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2의 고향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산다는 것이 참 힘들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북한주민들은 당장 먹을 것이 부족해서, 남한에서는 함께 일하는 직장 동료나 같이 공부하는 친구 사이에 문제가 있어 속을 태우게 될 때가 누구나 한 번쯤은 있을 겁니다. 모든 것이 사람 맘먹기에 달렸다는 말이 있는데요. 항상 긍정적으로 마음의 문을 열고 세상을 보면 사는 것이 한결 수월해 진다고 말하는 이가 있는데요. 오늘은 남한생활 4년차 되는 탈북 대학생 조명수(가명) 씨의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조명수: 탈북 동기는 대부분의 탈북자들처럼 생활이 어려워 한 것이고 중국에서 살다가
한국에 왔습니다.
함경북도 청진이 고향인 조명수 씨는 이전 두 차례의 탈북에서는 중국에서 강제북송을
당했고 세 번째 탈북에 성공해 중국생활을 거쳐 자신이 원하는 남한에 간 경우입니다.
조명수: 제가 중국에서 3년 동안 있으면서 한국 사장님들과 같이 일을 많이 했습니다. 그러면서 한국 생활에 대해 많이 듣게 됐습니다. 내가 탈북자란 것을 알고 사장님들이 많은 도움을 줬습니다. 그래서 남한 생활 적응은 남들보다는 쉬었다고 볼 수 있죠. 제 또래 사람과 비교한다면 저는 북한에 있을 때 배웠던 것이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 말이 있잖아요. 쓰는 말은 같아도 쓰임새가 틀렸고 제가 북방 출신이다 보니까 조선족인가 하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중국에서 3년을 불안에 떨며 생활했던 것이 신분회복 문제입니다. 그래서 다시 위험한
제 3국을 통해 한국 땅으로 향하게 됩니다.
조명수: 저는 중국에 있을 때 이미 인터넷을 통해 남한을 접했고 북한에서도 학교에서 공부를 괜찮게 했기 때문에 실정을 알았어요. 중국에 있는 탈북자들은 이미 한국에 가면 집도 주고 대학공부도 시켜준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저도 많은 기대를 하고 왔죠. 한국에 와서는 대학공부를 하는 것에 많은 고민을 했어요. 10년이나 나이 어린 친구들과 함께 하면서 따라갈 수 있을까 그런 생각도 했고요. 회사 생활을 1년 반 정도 하면서 자격증도 하나
없고 아무 배경도 없는 상태로 이렇게 살다가는 막노동밖에는 할 것이 없겠구나, 이런 생각이 들어 대학공부를 하게 됐습니다.
들어서 아는 것과 직접 부딪혀보고 알게 되는 생활은 다릅니다. 신분 문제만 해결이 되면 당당하게 뭐든 잘할 수 있고 돈도 많이 벌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남한에는 자기보다 더 똑똑하고 능력 있는 사람이 차고 넘친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냥 젊을 때 막노동으로 하루하루 시간을 보낼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 순간 진짜 남한생활이 시작된 겁니다.
조명수: 처음 했던 일이 친구 소개로 보험설계사 일을 했습니다. 돈을 크게 벌 수 있다는 말을 듣고 들어갔는데 막상 일을 해보니 욕심이 과했던 거죠. 보험은 인맥관계가 좋아야
하는데 저는 그런게 없잖아요. 실패했다고 생각하고 3개월 만에 퇴사했습니다. 그리고 좀 놀다가 건설업체에 들어갔습니다. 건설업체 사무실 일을 하다가 느낀 것이 중국에서 한국을
어느 정도 알고 왔다고는 해도 아직 배울 것이 많다는 것을 느꼈고 그런 것을 깨닫는
과정이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북한에서 고등중학교를 졸업하고 일반 노동자 생활을 했지만 그가 2009년 남한 생활을
시작했을 때 소위 말해 그의 과거를 말해 줄 수 있는 문건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남한 사람들은 운전면허는 기본이고 젊은이라면 컴퓨터를 다룰 줄 아는 자격증 하나 정도는 다들
가지고 있는데 조명수 씨는 아무것도 없었던 겁니다. 객관적으로 자신의 능력을 증명해 줄 수 있는 자격증 그리고 학력 인정서를 취득하기 위해 대학에 진학했고 지금은 한국 외국어대학 2학년 1학기를 마친 상태입니다. 늦게 시작한 공부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닌데요.
조명수: 일단 대학생활에 등록금은 국가 지원이라 상당히 고맙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혼자 와서 공부하는데 재정지원을 해주는 조력자가 없습니다. 물론 공부를 좀 잘하면 탈북자를
지원하는 단체가 있는데 성적이 좋으면 해주고 또 그 사람의 목표나 계획을 들어보고 해주는 곳도 있고요. 그런 단체 도움을 받고 주말에는 가게에서 일하면서 경제적 부족한 부분을 충당하고 있습니다. 어렵다고 보는 것은 한국에서 고등중학교 다 다닌 것이 아니고 저는 북한에서 고등중학교를 다 졸업하고 왔지만 남한의 어린 학생들과 비교해 볼 때 배움의 깊이가 낮기 때문에 어고요.
조명수 씨에게 대학은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단순히 깊이 있는 학문을 배우고 연구하는 곳 이상으로 대학이란 울타리 안에서 다양한 부류의 학생을 접하면서 날마다 새로운 세상을 만나는 겁니다.
조명수: 즐거운 것은 북한에서부터 고등중학교를 마치고 대학공부를 하고 싶었는데 남한
에서 대학진학해서 꿈을 이뤄간다는 것이 좋고요. 두 번째는 어린 친구들과 공부하면서
친구가 되면서 어울리면서 많이 서로 알아가고 그들도 내가 탈북자란 것을 알고 많이 도와주려고 하고 그런 것에서 인간적인 정을 많이 느끼게 됩니다.
30대 중반인 조 씨는 대학 졸업 후에 일반사원으로 취직하기 보다는 공무원이 되기 위해 따로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입니다. 단독으로 탈북해 남한에는 부양가족도 없기 때문에
비교적 자유로운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같은 방학 때는 피곤하면 낮잠도 푹자고 대신 저녁 시간에는 공무원 수험서를 붙잡고 씨름 합니다. 해보고서 안 되면 후회가 없지만 해보지도 않고 미리 겁낼 이유는 없으니까요. 항상 웃는 모습을 하고 있어서 걱정이 없는 사람처럼 보이기까지 한데요. 원래 그런 성격의 소유자는 아니었답니다.
조명수: 저의 경우는 인복이 있어서인지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서 소심한 성격이었는데 긍정적으로 많이 변했습니다. 남한과 북한 생활을 비교해봤을 때 저는 노동자의 자식이어서 뭔가 할 수 있다는 깨달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한국에 와 보니까 내가 이 땅에서 뭔가 할 수 있다는 꿈을 꿀 수 있다는 겁니다. 뭔가 이루기 위해 그 과정도 볼 수 있게 된 것이 큰 변화입니다.
제2의 고향, 오늘은 탈북 대학생 조명수(가명) 씨의 이야기를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