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대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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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2의 고향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 하다. 또는 60대 청춘이란 말을 어렵지 않게 듣습니다. 요즘은 평균 수명이 늘어서 정년퇴직을 하고는 집에서 쉬는 것이 아니라 다른 직업을 찾아 일하는 사람이 늘고 있습니다. 오늘은 간호조무사로 요양원에서 일하며 야간대학을 다니는 50대 탈북여성 이순희(가명)씨의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함경북도 청진 출신으로 북한에서 당원이었던 이 씨는 남한에 가서 오후 5시 반 요양원 근무가 끝나며 학교로 향합니다. 사회복지학을 공부하는 대학생이기 때문이죠.

이순희: 남한에서도 한 번 대학공부를 해보고 싶은 그런 맘이 든 겁니다. 그런데 솔직히 50살이 넘은 나이에 대학공부를 할 수 있을까 그런 걱정도 많았습니다.

지난 2006년 탈북해 중국에서의 생활을 거쳐 남한에 간 이 씨는 직업훈련 학원에서 간호 조무사 공부를 해서 병원에 일자리를 구했습니다. 하지만 학원이 아닌 대학을 접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 직장도 옮기게 됩니다.

이순희: 병원에서 간호조무사로 일할 때는 3교대 일을 하기 때문에 야간대학을 가는 것이 불가능했어요. 밤 근무를 하면 학교를 갈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고민하다가 야간일을 안하는 요양원으로 근무지를 바꾼 겁니다. 여기는 낮일만 하기 때문에 밤에 얼마든지 학교를 다닐 수 있었어요. 처음에는 공부를 할 수 있을까 걱정을 했지만 남한에도 낮에 일하고 밤에 공부하는 사람이 있는데 나도 남한 사람이 됐으면 그들처럼 도전 해보자 결심하고 입학하게 됐죠.

야간대학을 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낮에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일하면서 더 나은 직장으로 옮기기 위해 또는 일하는 곳에서 더 높은 학력을 요구하기 때문에 일이 끝나고 밤에 대학에 가서 강의를 듣게 되는데요. 이 씨는 이런 제도가 낯설지 않았답니다.

이순희: 비슷한 감이 있습니다. 북한에도 야간대학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김책제철연합기업소 야간대학인데 말하자면 자기가 일하는 공장에서 인재를 키우는 겁니다.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를 공부시켜 기술자로 키우는 양성반입니다. 남한도 비슷하더라고요 사회복지 기관에서 일하는 사람이 자기 능력개발을 위해 배우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맥락이 통하더라고요.

이 씨가 낮에 하는 일은 요양원에서 노인들의 건강을 돌보는 겁니다. 출근해 매일 아침 요양원에 있는 분들 체온과 혈압을 제는 일부터 시작해 항시 복용하는 약들을 챙겨드리고 위급환자가 생기면 병원에 함께 가는 일까지 이 씨는 8시간 근무가 바쁘게 돌아갑니다. 학교에 가면 긴장이 풀려 애를 먹기도 하는데요.

이순희: 처음에는 낮에 일하고 밤에 공부하자니 졸리는 거예요. 눈꺼풀이 내려앉고요. 이러다가는 안 되겠다 졸았다가는 오늘 배운 강의를 다 소화 못 하겠다. 이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저녁 6시 반에 수업을 하면 그 전에 밥을 먹고 수업에 참가 하니까 식곤증이 오더라고요. 그래서 식사를 안 하고 참가를 하니 안 졸리더라고요.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시간은 누구나에게 똑같은 24시간입니다. 그중 절반을 직장에서 일하고 일이 끝나면 학교를 가기 때문에 줄여야 하는 것은 수면시간 분이랍니다.

이순희: 수업시간에 배운 것을 잊어버릴까봐 집에 오면 바로 컴퓨터 앞에 앉는 겁니다. 하루 지나면 일하는 통해 배운 것을 잊어먹는 겁니다. 그날 과제는 무조건 그날 한다는 생각으로 집에 오면 자정인데 그래도 컴퓨터를 켜고 작업에 몰두하면 잠이 달아나더라고요. 그래서 다음날 완성하면 새벽 2시가 되는 거예요. 몸은 피곤하지만 마음은 편했어요. 그때 뿌듯함이란 것이 굉장합니다. 남한 젊은 대학생들과 발맞춰나가는 구나 이런 생각에 더 열성으로 공부를 하게 됐어요.

