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2의 고향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남한에는 인생은 60세부터란 말이 있습니다. 보통 정년퇴직으로 일터에서는 물러나지만
젊은 시절 바빠서 미처 하지 못한 일들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나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 표현은 남한에 간 북한 출신에게도 해당됩니다. 오늘은 저희 방송에서 매주 화요일 건강하게 삽시다 시간에 도움 말씀을 주고 계신 동의사 강유(70) 선생님의 남한생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남한 생활이 9년째가 되는 강유 씨는 지금 어느 생일 때 보다 큰 잔치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딸들의 성화에 못 이겨서 하는 잔치라고는 하지만 흐뭇해하는 속마음을
감추지 못합니다.
강유: 한국에선 뷔페라고 3만원 내면 얼마든 먹는 식당이 있는데 원래 정원 50명을 신청
했는데 아마 더 많이 올 것 같습니다.
함경남도 보건간부학교를 나와 동의사가 된 후 홍원에서 진료소장을 하다가 고난의 행군시절 탈북을 해 10년 세월이 훌쩍 넘었습니다.
강유: 어떤 분들은 눈물을 글썽이면서 북한에서 얼마나 고생이 많았는가 하면서 남한에서 젊게 산다면서 장하다고들 말합니다. 저도 이제 나이 70살이지만 한 50대 혈기로 일도 하고 사업도 벌이고 하는데 돌아보니까 잠깐 세월인 듯합니다. 북한을 떠난 지 벌써 10년이 지났는데 눈을 감으면 북에 있는 동료, 친척, 동생들 모습이 눈 감으면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기자: 이제 70살이신데 북한에 계셨더라면 어땠을까요?
강유: 글쎄 제 생각에 북한에 있었다면 이렇게 못 살 것 같습니다. 우리 선배들 퇴직해서 산으로 풀 뜯으러 다니고 하는 것 생각해보면 내가 북에 있었다면 70살에 지금처럼 포기를 모르고 새롭게 도전하면서 이렇게 왕성하게 살 수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기자: 방송을 듣는 사람들은 왜 진료소장을 하던 사람이 탈북을 했을까? 생각하실 텐데요. 당시 남한 안기부 간첩 누명을 썼기 때문에 탈북 하셨다고 했잖습니까?
강유: 보위 지도원들과도 다 가깝게 지냈고 서로 먹을 것이 있으면 나눠 먹고 했었습니다. 내가 안기부 간첩으로 몰릴 때는 식량을 3년씩이나 주지 않고 가장 어려웠을 때였기 때문에 여론을 수습하기 위해 누군가 본보기를 삼아 사형 시킨다던가 주민의 동요를 누르기 위한 그런 보위부 책동이 아니었겠는가 생각됩니다.
잠시 강유 씨의 탈북 배경을 설명하면 중국에 있는 친척에게 중국 돈 3만 위안을 방조
받아 북한 돈으로 바꾸니 8만원이었는데 그 돈으로 식량을 구입하고 가자미 잡는 돛배
6척을 구입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이것이 문제가 됩니다. 난데없이 보위부에서 들이닥쳐
안기부 간첩자금을 받아 생활했다며 감옥에 넣은 겁니다. 고문으로 인한 병보석으로 나와 단신으로 탈북 해 중국에서 기회를 엿보다 나중에 탈북한 아내와 세 딸을 데리고 2004년 초 남한의 부산에 새로운 보금자리를 틉니다. 강유 씨도 처음에는 자본주의 사회생활이 쉽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강유: 남한에 와서 제일 힘들었던 것은 직업이 해결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나이가 있으니까 어르신 대접해서 국가에서 주는 보조금 받으면서 쉬라고 하는데 대한민국 발전에 벽돌 한 장 쌓은 적도 없고 발전에 도움을 준 것이 없는데 어떻게 도움만 받는가 하고 그것이 안타까웠습니다. 나도 세금을 내면서 대한민국 국민으로 당당하게 살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는데 그것이 잘 안돼서 고심했습니다. 전혀 이질감이란 것은 없었습니다. 그냥 한마을에서 한마을로 이사 온 것, 윗동네에서 아랫동네로 이사 온 것 같았지 전혀 눈치 보이고 이런 것은 없더라고요.
북한에서 하던 동의사 일을 남한에서도 계속 하고 싶었지만 그러자면 남한에서 한의사 자격시험을 다시 봐야 했습니다. 10년만 젊었어도 하는 마음뿐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져 주저앉지 않고 자신이 제일 잘할 수 있는 일을 택한 것이 동네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무료 진료입니다.
2007년 '민중의술 살리기 국민운동 부산·경남연합' 회장으로 일주일에 5일간 오전 9시부터 낮 12시까지 의료자원봉사를 하면서 오미자를 주원료로 하는 새로운 음료수도 개발했습니다.
강유: 오미자는 비타민도 많고 자연장수 식품에 속합니다. 제가 2007년에 특허 신청을 해서 특허를 받았습니다. 이제 앞으로 30년은 더 살자 하고 계획을 짰습니다. 사회기업을 하면 국가가 10명 직원에 대한 지원을 해줍니다. 직업을 구하기 힘든 50대, 60대 저소득 자들에게 직업을 창출해 줘서 수입을 보장해 주는 일을 하는 거죠. 탈북자들 고용해서 정착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시작했습니다. 지금 법인으로 수입 창출할 수 있는 승인을 받았습니다. 법인명은 탈북의사의 사랑 봉사회입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이제는 어엿한 사장님.
강유: 저는 계획이 많습니다. 올해만도 해도 40년 임상경험을 토대로 강의도 하고 자원
봉사도 할 것이고 한편으로는 지금 추진하는 사회적 기업을 잘 살려서 남한에 정착한
탈북자로 당당하게 살고자 합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조명철 국회의원도 탈북자 아닙니까? 안보에 대해서도 내가 보고 느낀 것을 후배들에게 우리나라 평화통일을 위해 뭘 해야겠는가에 대한 제 소견도 얘기 하면서 남은 인생을 후회 없이 다른 사람에게 부담 안주고 또 앞으로 통일됐을 때 나도 당당하게 뭔가 했다는 자부심을 가질 수 있게 살려고 결심하고 있습니다.
북한 출신으로 남한에 사는 강유 씨가 말하는 행복은 이런 것입니다.
강유: 손자, 손녀 둘은 지금 어린이 집에 다니는데 얼마나 예쁘게 잘 자라는지 모릅니다.
가정에 아픈 사람 없으니까 이것이 첫째 행복이고 딸들도 직장에서 잘해서 남들에게 관심과
사랑받는 존재로 살아가는 것 나도 헛된 인생이 아니라 남을 위해서 돕고, 받치고, 드리는 인생이 행복한 인생이라고 생각합니다.
제2의 고향 오늘은 저희 방송에서 건강하게 삽시다에 출연하는 동의사 강유 선생님의
이야기를 전해 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