시인 이가연 씨.
탈북시인 이가연 씨.

이가연: 저는 성실함 그것 하나로 버티거든요. 북한에서는 말 잘하는 사람이 발전도 빨리 하는데 한국에서는 말은 잘 못 해도 성실하고 노력하면 따라가는 것 같아요.

기자: 몇 시간이나 자면서 어떻게 공부했습니까?

이가연: 공부하는 비결은 일단 책을 많이 보고 둘째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서 그분들이 어떻게 공부하는지 전략을 세우고 공부 방법은 학교에서 배운 것을 집에 와서 다시 보고 12시까지 공부하고 잤다가 새벽 4시에 일어나서 다시 공부를 시작합니다. 하루 평균 4-5시간 자고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따라 가는대는 무리 없이 하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세상에서 모든 사람이 행복하기를 바라는 탈북시인 이가연 씨. 그는 오늘도 고향마을 사람들을 위해 조용히 마음의 불을 밝히고 있습니다.

이가연: 제가 하고 있는 공부를 마치고 북한주민과 내 고향 이웃과 나눔 하는 것이 꿈이고 목표입니다.

제2의 고향 오늘은 탈북시인 이가연 씨의 이야기를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