50살에 남한에 가서 이제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가 됐는데 아직 학생입니다. 올해만 꽉 채우면 4학년 졸업을 합니다. 남한에서 사회복지학으로 학사 학위를 받는 겁니다. 이 말은 그동안 흘린 땀이 결실을 맺는 다는 거죠.

이순희: 첫 시간 사회복지론 강의인데 “쇼셜위커는 클라이언트를 대하는 마인드를 잘 가져야 한다” 이러는 겁니다. 단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는 외래어였어요. 한 문장도 이해를 못하는데 내가 과연 공부할 수 있을까 떨었어요. 그런데 그날 수업 끝나고 교수님이

앞으로 강의와 관련 개선점이 있다면 의견을 내라는 겁니다. 그때 제가 밝혔습니다. 내가 이북에서 와서 외래어를 잘 모르니 배려해달라고 했습니다. 그 다음 시간부터는 교수님이 나를 배려해서 설명을 했습니다. 그다음부터는 감사한 마음으로 더 공부를 하게 되더라고요.

첫날 수업에서 자신이 탈북자인 것을 밝힌 것인지 아니면 타 지역에서 이사 온 남한 사람인양 자신의 정체를 숨길 것인지 고민했다는 이 씨 그는 결국 당당히 북한 출신임을 밝히고 학생들에게 도움을 청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학생들로부터 용감한 여성이라고 더 큰 환영을 받았다고 하는데요. 1-2학년 때는 자신과 비슷한 나이 또래도 더러 있었지만 3-4학년 심화과정으로 올라오면서 제일 연장자가 됐습니다.

이순희: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제의 결심과 각오가 옳았고 정말 옳은 선택을 했다는 생각을 합니다. 1-2학년 때 배운 것을 3학년부터는 심화 과정으로 깊이 있게 배웁니다. 또 논문도 쓰게 됐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더 성숙해진 느낌과 성취감을 통해 뿌듯한 마음을 가지게 된 겁니다.

이 씨는 일과 공부를 병행하는 4년을 통해 학문에 대한 지식만 쌓은 것이 아니라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가는 기초를 쌓게 됐다며 열심히 생활한 자신을 스스로 격려합니다.

이순희: 저는 제가 일하는 간호조무사일에 만족합니다. 그러나 공부하는 과정에 사회복지가 어떻게 구성되고 사회에서 진행되는지 알게 됐고 4년 공부를 해보니까 학문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학우들과 관계 속에서 인간관계도 배우고 사회를 배우고 여러 직업의 사람과 소통을 하면서 제가 많은 것을 느끼게 됐어요. 남한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알게 된 겁니다.

여기서 잠깐! 청취자 여러분 남한 대학에서의 평가는 북한과 어떻게 다른지 아십니까? 차이가 분명 있답니다.

이순희: 시험을 치는 방식이 틀렸습니다. 여기는 객관식, 주관식, 단답형인데 북한은 오직 주관식입니다. 남한은 시험성적과 출석만 가지고 평가는 하는데 북한에선 시험에는 실수는 할 수 있기 때문에 일상 수업태도 등을 보면서 종합적으로 성적을 평가를 하거든요. 그런 면에서는 북한의 방식이 더 낫더라고요.

남한에서 시작하는 제 2의 인생, 보다 값지게 꾸려가기 위해 오늘도 열심히 공부하는 이순희 씨 파이팅입니다!

이순희: 앞으로는 대학을 졸업하면 학사 학위를 가집니다. 공부는 이것으로 끝내고 언젠가는 통일이 될 테니까 그때까지 더 내 자신이 성숙한 모습이 되도록 준비하고 싶어요.

제2의 고향 오늘은 간호조무사로 용양원에서 일하며 야간대학을 다니는 50대 탈북대학생 이순희(가명) 씨의 이야기를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입니다. 고맙습니다.