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고향] 나누는 행복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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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

: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2의 고향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사람들은 제각기 나름의 행복을 추구하며 삽니다. 그 행복의 우선순위가 돈이 될 수도 있고 건강이 될 수도 있고 사람마다 천차만별입니다. 올해 남한 생활 8년차가 되는 이경미(가명) 씨는 자기보다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을 돕는 것에서 보람과 행복을 느낀다고 말합니다. 탈북자 상담사로 일하며 남한에 입국한 북한주민의 정착을 돕는 이 씨의 남한생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이경미: 4년제 대학을 다니면서 사회복지사가 됐고 심리상담사 2급 자격증 땄고 가정폭력 상담사, 성폭력상담사.

함경북도 출신으로 나이가 40대인 이경미 씨는 남한에 가서 취득한 자격증만 10개가 된다고 합니다. 그가 가지고 있는 자격증은 전부 사회복지와 관련된 것입니다.

이경미: 하나씩 따는 과정은 1년 씩 걸렸는데 하나만 따는 것이 아니라 연관이 되는 과목들이여서 대학 4년 다니면서 여가 시간에 공부를 했기 때문에 10개의 취득이 가능했습니다.

이 씨가 남한의 대학에서 공부한 사회복지분야는 어렵고 소외된 계층 사람들이 최소한의 인간적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돕는 일을 체계적으로 배우는 것입니다. 현재 남한의 사회복지관에서 탈북자 상담사로 일하는 이 씨는 2000년 북한에 있을 때만 해도 듣지도 보지도 못한 생소한 일을 하고 있지만 너무 행복함을 느낀다며 상담사 직업을 택하게 된 동기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경미: 처음 한국에 왔을 때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 굉장히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주위에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나서 도움을 받으면서 정착하고 공부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자연스레 탈북자 정착에도 관심을 가지게 됐습니다. 전 받은 고마움을 갚고 싶었습니다. 북한에는 공짜가 없거든요. 봉사란 말이 없단 말이죠. 그런데 저를 도와준 분들이 자기에게 갚을 필요 없다고 더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면 된다고 해서 감동했었죠.

사람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그 해결책을 찾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옆에서 보면 별것 아닌 것 같아도 당사자는 세상이 끝난 듯 심각하게 받아들일 수도 있습니다. 어려움을 극복한 선배 탈북자가 보기에 북한에서 남한으로 간 사람들은 모두 비슷한 문제를 갖고 있다는 점도 상담에서 발견했습니다.

이경미: 안타까운 것이 있다면 북한 정권이 사람들을 수동적 인간으로 만들어 놨다는 겁니다. 한국 사회는 스스로 선택하고 자기 권리를 찾고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한 인간으로 모든 권리를 누리고 있는데 북한주민은 선택하는 것을 습관이 안됐기 때문에 어려워합니다. 북한에서는 시켜서 하고 한 번도 자기 스스로 뭔가를 선택한 적이 없기 때문에 선택하는 것을 낯설고 힘들어 합니다. 북한이란 사회가 이 사람들을 로봇으로 만들었구나 하는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우리 옛말에도 '스님이 자기 머리 못 깎는 다‘는 말이 있습니다. 때로는 자기도 하지 못하는 일을 다른 사람에게 권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보통 희망을 주기 위해서인데요. 이 씨가 들려주는 이 말은 좌절하고 괴로워하는 이에게 가장 필요한 말이 아닐까 합니다.

이경미: 일단 할 수 있다. 그분들은 어떻게 하나, 나는 잘하는 것이 하나도 없다. 북한에서 하던 것을 하나도 쓸 수 없다는 말을 합니다. 그럼 저는 버릴 것이 하나도 없다. 아픈 과거마저 여기서 오히려 힘이 될 수 있고 이미 가지고 있는 재능 또는 북한의 직업과 연관해 할 수 있는 일이 있는지 찾아보자. 내가 잘할 수 있는 것 하고 싶은 것부터 찾으면서 자기 자신을 발견해 가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남은 인생을 인간답게 살아보자.

탈북자들의 어려운 사정을 듣고 현재 자신이 처한 상황을 극복할 수 있도록 안내해 주는 일을 바로 이경미 씨가 하고 있습니다. 이 씨는 처음 남한생활을 시작했을 당시엔 열쇠 만드는 회사에서 일했지만 곧 남은 인생을 더 값지게 살기 위해 대학에 진학했습니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기에 자신이 정한 꿈을 이루기 위해 먼저 자유시민대학 즉 탈북자 정착을 돕기 위해 민간에서 인성교육을 하는 곳입니다. 이곳에서 할 수 있다는 자신감부터 만들게 됩니다.

이경미: 일단 공부하기 위해서 맘먹고 문서작성을 할 수 있는 컴퓨터부터 공부를 시작했고 자유시민대학을 다녔습니다. 거기서 신앙을 키웠습니다. 그러면서 사랑을 많이 받았고 남을 돕는 다는 것이 내 인생을 얼마나 풍요롭게 하는가도 배우게 됐고요.

남한에 살고 있는 탈북자는 누구나 사연이 있겠지만 이경미 씨도 한 번의 강제북송을 경험하면서 더는 북한에서 살 수 없어 고향을 떠나게 됐다고 고백했습니다. 현재 남한에서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는 이 씨의 탈북동기 잠시 들어보죠.

이경미: 간단히 소개 하자면 당에서 얘기하는 고난의 행군을 견디면서 세상이 좋아질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점점 먹고 살기가 힘들었습니다. 저는 먹고 살기 위해 다양한 일을 했었는데 결국 힘 있고 권력 있는 사람들에게 모두 빼앗기고 그래서 계속 힘들고 가족이 힘들어 하는 것을 보면서 그냥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 수 있는 세상이 그리웠습니다. 강하나 건너 중국만 봐도 굉장히 잘사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결정적으로 남한으로 가자고 결심을 했던 것은 일단 중국엘 갔는데 강제북송을 당했습니다. 정말 살길을 찾아 떠났던 사람들인데 다시 돌아갔을 때는 사람 취급을 못 받았죠.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아무런 연고도 없이 새로운 체제에 적응해 산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겁니다. 이 씨 역시 힘든 시간을 견디고 나니 이제 사람답게 사는 것이 뭔지 알게 됐다고 했습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일한만큼 경제적 보상을 받고 자유를 누리면서 사는 지금이 이 씨는 소중하고 감사하다고 했습니다.

시간이 허락되면 떠나는 해외여행은 이경미 씨가 누리는 또 하나의 행복입니다. 이미 아프리카 케냐도 갔었고 네팔은 단체 지원으로 그리고 이스라엘과 이집트, 요르단 등 세계문화유산이 있는 곳은 대학시절 역사문화 탐방 차 갔습니다. 특히 한반도와 같은 분단국가로 이미 통일을 이룬 도이칠란트는 두 번이나 방문했습니다. 이경미 이렇게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시간을 더 값지게 만들기 위해 오늘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경미: 저는 지금 전세를 살고 있는데 좀 더 큰집을 분양 받을 준비를 하고 있고 운전은 개인적으로 공포증이 있어 못하고 있는데 내년에는 배워서 차도 사려고합니다. 또 지금까지는 혼자 해외여행을 했는데 내년에는 가족과 함께 호주나 하와이 등 경치가 좋은 섬으로 가려고 계획하고 있습니다.

제2의 고향, 오늘은 남한생활 8년이 되는 탈북여성 이경미 씨의 이야기를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사이방송 이진서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